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제33차 국무회의에서 연이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강하게 비판하며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빚은 참담한 결과"라고 밝혔다. 특히 전날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를 실명 언급하며 "아주 심하게 말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날 회의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첫 전면 녹화된 국무회의로, 대통령의 생중계 지시에 따라 전체 녹화 및 내부 점검을 위한 파일럿 운영에 돌입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국정 투명성 확보를 위한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며 "돌발 상황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생중계 시점을 내부적으로 조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날 회의는 대통령 모두발언뿐 아니라 회의 전 과정을 처음으로 녹화했으며 향후 생중계 여부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올해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노동자가 다섯 명이나 사망했다. 살자고 간 직장이 전쟁터가 된 것 아니냐"며 "일터가 사람을 죽이는 구조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사람 목숨을 도구처럼 여기는 건 아닌가 싶다. 노동자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가장"이라며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건 충분히 예견 가능했음에도 이를 방지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는 사실상 죽음을 용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사고는 지난 28일 오전 10시 20분경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포스코이앤씨가 시공 중이던 해당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올해 들어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현장에서 발생한 네 번째 사망사고다.
포스코이앤씨는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을 받은 지 불과 두 달 만에 또다시 중대재해를 일으켰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 5월 포스코이앤씨 본사와 36개 공사현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감독을 실시해 약 70건의 법 위반을 적발했고 이 중 1건은 검찰에 송치했으며 총 약 2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본사 차원에서는 '배치 전 건강검진 미실시' 등 6개 법 조항 위반으로 7052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고 공사현장에서는 '굴착면 붕괴 위험 방지 위반'으로 1건이 송치됐으며 '안전교육 미실시' 등 64건에 대해 1억 2426만원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신안산선 붕괴사고가 발생한 현장은 당시 공사가 중단된 상태여서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한 공사현장에서 사망 사고는 모두 네 건 발생했다.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추락사고가 있었고, 4월 광명 신안산선 현장에서는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으며 이어 대구 주상복합 공사장과 이번 경남 의령 사고까지 이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만 따져도 포스코이앤씨에서만 총 8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에 노동부는 기존 36개 점검 현장을 제외한 전국 65개 포스코이앤씨 공사 현장과 본사를 대상으로 전면적인 재감독에 나설 예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대기업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단속이 과태료 수준에 그치기 쉽다"며 "이번엔 법 위반 여부와 무관하게 최고경영자(CEO)의 안전 인식 등 구조적 원인까지 점검하고 필요시 컨설팅도 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박홍배 의원은 "노동부의 감독이 있었음에도 불과 두 달 만에 또다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건 감독의 실효성에 심각한 의문을 남긴다"며 "감독 이후에도 책임을 끝까지 묻고, 비용보다 생명을 우선시하는 시스템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전국 모든 현장에 불시 산업안전보건 감독을 지시했다. 김 장관은 "포스코이앤씨는 이미 세 차례 중대재해로 집중 감독을 받았는데도 다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명백한 안전관리 실패"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당일 즉시 현장에 출동해 작업중지를 명령하고 유사 천공기를 사용하는 포스코이앤씨의 모든 현장에 대해 사업주에게 작업중지 및 자체점검을 요구했다. 점검 결과와 개선 조치 사항은 고용부에 보고토록 했다. 고용부는 본사 및 전국 공사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감독도 조속히 착수할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또 산재의 구조적 원인으로 '다단계 하청 구조'를 지목했다. 이 대통령은 "하청에 하청, 또 하청으로 이어지며 원도급 금액의 절반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그 상태에서 어떻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법으로 금지돼 있음에도 방치돼 있는 현실이며 포스코이앤씨처럼 해마다 다수의 사망 사고가 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강조했다.
고강도의 질책에 포스코이앤씨는 이날 오후 5시 인천 송도 본사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희민 사장은 이번 사망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당국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향후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대책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산업재해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를 지난 28일 공식 출범시켰다. TF는 김주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단장으로, 내년 6월까지 1년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 단장은 출범식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현장을 직접 찾아 목소리를 듣고 제도 개선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김병기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후진적인 산재 예방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현장 중심 대책 마련을 주문했고 허영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산재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이를 고치는 것은 국회와 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TF는 오는 8~10월 실태조사와 각계 간담회를 거쳐 11월부터 입법 과제 발굴 및 처리에 나설 계획이다. 중점 과제로는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제고 △다단계 도급·하청구조 개선 △취약 노동자 보호 강화 △현장 점검 및 안전 문화 확산 △은퇴자 활용 방안 등이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