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조성은 연구소장
1200조 원을 굴리는 세계 3대 연기금, 국민연금. 이제 우리 노후를 지키는 사회안전망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바꾸는 ‘행동하는 주주’가 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조용한 투자자'라는 낡은 옷을 벗고,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저탄소 경제 대전환을 이끄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기업이 기존의 탄소 배출 방식을 버리고 체질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다. 주주행동주의란,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목소리를 내어 회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경영진과 대화하고, 주주총회에서 투표하며, 때로는 직접 안건을 제안해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행동하는 주주'로서의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이를 위한 적극적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의 핵심 주주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도록 압박하는 데 그 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 3월 기후솔루션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23년 '기후변화'를 중점 관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기후 문제로 집중 관리하거나 심지어 대화 대상으로 삼은 기업이 단 한 곳도 없음이 드러났다. 사실상 기후 리스크 관리를 위한 주주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셈이다.
저탄소 경제 전환을 위한 행동하는 주주로서 국민연금에 대한 적극적인 역할 요구는 결코 급진적인 주장이 아니다. 미국, 일본, 노르웨이 등 선진국의 연기금들은 이미 행동하는 주주로서 기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미국 캘퍼스(CalPERS)는 'Climate Action 100+' 같은 국제 협력을 주도하며, 2021년에는 석유 기업 엑손모빌의 이사진을 교체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GPIF는 행동주의 펀드나 시민단체가 제출한 기후 관련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던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주로서 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이끈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주주권 행사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돈을 지키는 수탁자이자, 자본시장을 바로 세우는 파수꾼이다. 저탄소 전환에 미흡한 기업에는 '이사 재선임 반대'라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구체적인 감축 계획을 요구하는 주주제안도 직접 제출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에너지 체계의 구조적 전환, 기업 지배구조 개혁, 노동시장 변화 등을 통해 탄소중립과 산업경쟁력의 균형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는 기후 대응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이 걸린 생존의 문제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저탄소 전환. 새 정부의 의지에 발맞춰 국민연금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세계 연기금들처럼, 대한민국 저탄소 경제로의 성공적인 대전환을 견인하는 '행동하는 파수꾼'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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