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31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인근에서 한 할머니가 수거한 폐지를 고물상에 내다판 뒤 돌아가고 있다. 이날 할머니는 폭염 속에 폐지 수거를 마친 뒤, 고물상에서 건넨 4000원을 받아 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비 오는 거보다 해 찌는 게 나아, 박스 다 젖어"라며 웃어 보였다. 2023.07.31./사진=뉴시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31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인근에서 한 할머니가 수거한 폐지를 고물상에 내다판 뒤 돌아가고 있다. 이날 할머니는 폭염 속에 폐지 수거를 마친 뒤, 고물상에서 건넨 4000원을 받아 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비 오는 거보다 해 찌는 게 나아, 박스 다 젖어"라며 웃어 보였다. 2023.07.31./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지속되는 폭염에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노인이 늘어나면서 노인빈곤율 문제점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1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온열질환자는 누적 1810명으로 이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589명(32.5%)에 해당한다.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전체 인구의 19.5%(지난달 10일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온열질환에 고령층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폭염주의-야외 활동을 자제하세요'라는 안전문자를 받고도 노인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일자리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연금제도 미비' 상승 요인 중 하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노인빈곤율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연금제도의 미비가 꼽힌다.

OECD가 2005년부터 격년 발표하는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한국과 같은 선별적(targeted) 기초연금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회원국 38개 중 34개국이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저소득층의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 원리상으로는 한국과 비슷한 기초연금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연금 시스템의 불완전성이 노인빈곤율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이 1988년으로, 현재 노인 세대 상당수는 연금 가입 기간이 짧아 충분한 수급액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 공표통계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노령연금 평균 수급액은 64만이다.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 비용에도 충족을 못하지만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있다. 연금을 받는 노인 10명 중 4명 이상이 50만원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통계청이 공개한 '5월 경제활동 인구조사 고령층(55~79세)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금 수급액별로 25~50만원 미만을 받는 고령층 전체의 41.2%로 가장 많았고, 50~100만원 미만 32.4%, 150만원 이상 13.8%, 100~150만원 미만 8.1%, 25만원 미만 4.5%로 조사됐다. 10만~25만 원인 이들도 6%나 됐다.

◆ '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공적연금 가입률 41% 뿐

경기도 의정부시의 위치한 한 고물상 앞 폐지 수레들 2024.06.15/사진=조은결 기자
경기도 의정부시의 위치한 한 고물상 앞 폐지 수레들 2024.06.15/사진=조은결 기자

또한 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근로자, 자영업자 등은 연금 수급 자격을 갖추지 못하거나 매우 적은 금액을 수령하게 돼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고 있다. 

지난 11일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의 '우리나라 노후소득 보장체계의 재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20~59세 근로연령층을 OECD 기준에 따라 소득 수준 '상', '중', '하'로 구분했을 때 '하'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집단의 공적연금 가입률은 40.96%였다. 2009년(38.81%)에 비교해도 12년 간 2.15%포인트 밖에 오르지 않은 셈이다.

특히 여성 노인은 더욱 불리하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로 인해 연금 수급 자격을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은 아이를 한 명 가지면 부모 중 1명에게 3년의 연금 가입기간을 추가 인정해 여성 노인의 빈곤율을 효과적으로 낮추고 있다. 그런 독일의 노인 여성 빈곤율은 약 10.4%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48.3%로 큰 차이를 보인다.

정부가 그간 출산 여성, 군복무 등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제도' 등을 시행하고, 저소득층에 보험료 납부를 지원했지만 그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현재 정부는 고령층 빈곤 해소를 위해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단독 가구는 월 33만4810원, 부부 가구는 53만4400원을 지급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기초연금 지급액을 40만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노인일자리 사업의 경우 역대 가장 큰 증가 폭인 14만7000명을 늘려 103만 명 규모로 확대했다.

다만 연금 등을 통해 받게 되는 금액은 여전히 1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인 133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만큼 고령자 노동참여 활성화·연금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전문가들 "소득대체율 높여라" 주장...22대 국회서 이뤄질까?

 서울 소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사진=뉴시스
 서울 소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사진=뉴시스

기초연금 개혁을 논의할 때면 한정된 예산 조건에서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 지급범위를 좁히고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연금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서는 국민연금 개혁 전략으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되 상한을 설정하고 수급연령을 상향시키며 자동안정장치를 도입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크레딧과 저소득보험료 지원으로 급여수준 상향 △국민연금 A급여(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의 3년간 평균액)를 기초연금에 통합하고 완전 소득비례연금화 △기초연금 수급대상을 노인 100%로 확대 △기초연금 수급대상을 30∼40%로 축소하고 소득수준별로 차등 지급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국민연금 제도만으로는 심각한 고령화와 노동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사각지대를 완화하고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보완적 역할을 고려해 이 제도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구축해 적절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험료율 9%, 최대 소득대체율 40%, 기초연금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 이후 대한민국의 연금개혁은 지난 17년 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연금제도가 가지는 사회적 민감성, 재정적 부담, 그리고 정치적 리스크로 실질적인 개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재도 여야 간의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연금개혁 추진단 제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야는 지난 4월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한 달 앞두고 시민대표단 토론을 거쳐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모두 인상하는 '더 내고 더 받기'를 추진했다.

당시 여·야는 현행 9% 수준의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부분에는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에서는 기존 40%에서 야당 45%와 여당 43%를 놓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고 해당 안은 불발됐다.

이어 여당이 소득대체율 44%의 절충안을 제시했고, 야당이 한 차례 거부했다. 이후 야당이 절충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여당이 지속 가능한 재정 방안의 부재를 이유로 이를 거부해 21대 국회 내 연금개혁은 최종 무산됐다.

지난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21대 국회에서 무산된 연금개혁을 22대 국회에서 매듭지을 수 있도록 서두르자"고 말했다. 이후 여야는 오는 9월 초 개회하는 22대 국회 첫 정기회의에서 연금개혁을 최우선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안' KDI-한국경제학회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정세은 충남대 교수의 발제를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국민연금 개혁방안' KDI-한국경제학회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이 정세은 충남대 교수의 발제를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노인빈곤율은 단순히 노인들의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이슈이다. 연금개혁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수단 중 하나다. 

더불어 저출산으로 보험료를 납부할 사람은 줄고, 고령화로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현행제도로는 2055년경에 연금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는 연금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연금 수급 연령을 조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연금제도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다만, 재정적 안정성과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며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현재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청년층의 목소리가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청년 층은 자신들이 내는 연금 보험료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받게 될 연금의 혜택은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청년들은 "받을 때까지 살아있다는 보장 없다. 내지 않을 권리를 달라"고 요청한다.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다만 연금개혁 논의가 세대 간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장기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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