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가 공공조형물 의뢰한 첫 여성 예술가, 엠마 스테빈스
뉴욕시가 공공조형물 의뢰한 첫 여성 예술가, 엠마 스테빈스
  • 이로운넷=박유진 기자
  • 승인 2019.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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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㉙ 센트럴 파크 '물의 천사' 제작자...타임스지, "로마 여성 천재"
연인 사망 후 전기 작성에 몰두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뉴욕 센트럴 파크 베데스다 분수. 왼쪽 위에 물의 천사 조형물이 보인다.
뉴욕 센트럴 파크 베데스다 분수. 위에 물의 천사 조형물이 보인다.

미국 뉴욕시의 허파,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에는 베데스다 분수(Bethesda Fountain)가 자리 잡고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베데스다 못(Pool of Bethesda)'을 모델로 한 이 분수 중앙에는 ‘물의 천사(Angel of the Waters)’라는 조형물이 있다. 영화 ‘나홀로 집에’ 2편이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조형물의 제작자는 레즈비언 작가 엠마 스테빈스(Emma Stebbins)로, 뉴욕시가 공공조형물을 의뢰한 첫 여성이다.

스테빈스는 1815년 9월 1일 뉴욕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딸의 미적 재능을 알아보고 예술가의 길을 걷도록 도왔다. 그는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Design)에 작품을 전시하고 아마추어 준회원 작가로 선정되는 등 젊은 시절부터 성공을 이뤘다.

유화와 수채화 작품을 많이 그렸으며, 크레용·파스텔로도 작업했다. 이후 스테빈스는 조각에 관심 갖기 시작해 1856년부터 로마에서 공부했다. 1862년 조각상 제작을 맡은 건 뉴욕시가 최초로 여성 예술가에게 공공 조형물을 의뢰한 경우였다. 이 과정에서 그의 오빠 헨리가 조력자 역할을 했다. 헨리는 센트럴파크의 조각상·분수·건축 작품 위원회 회장이었다.

스테빈스는 당시 크로톤 송수로(Croton Aqueduct)의 신축을 기념하기 위해 물의 천사를 제작했다. 크로톤 송수로는 분수대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에 깨끗한 물을 공급했다.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진 성경 속 베데스다 못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조각상은 8피트 높이로, 왼손에 백합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축복을 내리는 손짓을 한다.

물의 천사뿐 아니라 '산업(Industry),' '상업(Commerce)'이라는 이름의 다른 조각상도 제작했다. 뉴욕타임즈(NYT)에 의하면 당시 영국 타임스지(The Times)는 작품 '상업'에 대해 "로마 여성 천재의 작품 중 대리석으로 만든 가장 우수한 성과"라고 평했다.

(왼쪽부터) 커쉬맨과 스테빈스. 스테빈스는 스스로가 커쉬맨과 결혼했다고 표현했다.
(왼쪽부터) 커쉬맨과 스테빈스. 스테빈스는 스스로가 커쉬맨과 결혼했다고 표현했다.

스테빈스는 ‘쾌활한 독신 여성들’이라는 모임에 합류해 조각가 해리엇 호스머, 에드모니아 루이스 등과 어울렸다. 그곳에서 연극배우 샬롯 커쉬맨(Charlotte Cushman)와 사랑에 빠졌다. NYT에 의하면 둘은 로마에서 12년 동안 함께 살다가 1870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커쉬맨이 유방암을 앓자 스테빈스는 조각 일을 멈추고 간병에 몰두했다. 1876년 커쉬맨이 죽고 스테빈스는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연인의 전기 ‘샬롯 커쉬맨: 그의 편지와 삶에 대한 기억(Charlotte Cushman: Her Letters and Memories of Her Life)’을 쓰는데 보냈다.

1882년 10월 25일, 스테빈스는 67세에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그린우드 공동묘지(Green-Wood Cemetery)에 안치됐다. NYT에 의하면 그는 시인 시드니 러니어에게 편지로 자신이 “부드러운 껍질을 가진 게”라고 표현할 정도로 수줍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살아생전 본인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죽은 후 그의 자매 메리 스테빈스 갈랜드가 그 작업을 대신했다. 1888년 ‘엠마 스테빈스의 예술 일생(Notes on the Art Life of Emma Stebbins)’이라는 미출판 자서전을 썼으며, 1857년부터 1870년 사이 제작한 작품 사진을 모은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사진. 위키미디아 커먼스

자료 출처:
https://www.nytimes.com/2019/05/29/obituaries/emma-stebbins-overlooked.html
https://www.journals.uchicago.edu/doi/abs/10.1086/aaa.33.3.1557502?journalCode=aaa
http://centralpark.org/attractions/bethesda-terrace/bethesda-fountain-angel-of-the-waters/
http://www.womenhistoryblog.com/2015/05/emma-stebbins.html
https://www.nyclgbtsites.org/site/bethesda-f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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