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의 여성 셜록 홈즈, '이사벨라 굿윈'
뉴욕시의 여성 셜록 홈즈, '이사벨라 굿윈'
  • 박유진 기자
  • 승인 2019.03.23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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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㉔ 교도관→뉴욕 첫 여성 형사
탁월한 변장 실력으로 유명세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1800년대 뉴욕에서는 아프거나 죽은 경찰의 부인을 경찰서에서 자주 고용했다. 가족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뉴욕 첫 여성 형사 '이사벨라 굿윈(Isabella Goodwin)'도 그렇게 고용된 사람 중 하나였다. 다만 그는 형사가 아니라 교도관이었다.

책 '용감한 굿윈' /사진=The Green-Wood Historic Fund
책 '용감한 굿윈.' /사진=The Green-Wood Historic Fund

굿윈은 1865년 2월 20일, 뉴욕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에게서 '이사벨라 로크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오페라 가수를 꿈꿨다. 굿윈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용감한 굿윈(The Fearless Goodwin)' 저자 엘리자베스 미첼에 의하면 그가 19살이 됐을 때 경찰관 남편 존 굿윈을 만나 결혼했지만 1896년 남편이 사망해 자녀 4명을 혼자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뉴욕 경찰서는 혼자가 된 굿윈을 고용했다. 그는 여성 수감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교도관으로 일했다.

뉴욕타임즈(NYT)에 의하면, 당시 시 경찰국장이었던 테오도어 루즈벨트는 여성 교도관의 임무를 여성 범죄 피해자·성범죄 사건·아동 관련 사건 등을 다루는 일까지로 확대했다. 감옥에서 일하던 굿윈도 현장 파견을 나갔다. 사기꾼과 협잡꾼을 잡기 위해 불쌍한 사교계 부인으로, 내기 도박 현장을 잡기 위해 타락한 도박꾼으로 변장했다. 탁월한 변장 실력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굿윈을 비롯한 다른 여성 교도관들도 가끔 형사 일을 맡았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관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연봉은 1000달러 수준이었다.

굿윈이 진짜 형사가 된 건 '택시 강도' 사건을 해결하면서다. 당시 뉴욕에서는 2500달러를 운반하던 은행원들을 태운 택시를 강도들이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형사들을 피해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경찰서에 자동차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범인을 잡기 어려웠다. 

이사벨라 굿윈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
이사벨라 굿윈의 이야기를 담은 '킹스턴 데일리 프리먼'의 기사. "수백명의 범법자를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적혀있다. /사진=HRVH Historical Newspapers

굿윈은 이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다. 범인 중 한 명인 에디 킨스맨이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주 오던 하숙집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가정부로 변장한 것이다. 굿윈은 누더기 옷을 입고 아일랜드 사투리를 써가며 여자친구에게 다가갔다. 몇날 며칠을 변장한 채로 지낸 결과, 여자친구로부터 단서를 얻어 경찰관들이 범인을 체포하는데 기여했다.

이 일로 굿윈의 실력이 입증됐고, 그는 형사 배지를 받아 뉴욕의 첫 여성 형사로 거듭났다. 당시 뉴욕에서 발행하던 신문 '킹스턴 데일리 프리먼'은 "유명한 여성 형사"라는 제목으로 굿윈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기사에서 굿윈은 "셜록 홈즈"로 표현됐다. NYT에 의하면 1921년 '뉴욕헤럴드'는 "180cm에 옆구리에는 총을 지니고 3300달러의 연봉을 받는 경찰관보다, 가냘프지만 두뇌 회전이 빠르며 잽싼 굿윈이 더 일을 잘한다"고 보도했다. 

1920년대 굿윈은 경찰서에 생긴 여성 부서를 감독하는 일을 도왔다. 성매매 여성, 무단 결석생, 가정폭력 피해자 등과 관련된 사건들을 다뤘다.

1924년 퇴직 후 1943년 10월 26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21년 30년 연하의 가수 오스카 시홈과 결혼했기 때문에 그의 묘지에 적힌 이름은 굿윈이 아니라 시홈이다. NYT에 의하면 현재 뉴욕시에는 781명의 여성 형사가 있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9/03/13/obituaries/isabella-goodwin-overlooked.html
https://news.hrvh.org/veridian/?a=d&d=kingstondaily19120907.2.21.14&srpos=0&
http://gothamist.com/2017/03/22/fearless_women_statues.php#photo-1
https://www.green-wood.com/event/1-p-m-the-fearless-mrs-goodwin-the-first-female-detective-in-america-talk-and-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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