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가정부로 산 유대인 민족운동가 '로즈 자르 구터만'
나치 가정부로 산 유대인 민족운동가 '로즈 자르 구터만'
  • 박유진 객원 기자
  • 승인 2018.11.0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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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⑩ 가명 사용, 나치 대원 가정부로 살아남아..."나는 인생을 건 배우였다"
전쟁 후 국제난민기구와 학교 설립...유대인 전쟁 고아 교육에 힘써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아버지는 내게 ‘살고 싶다면 늑대의 입 속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다른 유대인들은 나치의 눈을 피해 숨어있을 때, 로즈 자르 구터만(Rose Zar Guterman)은 나치 친위대 대원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살아남았다. 로즈는 훗날 '쇼아 재단'과의 영상 인터뷰에서 “나는 배우가 되어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해야 했다”고 말했다. 쇼아 재단(Shoah Foundation)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의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완성한 후 1994년 설립한 NGO로, 나치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남기는 활동을 했다.

로즈 자르 구터만./사진=쇼아 재단 인터뷰 영상 캡쳐
로즈 자르 구터만./사진=쇼아 재단 인터뷰 영상 캡쳐

로즈 자르는 1923년 7월 27일 폴란드 피오트르코 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쟁이 터지기 전 시오니즘 운동단체 ‘하쇼머 핫자이르(Hashomer Hatzair)’에서 활동하며 은밀히 무기를 들여오거나 정보를 알아내는 역할을 맡았다. 시오니즘은 유대인들의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하쇼머 핫자이르는 히브리어로 ‘어린 경비대’를 의미하며, 1913년 만들어져 나치 정권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쳤다.

전쟁이 터진 후 로즈의 가족은 나치가 그들의 집을 찾아낼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로즈는 ‘살고 싶다면 늑대의 입 속으로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품고 폴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크라쿠프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반다 가이다(Wanda Gajda)라는 가명으로 지내며 로마 가톨릭 교도 행세를 했다.

로즈 자르가 '반다 가이드'라는 가명으로 활동할 때 썼던 가짜 출생증명서. <br>9월 13일에 태어났다고 적혀있다./사진=쇼아 재단 인터뷰 영상 캡쳐
로즈 자르가 '반다 가이드'라는 가명으로 활동할 때 썼던 가짜 출생증명서.
9월 13일에 태어났다고 적혀있다./사진=쇼아 재단 인터뷰 영상 캡쳐

그는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정체를 숨기면서 지내야했기 때문에 청소, 요리 등의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뉴욕타임즈(NYT)는 “로즈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반유대주의적인 농담을 해도 같이 웃는 법을 배워야했다”고 전했다.

어느 날 그는 나치 친위대 대원에게 불려갔다. NYT는 “로즈는 대원이 묻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간호사로 일했던 경력과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며 “이대로 끝인 줄 알았다(felt certain that it was the end)”고 전했다.

대원이 로즈를 불렀던 이유는 집 가정부로 일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로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정부로 일할 정도로 대원의 가족과 신뢰를 많이 쌓았다. 쇼아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대원의 아이가 자신을 무척 좋아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도망가기 좋은 길을 탐색해놓고 옷 안에는 여권과 돈을 넣어두었다.

전쟁이 끝나고 로즈는 어릴 적 연인 ‘마이어 자르노위키(Mayer Zarnowiecki)와 1945년 재회해 결혼했다. 폴란드에서 유대인 난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터지자, 둘은 남부 독일로 떠났다. 그 과정에서 139명의 유대인 난민 아이들도 몰래 들여갔다. 독일에서 부부는 국제 난민 구제 기구와 미국 육군이 운영하는 학교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NYT에 의하면 국제 난민 구제 기구가 직접 로즈에게 개인적 헌신을 감사하는 서신을 전했다.

부부는 1951년 미국 인디아나 주 사우스벤드시로 이사했고, 로즈는 ‘사우스벤드 유대인 연맹’에서 유대인 교육을 맡아 활동했다. 부부는 전국을 돌며 나치로부터 생존했던 이야기를 강연하기도 했다.

로즈는 4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며, 그 중 한명은 독일에 있을 때 사고로 잃었다. 1983년에는 ‘늑대의 입 속에서(In the Mouth of the Wolf)’라는 자서전을 냈다. 책을 함께 썼던 작가 에릭 키멜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로즈가 ‘나의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로즈는 2001년 11월 1일, 사우스벤드 집에서 사망했다. 뉴욕타임즈는 유대인을 혐오하는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로즈에 대해 “용기, 지성, 투지를 갖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로즈 자르의 책 '늑대의 입 속에서.' 이 책은 올해 아마존닷컴에서 유대인을 주제로 한 청소년 문학 부문 1위를 한 바 있다.
로즈 자르의 책 '늑대의 입 속에서.'
올해 아마존닷컴에서 유대인을 주제로 한 청소년문학 부문 1위를 했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8/10/24/obituaries/rose-zar-overlooked.html
https://www.youtube.com/watch?v=HMS_H7wNV9M
https://www.bookdepository.com/Mouth-Wolf-Rose-Zar/9780827603820
http://sites.rootsweb.com/~instjose/obits/z/zarros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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