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군인들의 구세주,’ 베시 블라운트
‘상이군인들의 구세주,’ 베시 블라운트
  • 이로운넷=박유진 기자
  • 승인 2019.04.20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가 외면한 사람들]㉖손이 없으면 발을, 치아를, 도구를 사용하자!
발명가·간호사·필체 감정사...분야를 넘나들었던 흑인 여성 능력자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왼손잡이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여겨지던 시절, 미국인 소녀 베시 블라운트(Bessie Blount)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다가 선생님에게 손가락을 맞았다. 꾸중을 들은 후 그는 엉뚱하게도 발가락과 치아로 글씨 쓰는 법을 익혔다. 이러한 블라운트의 창의력과 반항심은 훗날 그가 간호사, 물리 치료사, 발명가, 그리고 필체 감정사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는데 도움이 됐다.

베시 블라운트는 음식 공급장치 이외에도 종이로 만든 농반(구토를 받아내는 대야)를 발명했다. /사진=RealTalk RealPeople 유튜브 캡쳐

블라운트는 1914년 11월 24일 아버지 조지 우드어드 그리핀과 어머니 메리 엘리자베스 그리핀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성은 아버지를 따라 ‘그리핀’이었지만, 그는 훗날 할머니의 성이었던 ‘블라운트’를 따랐다. 

뉴욕타임즈(NYT)에 의하면 블라운트는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의 딕스 채플 초등학교를 다녔다. 흑인 노예였던 흑인들의 아이들을 위해 미 남북전쟁 이후 만들어진 학교다. 가족은 뉴저지 주에 정착한 후에 블라운트는 뉴어크 시 케니 기념 병원에서 간호를 배웠다. 이 병원 역시 흑인 의료인들을 고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유니온카운티 칼리지와 지금은 몬클레어 주립 대학교에 속한 팬저 체육·위생 대학에서 물리 요법을 배웠다. 블라운트는 정식 물리 치료사가 돼 브롱스 병원에서 일했다. 환자 중 상당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팔을 잃은 군인이었는데, 블라운트는 그들에게 이와 발로 글쓰는 법을 가르쳤다. 

상이군인에게 팔을 사용하지 않고 글쓰는 법을 가르쳐줬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방에서 10달을 투자해 1951년 음식 공급 장치(invalid feeder)를 개발했다. 환자가 튜브를 물어 모터를 돌리면, 음식 조각이 숟가락 모양의 마우스피스를 통해 입으로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팔을 사용하지 않아도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NYT는 그가 이 발명을 위해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작업했다고 전했다. 그는 발명품의 일부 디자인에 대한 특허를 받았고, 이후 4년 동안 3천 달러를 투자해 개선된 모델을 만들었다. 뉴저지 병원에서 이를 선보였을 때 그는 기립 박수를 받았다.

블라운트가 개발한 음식 공급 장치. 1951년 4월 'No. 2,550,554'라는 특허 번호를 받았다. /사진=RealTalk RealPeople 유튜브 캡쳐

블라운트는 발명품을 들고 재향군인 관리국에 찾아갔지만, 관리국 측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의료팀장이었던 폴 B. 맥너슨은 발명품을 두고 “비실용적이다”라고까지 평가했다. 블라운트는 몇 년 후 프랑스 정부에 제품에 대한 권리를 기부했고, 프랑스 정부는 1952년부터 이를 여러 육군 병원에서 활용했다.

1969년, 블라운트는 진로를 틀었다. 법과학에 관심이 생겨 경찰관들과 일하기 시작했다. 필체 감정사로 일하며 뉴저지 주 바인랜드 경찰서와 버지니아 경찰서에서 위조 서류를 확인했다. 1977년에는 영국 런던 경찰국 문서부서에서 훈련받았다. 그의 아들 필립 그리핀에 의하면 블라운트는 그곳에서 훈련받은 첫 번째 흑인 미국 여성이었다.

블라운트는 발명품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흑인 여성으로써 다른집 아이들을 돌보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대중 앞에도 자주 나타났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으며, 뉴저지 헤럴드 뉴스와 필라델피아 인디펜던트 등 신문에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흑인이라는 인종으로 정의되기 거부했던 그는 2009년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자료 출처: 
https://www.nytimes.com/2019/03/27/obituaries/bessie-blount-overlooked.html
http://www.myblackhistory.net/Bessie_Blount.htm
https://pilotonline.com/guides/african-american-today/bessie-blount-nurse-inventor-crimefighter/article_f1dca186
24b1-53b3-b25d-3cce74b7c47c.html

https://americacomesalive.com/2016/02/11/bessie-blount-griffin-physical-therapist-and-inventor/
https://www.youtube.com/watch?v=EqHM5WMqamA
https://face2faceafrica.com/article/meet-bessie-blount-griffin-invented-electronic-feeding-tube-disposable-kidney-dish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