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 루카스, 대가뭄 시달리던 서아프리카에 '단비' 되다
페인 루카스, 대가뭄 시달리던 서아프리카에 '단비' 되다
  • 박유진 객원 기자
  • 승인 2018.12.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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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 ⑭아프리카인 위한 NGO '아프리케어' 설립
$3만9천 재원으로 시작→현재 가치 $2억...오바마도 기부해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1960년대 중반, 미국 흑백 갈등은 극에 달했다. 200년 동안 지속된 흑인 차별 문화를 뒤엎기 위해 곳곳에서 폭동과 시위가 일어났다. 70년대 초반도 마찬가지였다. 테네시 주, 뉴저지 주, 코네티컷 주 등에 폭동이 번졌다.

인종 갈등이 정점을 찍었던 이 시기에 아프리카 지역 개발을 위한 비영리단체를 이끌었던 흑인이 있다. 클레오타 페인 루카스(Cleotha Payne Lucas)는 1970년부터 서아프리카 지역을 강타한 극심한 가뭄에 의한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프리케어(Africare)'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본부는 미국에 두었다. 초반에 미국에 사는 흑인들로부터 후원받기를 희망했다.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루카스는 “주변 사람들은 내 계획에 대해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미국 흑인사회는 여전히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바빠 아프리카 지역 개발에 후원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아프리케어는 1970년 이후 36개국에서 2천개 이상의 사업을 실행할 만큼 성장했으며, 지금도 활동 중이다. 2016년 기준 3천4백만 달러의 수입을 거두어들였다.

2014년 아프리케어와의 영상 인터뷰 속 루카스. 그는 ‘항상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진 설득력 있는 낙관주의자라고 평가받는다.
2014년 아프리케어와의 영상 인터뷰 속 루카스. NYT에 의하면 그는 ‘항상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진 설득력 있는 낙관주의자라고 평가받는다.

루카스는 1933년 9월 14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생 때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에 들어가 노스캐롤라이나 청년대표를 역임했으며, 메릴랜드 주립대학을 다니다 1952년부터 4년간 미국 공군으로 복무했다. 대학으로 돌아와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에는 1961년 워싱턴 주의 아메리카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 과정을 밟았다. 국방부 인턴을 거쳐 미국 민주당 전국 위원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다가 당시에 새로 설립된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에 투입돼 토고 담당자로 일했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정부가 만든 해외봉사 단체로, 청년 중심으로 팀을 꾸려 훈련하고 개발도상국으로 파견하기 위해 만들었다. 케네디 정부의 주요 업적 중 하나로 인정된다. 루카스는 토고에 직접 파견되어 일하다가 아프리카 중서부 공화국인 니제르로 자리를 옮겼고, 마침내 아프리카 지역 평화봉사단의 감독 자리에 올랐다.

아프리케어 홈페이지. "아프리케어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일한다"는 미션이 적혀있다.
아프리케어 홈페이지. "아프리케어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일한다"는 미션이 적혀있다.

1970년 니제르는 대가뭄에 시달렸다. 당시 그 지역 병원에서 일하던 부부인 윌리암 커커와 바버라 커커는 ‘아프리케어’라는 이름으로 의료 구호 단체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좀 더 큰 동력이 필요했다. 루카스는 이 시점에 니제르 대통령의 부탁으로 평화봉사단에서 나와 아프리케어를 재탄생시켰다. 그는 평화봉사단 출신이자 국제개발 전문가인 조세프 케네디와 함께 아프리케어의 영향 범위를 넓혔다. 니제르 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 내 국가의 개발과 구호 활동이 목표였다.

NYT는 “루카스는 흑인 교회와 클럽 등에서 후원금을 모았지만, 미국 내 다양한 재단과 정부로부터도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이들을 설득해 도움 받는 일에 능숙해졌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케어의 남아프리카 지역 감독이었던 케빈 라우터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루카스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설득력이라고 언급했다. 2010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상금 중 10만 달러를 아프리케어에 기부한 바 있다. 

루카스는 31년간 아프리케어의 대표로 활동하다 2002년 은퇴했다. 2004년에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그를 민관협력 재정지원기관인 '아프리카 개발 기금(Africa Development Fund)'의 이사로 임명했다. 루카스는 아내 프레디 루카스와 경영자문 회사를 운영하다가 2018년 9월 15일 치매 악화로 사망했다. 3만9천 달러의 재원으로 시작한 아프리케어의 포트폴리오 가치는 현재 2억 달러에 준한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8/10/04/obituaries/c-payne-lucas-dies-africare.html
https://www.africare.org/africare-celebrates-african-american-leadership-at-its-2014-bishop-john-t-walker-memorial-dinner/
https://www.youtube.com/watch?v=P85iumystds
http://www.thehistorymakers.org/biography/c-payne-lucas-38
https://blackpast.org/aah/lucas-c-payne-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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