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들리 랜달, 美 흑인 시문학에 날개 달다
더들리 랜달, 美 흑인 시문학에 날개 달다
  • 박유진 객원 기자
  • 승인 2019.0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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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 ㉒흑인 시인 위한 출판사 세워...흑인예술운동에 영향
美 잡지 블랙 엔터프라이즈, “1960년대 흑인 시 운동의 아버지”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흑인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웬돌린 브룩스, 영화 ‘그레이트 디베이터스’의 실제 주인공 멜빈 B. 톨슨 교수, 미국 유명 흑인 현대 시인 니키 지오바니와 소니아 산체스 등이 거쳐 간 출판사가 있다. ‘브로드사이드 출판사(Broadside Press)’다. 출판사 설립자는 더들리 랜달(Dudley Randall)이라는 흑인 시인이자 도서관 사서로, 유색인종을 포함한 200명의 시인들이 작가의 길을 걷게 해준 장본인이다.

NYT에 의하면 더들리 랜달은 1973년 한 인터뷰에서 "흑인 작가들은 백인 출판사, 백인 잡지, 백인 출판인을 통해 작품을 출판할 수 없었다"며 "우리가 직접 해야했다"고 말했다.(사진 출처: 브로드사이트 로터스 출판사 홈페이지)
NYT에 의하면 더들리 랜달은 1973년 한 인터뷰에서 "흑인 작가들은 백인 출판사, 백인 잡지, 백인 출판인을 통해 작품을 출판할 수 없었다"며 "우리가 직접 해야했다"고 말했다.(사진 출처: 브로드사이트 로터스 출판사 홈페이지)

더들리 랜달은 1914년 1월 14일에 워싱턴DC에서 태어나 교사 어머니와 목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의 조부모는 당시 보기 드물었던 흑인 농장 소유주였다. 랜달 가족은 1920년 당시 미시간 주에서 ‘자동차의 도시’라고 불렸던 디트로이트 시로 이사했는데, 랜달의 아버지가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포드(Ford) 자동차 회사 인사과 직원으로 입사하고 싶었지만, 인부로 일해야 했다.

1926년 랜달은 이스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듬해에는 지역 신문사인 ‘디트로이트 자유 언론(Detroit Free Press)’에 랜달이 쓴 짧은 시가 실렸다. 랜달은 1등상과 함께 상금 1달러를 받았다. 시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운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곧바로 글 쓰는 직업을 택한 건 아니다. 랜달은 고등학교 졸업 후 포드 자동차 회사 주조 공장에서 일하다가 우편집배원으로 지냈다. 1943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 육군에 징집되어 남태평양에서 싸웠다. 전쟁 후 미국으로 돌아온 랜달은 1946년 웨인주립대학에서 영어학 학사학위를, 미시간 대학에서 도서관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여러 대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랜달은 시인으로서 ‘흑인예술운동(Black Arts Movement)’에 합류했다. 이 운동은 백인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흑인예술을 생산하고 이를 정당화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에 걸쳐 확산됐다.

이 때 유명해진 랜달의 작품이 ‘버밍엄의 발라드(Ballad of Birmingham)’이다. 1963년 알라바마 주 버밍엄 지역에서 교회 폭파 사건으로 21명이 다치고 어린 흑인 여자아이 4명이 숨졌는데, 랜달이 이를 바탕으로 쓴 시다. 폭파범은 미국 백인우월주의단체인 KKK단(Ku Klux Klan) 회원들로, 이 사건은 명백한 테러였다. 버밍엄의 발라드는 몇 년 후 가수 제리 무어가 노래로 바꿔 불렀다.

버밍엄에서 벌어진 교회 폭파 사건 이후 평화 시위를 하러 워싱턴DC 거리에 나온 사람들 (사진출처: 위키미디아 커먼스)
버밍엄에서 벌어진 폭파 사건 이후 평화 시위를 하러 워싱턴DC 거리에 나온 사람들 (사진출처: 위키미디아 커먼스)

1965년 랜달은 브로드사이드 출판사를 세워 사비로 운영했다. 집에서 혼자 시작한 사무실이었지만, 5년 만에 직원 8명을 고용하는 회사로 발전했다. 회사는 당시 차별받던 흑인 시인들에게 작품 출판 기회를 마련했다. 1978년, 흑인 기업가를 다루는 ‘블랙 엔터프라이즈(Black Enterprise)’ 잡지가 그를 “1960년대 흑인 시 운동의 아버지”라고 칭할 정도로 영향력 있었다. 현재 회사는 '브로드사이드 로터스(Lotus) 출판사'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브로드사이드 로터스 출판사 홈페이지 캡쳐
브로드사이드 로터스 출판사 홈페이지 캡쳐

랜달은 2000년 8월 5일 울혈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그는 ‘초록 사과,’ ‘랭스턴 블루스,’ ‘라바울’ 등 여러 편의 시를 남겼으며, 1981년 디트로이트 주 계관 시인(매년 선정되는 뛰어난 시인)으로 뽑혔다. 그웬돌린 브룩스는 디트로이트 자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들리 랜달은 어린 시인들과 흑인 시문학에 진심으로 몸바쳤던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를 거인이라고 부른다"며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흑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9/02/13/obituaries/dudley-randall-overlooked.html
https://www.poemhunter.com/dudley-randall/poems/?a=a&search=&l=1&y=1
https://www.poets.org/poetsorg/poet/dudley-randall
https://www.encyclopedia.com/people/literature-and-arts/american-literature-biographies/dudley-randall
Julius E. Thompson, 「Dudley Randall, Broadside Press, And The Black Arts Movement In Detroit, 1960-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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