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휴교 운동 벌인 16살 소녀 '바바라 존스'..."인종차별 멈춰라!"
자체 휴교 운동 벌인 16살 소녀 '바바라 존스'..."인종차별 멈춰라!"
  • 이로운넷=박유진 기자
  • 승인 2019.05.1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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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㉘ 교장 흉내 내 강당으로 학생 모아 행진...2주간 동맹 휴교
美 공립학교 인종차별 금지 법안에 영향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1954년 5월 17일. 미국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흑인 인종차별을 금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브라운 대 교육 위원회 판례(Brown v. Board of Education)’라고 불리는 판결이다. 뉴욕타임즈(NYT)는 이 판례에 영향을 줬던 5개의 소송 중 ‘데이비스 대 프린스 에드워드 카운티 교육 위원회 소송(Davis v. County School Board of Prince Edward County)’의 주역, 당시 16살 바바라 존스(Barbara Johns)를 조명했다. 

대법원의 '브라운 대 교육 위원회 판례' 내용을 담은 문서. /사진='Our Documents' 웹사이트 (워싱턴 국립공문서관 운영)

존스는 1935년 3월 6일 뉴욕 최대의 흑인 거주지로 알려진 할렘 가에서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 로버트 존스는 농장에서 일했으며, 어머니 바이올렛 존스는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워싱턴 D.C.에 출근했다. 

모톤 박물관에 의하면 존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버지니아 주 프린스 에드워드 카운티 지역으로 이사 갔다. 그는 가족이 경영하는 담배 농장과 삼촌이 소유했던 시골 점포에서 일했다. 삼촌은 유명한 목사이자 인권 운동가였다. 이곳에서 존스는 인종 차별에 맞서기 위해 동맹 휴교를 이끌었다.

존스는 항상 붐비는 흑인 전용 스쿨버스에 비해 자리가 넉넉한 백인 전용 스쿨버스를 보고 이 불평등에 대항하려 마음 먹었다고 NYT는 전했다. 그의 흑인 전용 학교는 1층짜리 건물에 450명 이상의 학생이 지낸데 반해, 거의 백인들만 다니던 학교는 2층짜리 건물에 400명도 채 안 되는 학생들을 수용했다. 그러나 지역 교육 위원회는 흑인들을 위한 학교 건물을 더 짓거나 백인 학교에도 흑인이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

존스는 음악 선생님에게 학교 시설이 열악하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직접 무언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존스는 처음에는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결국 학생들을 모았다. 모톤 박물관에 의하면 그는 “학생회 임원들을 모아서 공동 행동을 진행할 계획이었다”라며 “함께 피켓을 만들고 우리의 불만 사항에 대해 내가 연설을 하고 학교 밖으로 행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들을 것이다”라고 일기에 적었다. 

바바라 존스가 공동 행동에 앞장 서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바바라 존스가 공동 행동에 앞장 서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1951년 4월 23일. 존스는 학교 학생들이 시내에서 사고를 치는 중이라고 교장에게 거짓말해 그를 학교 밖으로 유인한 뒤, 교장의 지시인 것처럼 학생들을 강당으로 모았다. 강당 무대에 교장이 아닌 존스가 서 있어 아이들은 무척 놀랐지만, 이내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해 함께 건물 밖으로 행진을 나섰다. 훗날 존스의 동생 콥스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 모든 게 실제로 가능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고 말했다.

동맹 휴교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교에 2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는 새 건물을 약속하기는커녕 학생들을 협박했다. 공동 행동은 NAACP(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회)의 두 지도자이자 변호사였던 스팟츠우드 로빈슨과 올리버 힐의 시선을 끌었고, 이들은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의 연방 법원 상대로 소송(데이비스 대 프린스 에드워드 카운티 교육 위원회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를 분리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았다. 훗날 이 소송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브릭스 대 엘리엇 소송(Briggs v. Elliott),’ 델라웨어 주의 ‘겝하트 대 벨튼 소송(Gebhart v. Belton),’ 워싱턴 D.C.의 ‘보일링 대 샤프 소송(Bolling v. Sharpe)’과 함께 브라운 대 교육 위원회 판례를 뒷받침하는 소송으로 묶여 미연방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인종 차별은 부당하다고 판결 내리는데 기반이 됐다.

공동 행동 후 존스는 지속적으로 협박을 받았다. 결국 그의 부모는 그를 다른 지역 학교로 보냈다. 존스는 대학 졸업 후 목사와 결혼해 살다가 1991년 골암으로 사망했다.

존스가 개입했던 소송은 5개의 소송 중 유일하게 학생이 주도한 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NYT는 NAACP의 법정 방위 및 교육 기금의 현 회장인 셰를린 아이펄이 “사람들은 바버라 존스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9/05/08/obituaries/barbara-johns-overlooked.html
http://www.motonmuseum.org/biography-barbara-rose-johns-powell/
https://www.blackpast.org/african-american-history/powell-barbara-rose-johns-1935-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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