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치범으로 사형대 오른 첫 여성, 소피아 페로브스카야
러 정치범으로 사형대 오른 첫 여성, 소피아 페로브스카야
  • 이로운넷=박유진 기자
  • 승인 2019.07.13 0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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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외면한 사람들]끝.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급진 사회주의자
비밀 혁명 단체 가입...황제 알렉산드르 2세 암살
“○○씨 별세, △△ 교수 모친상=□일 A병원 발인 ◎일 오전. 연락처 02-1234-5678” 
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G. Broling이 그린 알렉산드르 2세 사망 장면. /사진=독일역사박물관 온라인 홈페이지 출처

‘위대한 해방자(Alexander the Liberator)’, ‘자유의 차르*’로 불렸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 그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재판제도를 신설하는 등 기득권에 맞서는 정책을 다수 만들었다. 그러나 통치 기간 후기에는 아버지 니콜라이 1세와 마찬가지로 보수성을 띠었으며, 러시아 백성은 모두 황제의 자녀들로서 차별 없이 차르를 섬겨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의회 설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고 정당이나 이익집단의 결성도 불허했다.
*차르(czar): 러시아 황제를 포함한 슬라브계 여러 국가의 군주 칭호.

1800년대 후반은 급진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여럿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알렉산드르 2세의 생은 결국 이들의 암살로 끝났다. 소피아 페로브스카야(Sophia Perovskaya)는 이 암살에 가담한 주체 중 한 명이었다. 러시아에서 여성으로써는 최초로 정치범이라는 명목으로 사형 당했으며, 러시아 혁명을 앞당겼다고 평가받는다.

톨스토이는 소피아 페로브스카야를 '이념적인 잔다르크'라고 표현했다. /사진=스파르타쿠스 에듀케이셔널

소피아는 1853년 9월 13일 러시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총독 레프 니콜라예비츠 페로브스카야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독재적인 아버지와 마찰이 있던 소피아는 1869년 대학교로 진학했다. 당시 여성들은 잘 가지 않는 길이었다. 대학 시절 오빠로부터 급진주의 문학을 접하고 부정하고 잔인한 사회적 불평등에 자극받으면서 소피아는 10대 나이에 집을 떠났다.

소피아는 ‘토지와 자유(Land and Liberty)’라는 비밀 혁명 조직에 들어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토지와 자유는 러시아 왕정이 몰락해야 하며, 토지의 2/3이 소작농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토지와 자유는 ‘인민의 의지파’와 ‘검은 리파티션파’으로 나눠졌는데, 전자는 테러에 찬성했고 후자는 반대했다. 소피아는 1879년 인민의 의지파에 들어갔다.

'피의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피의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그리스도 부활 성당. 알렉산드르 2세가 이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이들은 차르가 헌법 개혁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여겼다. 두 차례 알렉산드르 2세를 살해하려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침내 1881년 3월 13일, 소피아와 그의 동료들은 차르의 마차를 따라 암살을 실행했다. 소피아는 차르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희색 손수건을 흔들어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직원 니콜라이 리사코프와 티모페이 미하일로프가 던진 폭탄은 마차를 피해 기병들이 있던 위치에 떨어졌다. 부상병을 살피기 위해 내린 차르는 또다른 조직원 그리네베트스가 던진 폭탄에 맞아 즉사했다. 훗날 아들 알렉산드르 3세는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를 기리이 위해 이 암살 장소에 그리스도 부활 성당을 지었다. 성당은 ‘피의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공범자 중에는 잡힌 이도 있었고 탈출한 이도 있었다. 소피아는 붙잡히고 나서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지만 다른 공모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4월 15일 그와 투사들은 검은 옷을 입고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사형수 호송차로 호송됐다. 목에는 ‘차르 살인마(Czarcide)’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었다. 사형대에서 목이 매달리기 전, 소피아는 자신의 연인 안드레이 젤랴보프를 포함한 공범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씩 키스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소피아가 죽고 36년 후,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300년 지속된 황제 시대가 끝났다.
 

자료출처: 
https://www.nytimes.com/2018/05/30/obituaries/overlooked-sophia-perovskaya.html  
https://www.cambridge.org/core/books/russia-in-the-age-of-alexander-ii-tolstoy-and-dostoevsky/sophia-perovskaya-radicalism-and-the-russian-people/0FE552A15D800DFAAAE1D669863023ED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9655&cid=59014&categoryId=59014  
https://spartacus-educational.com/RUSperovskaya.htm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79639&cid=40942&categoryId=3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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