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다가 한 켠에 이렇게 한 줄로 끝나는 부고 기사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 언론의 부고 기사들은 매일 지면을 할애해 망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 중에도 뉴욕타임즈는 그동안 백인 남성에 대한 부고가 대부분이었다며 2018년 3월부터 ‘간과했지만 주목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Overlooked)’라는 부고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운넷은 이를 참고해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24살 미국 여성 마거릿 이브스 애벗(Margaret Eves Abbott)이 어머니와 함께 1899년 프랑스에 간 건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지만, 다음해 10월 4일 파리에서 열린 골프 경기를 통해 미술가가 아닌 골프 선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올림픽 챔피언인지 알지 못했다.
마거릿 애벗은 1878년 6월 15일, 인도의 캘커타 지역에서 태어났다. 미국 상인이었던 아버지가 죽은 후, 그는 남은 가족과 함께 미국 보스턴 주로 이사 갔다.
뉴욕타임즈(NYT)에 의하면 애벗은 미국 지방선수권 골프 대회에서 상을 타곤 했다. 그는 미술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 에드가 드가와 오귀스트 로댕 등 유명한 미술가와 함께 작업했다.
미국 우세스터 주립대 명예교수 린다 풀러는 그의 책 ‘여성 올림피언’에서 애벗이 “즉흥적으로” 파리 골프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고 표현했다. 그는 프랑스 중북부 도시인 콩피에뉴(Compiègne)에서 우연히 여자 골프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대회가 올림픽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모두들 ‘올림픽’이라는 단어는 제외한 채 ‘박람회 경기’ 혹은 ‘파리만국박람회 경기’라고 칭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올림픽은 지금만큼의 뜨거운 관심을 받지 못했다. 1만 명이 넘는 선수가 참가하는 요즘의 올림픽과는 달리 1900년 올림픽에는 24개국에서 총 997명의 선수들이 참가했으며, 개회식도, 폐회식도 없었다. 올림픽 역사학자인 빌 말론은 NYT와의 인터뷰를 통해 “1900년의 올림픽 대회는 파리만국박람회의 사이드쇼였다”고 말했다.
애벗이 파리에서 참가한 대회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대회를 이은 2번째 근대 올림픽으로, 여성의 참가를 허가하기 시작했다. 여자 선수들은 골프, 테니스, 보트 타기, 크로켓, 승마 부문에 출전할 수 있었다. 골프 대회에 출전한 애벗은 9개 홀에서 47타를 쳐 10명의 출전자 중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풀러에 의하면 그는 대회 후 친척들에게 “다른 선수들은 하이힐과 달라붙는 치마를 입는 등 게임의 본질을 잊은 채 출전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애벗은 이후에도 프랑스에 남아 프랑스 골프 챔피언십에 참가해 우승했으며, 1901년 미국으로 돌아와 ‘둘리 씨(Mr. Dooley)’ 시리즈를 탄생시킨 풍자 작가 핀리 피터 던과 결혼했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 각본가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필립 던이 이 부부의 아들이다.
애벗은 자신이 올림픽 역사에 남을 미국 첫 여성 우승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1955년 6월 10일 미 코네티컷 주 그린위치 시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알려진 건 플로리다 대학 교수 파울라 웰치 덕분이었다. 1970년대에 하계올림픽에 참가한 여성 선수들에 관해 연구하던 중 애벗을 알게 됐고, 애봇의 자식들에게 그가 미국 첫 여성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올림픽 골프 종목은 1904년 경기를 끝으로 사라졌다가 112년 후 2016년 리우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부활했다.
자료출처:
http://www.womengolfersmuseum.com/Famousgolfers/AbbottMargaret.htm
http://www.sportnest.kr/3087
https://www.olympic.org/margaret-abbott
http://www.womengolfersmuseum.com/Famousgolfers/AbbottMargaret.htm
Linda K. Fuller, 「Female Olympians: A Mediated Socio-Cultural and Political-Econom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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