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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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TX를 타고 지방에 내려갔다 올 일이 있었다. 잠도 오질 않고 책도 잘 읽히지 않아서 창문 밖을 좀 봤다. 그러다 평상시에 눈 여겨 보지 않던 객차 내 스크린 속 영상을 봤다. 놀랍게도 ESG와 관련된 일종의 공익캠페인이 여러 개 나오고 있었다. 민간 대기업도 있고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이 만든 것들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보니 온라인 채널 확산은 물론이고 일부는 방송광고나 극장광고에도 내보내는 것 같았다.

물론 2010년 창업한 직후 ESG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직 CSR도 힘든데 어디에서 또 세 글자 짜리 개념어를 가져와서 이러느냐는 반응들이 기억났다. 그 당시 대부분 무시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이렇게 큰 관심은 기쁨을 넘어 신기한 수준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해당 영상을 찬찬히 뜯어보자면 아쉬움을 느낌과 동시에 걱정이 된다. 영상의 세련미나 주목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영상은 ESG가 가지는 관점, 노력, 만들어가는 변화 등의 내용을 알리는 콘텐츠가 아니었다. ESG라는 개념 자체를 인식시키기 위한 영상에 가까웠다. 

한 기업 영상의 예시를 들어보면, 래퍼가 나와서 ESG의 발음인 ‘이에스지’의 후반부를 ‘애쓰지’ 혹은 ‘쓰지’로 활용하여 여러가지 말장난 같은 방식으로 ‘미래는 우웩 쓰지’라거나 ‘작은 실천 하나부터 애쓰지’같은 랩을 하고 그에 맞는 영상이 재미있게 나타난다. 플라스틱을 덜 쓰자거나 전기를 아끼자는 캠페인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고 이를 ESG와 연결하기는 한다.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쉽고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한 괜찮은 영상일 수 있다. 이런 영상이 유튜브에 가득하고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너무 가볍다고 비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볍게 접근해서 더 좋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 일에 박수를 쳐야 하겠다. 그러나 지금의 영상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일인지 알기가 어렵다. 보통 이런 말장난을 집어넣은 광고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같은 저관여 제품의 이름을 알리고 주목도를 만들 때 사용된다. 좋아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이 어떻게 광고에 표현되는지 떠올려보자. 반대로 철학이 담겨있고 고관여인 상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광고가 만들어지고 서비스되는지 생각해보자. 후자는 단순하게 그 이름만 반복해서 각인 시키는데 집중 될리가 없다. ESG가 아이스크림인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ESG는 본질적으로 투자자의 관점으로 출발했다.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환경, 사회, 거버넌스 요소의 기여가 확증되면서 실제적인 트렌드가 됐다. 심지어 B2C 기업의 고객이나 배후 대중이라 하더라도 ESG라는 개념 자체를 자세히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ESG라는 단어가 입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도 전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이 현상 자체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 도대체 어떤 대행사가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을지 상상해보자. 그들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도 부족인지, 철학의 부재인지, 그저 역량의 한계인지 모를 일이다. 이 광고를 발주한 실무자는 도대체 무슨 목표를 가지고 이런 과업을 요청하였고, 그 기업의 임원은 어떤 전략을 기반으로 이를 결재하는 의사결정을 실행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혹시 그 기업은 ESG에 대해서 크게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 잘 알더라도 어떤 압력이나 왜곡된 관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또는 ESG에 대해서도 다 이해했고 실행도 유의미하게 되고 있지만 단지 커뮤니케이션에 크게 미숙하다는 이해도 가능하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정부는 이것이야 말로 과장광고로 규제해야 하지 않을지, 왜 전문가들은 이를 명확하게 비판하지 않는지, ESG위원회라고 잔뜩 생긴 그 기관들은 역할을 하지 못하는지 궁금증이 줄을 잇는다. 

광고 영역의 한 전문가에게 질의를 해보니 이런 영상을 만들고 유명 모델을 출연시키고 다양한 채널에 송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억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수십억원은 ESG 이행과제를 수행하는데 투입하는 것보다 이런 광고를 진행하는 접근이 그들에게 더 유익이 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ESG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ESG라는 트렌드를 진지하게 사유하고 실행하는 사람과 조직들이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이다. 금방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처럼 ESG가 소비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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