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한 선배가 기존에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을 고사하는 일을 본적이 있다. 그 이유는 얼마전 몸이 좀 좋지 않았는데 자신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해당 음식에 약한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되도록이면 그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우리는 개인이건 조직이건 제한된 자원 안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항상 다른 선택들을 포기하는 결정이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이 동의하는 주제이다. 때문에 새롭게 무엇이 정말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그 새로운 요인이 중요한 선택을 기존과 다르게 뒤바꿀 수도 있을 때를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예시로 보자면,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건강을 상당히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해당 음식은 포기하고 좀 더 건강한 다른 음식을 선택하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중요하다고 말은 해놓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숨겨진 다른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거의 모든 경영과 관련된 부문에 압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ESG와 관련해서 이 생각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거의 모든 경영과 관련된 부문에 압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ESG와 관련해서 이 생각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거의 모든 경영과 관련된 부문에 압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이 생각을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각 그룹사의 총수와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두 ESG를 중요한 화두로 삼았다. 신문의 경제면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끊임없이 ESG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관심은 임팩트 비즈니스 영역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물론 너무나 환영하고 기대하였던 바이다. 그러나 지금쯤 되었을 때 정말 이 흐름이 기업과 투자자와 나아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점검하고 더 나은 방향을 위한 정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연구 자료나 기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ESG 펀드가 기존의 일반 국내 주식형 펀드와 그리 실제로 다르지 않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꼬집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작년 연구에 따르면 ESG 펀드도 일반펀드와 동일하게 총 자산의 절반 이상이 대형 혼합·가치주로 구성되어 있고, 또 포트폴리오상 점수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진단했다. 구체적으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MSCI KOREA ESF 리더스'의 ESG 점수는 62.7점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인데, 동일한 기준으로 ETF 대표 상품인 'KODEX200'도 60.6점을 기록하고 있어 사실상 큰 차이가 없었다. ESG 펀드가 늘어나고 있다는 일은 축배를 들어 마땅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포트폴리오와 다르지 않다면 도대체 미래는 과연 개선되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럼 기업의 활동은 어떨까? 과연 ESG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체계와 새로운 솔루션이 도입되었을까? 아니면 예전처럼 하던 일들을 그저 ESG로 다시 표지 갈이를 하고, 별다른 전략이나 역할의 차이는 없으면서 담당 팀 이름을 ESG 팀으로 바꿔가면서 대응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따져볼 일이다. 이런 겉모습만 바뀌는 일은 이전에도 유행이 바뀔 때마다 있었으니 말이다. 기업이 진짜 ESG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그런 겉모습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하는지에서 드러난다. ESG가 다들 발표하듯이 중요하다면 어떤 활동은 수익성이 당장은 보장됨에도 포기될 것이다. 어떤 전략은 당장에는 기존의 관점에서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ESG 활동 제고를 위해 추진되어야 한다. 그렇게 기존에 보지 못한 의사결정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비로서 우리는 진짜 ESG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아직 의사결정의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 상황이 두려운 까닭은 ESG 가 또 하나의 유행처럼 지나가고 말 것 같기 때문은 아니다. 이런 대충 뭉개는 방식이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처럼 너무 반복되어서 우리 기업들이나 사회가 무감각해지고 마는 것에 대한 걱정이 첫번째이고, 나아가 이 ESG로 대표되는 변화는 실재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진짜 늑대가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도 대강하고 넘어가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우물쭈물하다가는 우리 양들이 늑대에게 다 먹히고 만다. 이 상황을 개선하려면 이번에 외치는 양치기 소년들은 더 진정성 있고 열정적으로 기업과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과 사회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만이 아니라 지금의 전세계적 흐름을 읽어야 한다. 왜 다른 글로벌 거인들의 발걸음이 저리도 바쁜지를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 금융, 그리고 사회가 부디 실기하지 않고 현명한 포기와 선택을 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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