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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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크로스라는 말은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데, 공식적인 표현이라기 보다는 사실 사이비단체에서 자주 쓴다. 이때 중력장이 크게 꼬여서 지구가 박살 나며 세상이 멸망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런 시기 몇 번을 지나 아무 일도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태양계 질량의 99.86%가 태양이며 나머지의 절대 다수도 목성의 질량이다. 결국 지구가 전체 행성들의 정렬에 그리 새로운 치명적 문제를 맞이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무엇인가가 한꺼번에 힘을 주었을 때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지난 2018년 2천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 인근의 쓰나미는 만조 때 일어나서 더 피해가 커졌다. 다른 예를 보면 어떤 무거운 물건을 넘겨야 할 때 단번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그 물건을 살살 흔들기 시작하면서 흔들리는 방향으로 힘을 주면 점점 진폭이 커지다가 결국 넘어뜨릴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아주 간단히 보자면 그네를 타는 원리도, 트램펄린으로 높이 뛰는 원리도 다 비슷비슷하다. 결국 어떤 힘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주어지면 개별적인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회적가치와 관련된 영역의 변화는 임팩트의 그랜드 크로스를 기대하게 한다. 물론 이 판이 박살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아니고, 지금 사방에서 발산되고 있는 힘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잘 모아져서 진짜 그간 바라마지 않던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이뤄내길 기대하는 것이다. 

임팩트스퀘어를 창업한 지 12년차, 이 영역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이제 14년차가 되어간다. 그런데 단연코 지금과 같은 때가 없었다. 정부, 기업, 비영리, 소셜벤처, 심지어는 고객과 금융까지 모든 분야에서 사회적가치에 대한 열망과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간 하나하나의 분야에서의 성장과 노력으로는 넘기 어려웠던 벽이 있다. 기업이 좀 변하려고 해도 고객과 정부가 거기에 호응하지 않으면 보통은 일시적인 일탈로 끝난다. 소셜벤처가 특정 영역에서 혁신을 일으켜도 이 일이 다른 인접영역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시장의 파도에 휩쓸려 변질되기도 한다. 금융은 참 오랫동안 사회적가치를 비용에서 투자나 자산으로 옮겨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변화는 동시다발적이고 거의 전 영역에서 관찰되고 있다. 이 때 올바르게 방향을 잡는다면 드디어 판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다. 칼 폴라니의 시대부터 시장과 사회가 갈등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지금도 경제적가치와 사회적가치가 갈등하고 상충되는 논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만큼 시장이 그대로 흘러가는 힘, 탐욕이 지배하는 힘은 강력하다. 이를 거슬러 새로운 물길을 내려면 지금과 같이 힘을 모아 하나의 방향성을 마련해야 한다. 마침 코로나로 많은 것이 멈추고 변화하는 시기에 놓였다. 그리고 이제 그 혹독했던 시절도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전환을 만들기에 딱 좋은 시기이다.

나는 무분별한 이상주의자나 사이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간절히 임팩트의 그랜드 크로스를 기대해본다. 물론 아직 하나하나를 보면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수 있다. 아직도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통과되지 않았고, ESG며 사회적가치 측정이 여전히 홍보용으로 취급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이 모여서 시대의 전환을 만들길 기대한다.

행성과 달리 이 일은 각자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이고, 사이비단체와 달리 이 그랜드 크로스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바라마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 같이 행군을 할 때 구호에 발을 맞추고 옆 사람을 살피며 보조를 함께한다. 지금은 내 할 일을 잘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그들과 함께 지향점을 향해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나의 선을 넘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랜드 크로스의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디 훗날 이 시기를 돌아보며 중요한 시대적 전환이 있었다고 기억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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