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는 늘 강의 요청이 많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ESG와 소셜벤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진다. 환영할 일이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강의 자리에서 받은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답변하기까지 잠시 생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셜벤처, 사회적경제, 그리고 크게 보면 대기업의 ESG 같은 영역을 다 합쳐서 봤을 때, 이걸 ‘생태계’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요? 스스로 지속가능한 하나의 생태계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마음은 바로 “그럼요”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취지로 답하긴 했지만,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이 ‘생태계’는 지금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성장성이 높은 한 때를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과거에 안 보이던 게 보인다. 자금이 많이 들어왔지만 그 돈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지금처럼 돌아가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이대로 계속 가면 진짜 답이 있는 건지 등이다.

인재 유입·육성에 대한 고민이 답변을 몇 초 지연시킨 주범이었다. 생태계에서 인재는 눈에 바로 보이지 않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단 인재 유입은 과거에 비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정말 좋은 인재가 키워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과 반성이 있다.

소셜벤처에는 중간관리자, 운영책임자 등을 찾는 연락이 잦다. 요즘에는 ESG 업무를 담당할 임직원에 대한 문의가 대기업에서 온다. 학교에서는 강의를 맡을 사람이 없다고 하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하는 심사와 논의의 장에 참석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창업 초기에 스탠포드 사회혁신센터 이사를 만났을 때 센터에서 어떻게 인재를 훈련하고 생태계에 공급하는 노력을 기울이는지 들을 기회가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 하나하나를 우리 생태계에 대입해보면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방향을 향해서 가야할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인재를 키우려면 적절한 교육과 훈련은 기본이라고 했다. 개론적인 지식을 전달하자는 수준이 아니다. 이론보다는 경험적이고 통찰적인 교훈을 축적하고 전수하며, 해당 생태계에 적합한 전문 지식을 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지금 우리 생태계에 사회적경제 조직 중간관리자를 키울 과정이나 훈련이 충분히 있는가 생각해봐야 한다. 보수교육 과정 자체가 희소하고, 진행되더라도 잘 짜인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소위 전문가라는 개인을 한명씩 모은 조합일 뿐 아닌가.

두 번째로는 인재들이 이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권한을 가져볼 기회가 충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우리는 이 생태계에 적합한 헤드헌팅 같은 ‘알선업’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조직 간 이동에 대해 불편해하는 감정도 있다. 이동한 조직에서는 비슷한 일을 했는지부터 확인한다. 해당 조직에 지친 이들이 아예 생태계를 떠나려고 할 때 저지할 안전망도 없다.

스탠포드 사회혁신센터의 이사는 마지막으로 인재에게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자원을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에서 가장 마음이 어렵다. 지금 IT업계에서는 연봉을 일괄 1000만원 올린다, 2000만원 올린다는 이야기가 연일 나온다. 물론 연봉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건 아니다. 다 때가 있는 거고, 그들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점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사회혁신을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사회가 어떤 가치를 인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과연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세상을 바꾸는 일에 우리는 충분한 비용을 지급하는가? 문화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재단·기업의 사회적 가치 활동이 충분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면, 그에 적합한 보상이 뒤따르는지 검토해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사회적 가치를 그렇게 창출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성경에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는 말씀이 있다. 이 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면 생태계를 둘러싼 지불자들의 어떤 부분은 거짓일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몇 년이 지나도 우리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 생태계에 미래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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