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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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발표를 듣다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글로벌에서도 가장 높은 편인데, 그 수만개에 달하는 정부 R&D 과제 중에 98%가 성공으로 평가됐다는 것이다. 당연히 글로벌에서도 높은 수준일 것이다. 아니 통계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저런 성공률이 평범한 국가에서 있을리 없다.

블룸버그가 혁신 국가라고 칭찬하는 것 같은 맥락에서 저 100%에 육박하는 수치가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로 오해될지 모르겠지만, 정반대로 부끄럽고 안타깝다는 이야기이다. 저 완벽에 가까운 비율은 무엇을 의미할까? ‘너무 쉬운 과제에 도전했거나’, ‘정상적인 성공 평가가 아니거나’ 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비단 연구개발 영역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 소셜벤처의 사회적 가치 측정이나 평가 보고서를 살펴보면 비슷하다. 대기업의 사회공헌과 관련된 보고서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아도 대체로 유사하다. 무엇인가 잘 못했다는 이야기 하나, 실패했다는 설명 한 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정말 다 성공한 것일까? 정말 자랑스러운 현실을 대변하는 성공률 100%의 소셜벤처, 완벽한 사회공헌과 ESG 프로젝트가 가득찬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최근 1년에도 수십개의 사회적 가치 측정 리포트를 개발하고 있다. 물론 전문성 높은 담당자들이 작업을 하지만 가끔 그 논의에 참여도 하고 품질을 높이기 위한 개입도 진행한다. 그런데 때로는 담당자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다. 무조건 큰 숫자가 나오게 해달라며 막무가내로 해당 기관에서 주장을 하는 경우이다. 사회적 가치 측정은 평가와 달리 주관성이 상당히 배제되고 완벽하게 엄밀하지는 않더라도 어느정도의 객관성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그 이야기는 전문가가 없는 가치를 억지로 만들어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옳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사회공헌이건, 비영리조직이건, ESG 프로젝트건, 소셜벤처건 사전에 사회적 가치가 너무 엉망으로 나오지는 않을지 가늠을 해보는 과정이 중요하게 포함된다. 만약 사회적 가치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작게 산출될 가능성이 높거나, 실제로 사업이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해당 사실을 사전에 알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측정을 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되묻는다. 그래야 추후 엉뚱하게 사회적 가치를 부풀려달라는 억지주장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에 대한 성과를 여기저기에서 보도자료를 내고 상을 주거나 받거니 하며 연말 연초에 참 시끄러웠다. 그런데 네덜란드 연기금을 운용하는 APG에서는 우리나라 10개의 대기업에 서한을 보냈다.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된 부분에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10개의 대기업이 유독 문제인 것은 아니다. APG가 이미 지분을 매각해버린 기업도, 아예 투자 대상에서 스크리닝이 되어 빠진 기업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 기업들 중에는 ESG 평가가 좋은 곳들도 있고, 스스로 캠페인과 홍보를 줄기차게 하는 곳도 있다. 심지어는 상을 받은 곳도 보인다.

과거에 SK이노베이션의 사회적 가치 측정 프로젝트 참여하여 리뷰할 때가 기억난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의 대표적인 석유화학기업이다보니 탄소배출을 비롯한 여러가지 환경영향이 있다. 그래서 기업의 총 사회적 가치는 큰 마이너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당시 최고경영자는 그 보고서의 맥락을 수용했다. 나아가 그 마이너스를 내부적으로 줄여가고, 또 신사업과 외부 협력을 통해 중립화하는 방안을 설계 요청하여 그렇게 제안하였다. 수많은 성공 스토리 사이에서 그렇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SK이노베이션은 지금도 그러한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관리해가고 있다. 정말 잘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 접근 태도가 옳고 또 건강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실패는 당연히 늘 생기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덮어버리고 외면한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인정한 뒤 해결책을 찾는다.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이 생태계에서 실패가 없는 것은 도리어 큰 실패다. 온갖 불분명한 성공스토리만 난무하는 소셜벤처와 ESG 등의 영역은 지금 우리가 진짜 실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경고하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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