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 대기업과 소셜벤처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했다. 매년 몇 번씩 진행해온 사업과 비슷해 익숙했다. 그런데 기업 측에서 점점 액셀러레이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그리 기밀하진 않아 필요한 자료를 공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지금 이 과정을 모두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하게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니시죠?"

놀랍게도 정말 오해하고 있었다.

"아 그렇게 할 수 없나요?"

이런 오해는 사업, 아니 최소한 ‘창업’에 대한 세계관이 어떻게 왜곡돼 있는지 보여준다.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수능을 보는 것처럼 여기는 거다. 스타트업을 그저 규모가 작은 대기업의 미숙한 버전 정도로 바라본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스타트업과 협업할 때와 달리, 직접 지원할 때는 결과가 별로인 경우가 많은 이유 아닐까.

미국의 인류학자 애나 칭(Anna Lowenhaupt Tsing)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산타크루스캠퍼스 교수는 "도로는 쉽고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도로를 닦고 효율적으로 완주하는 데 큰 가치를 부여해왔다. 도로를 벗어나면 두려워하고 잘못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한 생각이 지금도, ‘스타트업’이라는 영역에, 심지어 ‘소셜벤처’에 적용될 거라 믿는 건 상당히 큰 착오다. 미국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좋은 학교 학생들이 형태만 따라하다 실패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시장은 가르쳐준 내용을 문제로 내고 채점하는 교수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사람마다 사업마다 다르다. 어떻게 정해진 틀 안에서 대응할 수 있을까. 임팩트스퀘어는 투자안을 검토할 때 너무 많은 대회에서 수상한 기업가를 오히려 선호하지 않는다. 사업이 아닌 다른 일에 집중했다는 이유도 있고, ‘상 타는 일’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소셜벤처는 급변하는 사회문제를 다룬다. 성장 과정에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풀이도 미진하다.

기업가는 사회에서 늘 희소한 존재다.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라고들 한다. 대량생산체계로 만드는 기능적 관점의 인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올랐던 봉우리에 오르는 방식으로, 등산로를 따라, 권장 장비를 다 착용하고 올라가는 기업가는 없다. 이미 마련된 최적의 등산로를 단순 암기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스타트업 업계에 유니콘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정말 기쁜 일이다. 소셜벤처 분야에도 큰 혁신을 일으키는 기관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다만 이 일이 마치 정부와 몇몇 기관이 수년 전부터 외치던 ‘유니콘 키우기’ 바람의 결과라고 오해하는 건 금물이다. 기업가의 도전에 대한 모독이다. 창업과 기업가를 바라보는 관점, 그들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의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가 자신의 자각이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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