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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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차 접종을 마쳤다. 아직 접종 후 14일이 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장용 QR 코드를 찍으면 ‘접종완료’라는 음성이 들리면 꽤 기분이 좋다. 화이자 백신은 1차 보다 2차를 맞은 뒤 더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다소 걱정했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잘 모르긴 하지만, 2차 접종이 더 아픈 이유는 1차 때 생긴 항체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접종만으로 코로나19의 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항체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만 코로나19에 걸릴 걱정을 덜게 된다. 백신접종이라는 개념은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뿐 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 진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그 문제의 치명성이 상당하다면 다소간의 과정적 불편함과 아픔을 각오하고 백신을 맞는다. 그 일의 상대적 유익함을 알기 때문이다.

경영학에는 ‘빅배스(big bath)’라는 개념이 있다. 대청소를 한다는 말처럼, 크게 마음먹고 목욕을 한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는 매일 목욕을 할 수 없었을 테니 한 번에 지저분한 것을 다 떨어내는 상황을 표현한 것 같다. 조직을 경영하다 보면 실수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특히 회계 영역에는 이런 문제들이 쌓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어떤 순간에 오래 쌓여 있던 문제들을 한 번에 손실처리 하거나 해결해버린다. 

보통은 신임 CEO가 들어와서 이런 빅배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까닭은 그 전 CEO나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 문제들의 책임을 이어서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기 초에 해당 문제를 정리하며 이 일은 나와는 상관없다고 선을 긋는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 소셜벤처를 비롯한 사회적 어젠다는 규모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특히 소셜벤처의 양적성장은 그 전과 완전히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 수천억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가 결성됐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작년과 올해에만 4개의 소셜벤처가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대기업 ESG와 연계해 지금도 수많은 소셜벤처들이 빠르게 성장중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말미쯤 되어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 이 괄목할 성장의 이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한계와 남은 과제들을 정리해야 하는 일에 에너지를 좀 더 투입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과제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니 우리의 잘한 것과 아직 미흡한 부분을 정리해 다음 사람들에게 넘겨주면 된다. 

다음 정부가 소셜벤처와 사회적 섹터에 어떤 관점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사실 그보다도 소셜벤처와 사회적 섹터가 지원받은 것에 비해 얼만큼의 실제적인 성과를 사회에 증명할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여전히 우리 생태계는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아직도 쌓이고 있다.

얼마 전 이번 정부의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의 성과와 미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공을 인정하고 동시에 미래를 위한 정리를 잘 할 수 있기를 제안했다. 그런데 다소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다. 물론 이해는 된다. 스스로 기여하고 애썼는데 이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 그 자체로 기분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백신을 미리 맞는 것처럼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서로가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문제를 지적하고 대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안전하고 건전하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빠르게 성장하다 보면 이것저것 불편한 부분이 남을 수 있다. 지금 스스로 반성하고 그 불편함을 해소해 나간다면,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스스로 목욕을 시작하고 보이는 부분들이라도 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은 일이다. 그래야 혹시라도 도래할지 모르는 빅배스에 우리가 그간 겨우겨우 쌓아온 것들까지 쓸려 내려가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이제 우리는 스스로 목욕을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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