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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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문명의 시작을 보여주는 진짜 증거는 낚시 바늘이나 토기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부러졌다가 붙은 다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문명 이전의 사람은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가지고 살아남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을 생각하면 된다. 사슴 떼가 다니다가 포식자를 만나 공격을 받은 뒤 한 사슴은 가까스로 살았으나 다리가 부러졌다고 생각해보자. 당장은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뒤의 위협들을 비켜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당시에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며, 무리가 다친자를 보호하기 시작하고 나을 때까지 먹일 때 비로소 문명이라고 말할만 하다. 그래서 마가렛 미드의 말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지금 기업은 인간에게 새 문명시기가 도래하는 것처럼 ESG를 맞이하고 있다. 이전이 원시사회와 같다는 말은 아니지만, 마치 그런 문명의 전환이 일어나는 상황처럼 크게 단절적으로 급변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기업이 ESG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나요?" 사실 답하기 참 어려운 주제다. 기업의 세세한 내용을 다 알기도 어렵고, 본질적으로는 도대체 저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 불구하고 그런 질문으로 시작하여 얻게 되는 생각거리는 있다.

무엇으로 소위 ESG 문명을 판단하는 것이 옳을지에 대한 고민은 해볼 가치가 있다. 성대한 ESG 경영 출범식을 하거나 유튜브에 100만 조회수를 가진 ESG 캠페인이 있으면 ESG를 받아들인 기업이 될 수 있을까. 담당 팀의 이름을 ESG로 바꾸고 기존의 사회공헌 사업들을 적당히 ESG 사업으로 포장해서 자랑하면 적절한 증거가 될까. 그보다는 오히려 고위 임원이 적극적으로 ESG 학습에 참여하고, 작더라도 명확하게 ESG 요인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이 바뀌는 일들이 관찰되는 것이 진짜 시작 ESG 문명을 확인하는 지점이다. 사회와 조직과 지구에도 곳곳에 부러진 다리가 있다. 그 부러진 곳들이 그대로 경쟁과 시장에 노출되면 그대로 죽음까지 악화된다.  

원시 사회에서 다리가 부러진 이를 보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체라는 연대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을 수 있고, 아마도 집단의 존속이 규범으로 자리잡아 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안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문명의 비범함을 생각할 때 낚시 바늘이나 토기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쉽고 가볍다. ESG에서도 그렇다. 무어라도 그럴듯하게 보여주겠다고 한다면 대기업 입장에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와 조직의 부러진 곳을 부여잡고 치료하고 보호하는 일은 어렵다. 당장 시장에 사냥을 나서야겠는데 지금 도움이 되지 않는 도구에 대한 지출, 단기적으로 이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업 따위는 불편하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의식은 단순히 옳기 때문이라는 구호를 넘어서 기업 스스로의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본질적 과제를 대하는 문명적 혁신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의 부러진 다리를 품지 못하면, 취약계층은 계속 부당한 정도로 값싸게 노동을 제공하고 희생될 것이다. 동식물들은 하나둘씩 멸종되어가고 빙하는 녹고 자연은 파괴된다. 우리 주변 곳곳에 플라스틱 폐기물이 쌓일 것이다. 사람들은 피폐해지고 양극화되며 불행한 사회가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기업들도 시장과 사회와 임직원과 환경을 잃게 된다. 이젠 그 사실을 주요 주체 모두가 안다. 그래서 기업은 이 변화에 대응하면 살아남고, 능동적으로 개척해가면 기회를 얻는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그렇게 변화된 시장과 사회 가운데에서 여전한 가치 창출 조직으로서 기업은 스스로를 증명해가고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곳곳에서 부러졌다 붙었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기업에게 정말 ESG 문명의 도래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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