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영역에서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은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전 세계 커뮤니티에서 그리 중요한 일원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한국의 예시나 상황을 소개하는 일보다는 해외 선진 사례를 잘 학습하고 국내로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가 나서서 제시할 한국의 우수한 사례와 능동적인 흐름이 있고, 세계 여러 기관과 전문인들이 국내 동향에 귀를 기울인다. 행사 때가 아니어도 종종 협업과 참여, 국내 비결 공유를 위한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긍정적인 변화이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불편한 몇 가지의 상황이 있다. 대체로 한국 정보가 해외에 불완전하게 전해졌거나 왜곡돼 인식된 경우다. 많은 경우 정부가 제공한 정보일 때 그 곤란함의 정도가 심하다. 그 정보가 공식적인 속성과 권위를 이미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K(Korea)’가 접두어로 붙은 정책이나 용어를 보고 오는 질문을 대할 때는 정말 곤혹스럽다.

얼마 전 ‘K-ESG’에 대해 해외 콘퍼런스에서 발표 요청이 왔다. 이는 국내에서도 아직 논란이 많고,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이름 자체에는 이견이 있어서 숙고 뒤 해당 주제로는 발제가 어렵다고 답변을 보냈다.

정부는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다 준비되지 않고 그렇게 명료한 계획이 없더라도 말이다. 혹은 민간의 흐름을 보고 중요한 일이라 인식해서 그 분위기를 북돋고자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와 동기는 모두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굳이 전면에 나서고, 국민이 부여한 권위로 너무 쉽게 명명하고, 때로는 본질적인 의미를 왜곡시키는 정책을 펼치는 일이 더 반복되면 안 될 것 같다.

‘K’로 시작하는 영어단어 중에는 ‘N’ 같은 자음 앞에 있어 ‘K’가 묵음인 경우가 있다. 대부분 원시게르만어에서 파생됐는데, 발음의 실용성 때문에 묵음이 됐다고 한다. ‘Know,’ ‘Knight’ 같은 단어가 그 예시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정부의 ‘K’가 붙은 여러 정책과 홍보용 단어에서 ‘K’가 묵음이면 참 아름답지 않을까. ‘K’는 해당 존재의 연원을 알려준다. 그러나 실용적으로 발음하기에는 불필요하므로 발음하지 않는다. 실용적이지만 그 존재를 가리키는 것. 이게 ‘K’가 해야 할 일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21일 K-ESG 지표 정립에 본격 착수했다고 발표했다./출처=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21일 K-ESG 지표 정립에 본격 착수했다고 발표했다./출처=산업통상자원부

예를 들어 ‘K-POP’이 잘 된 이유는 정부가 만든 어휘라서, 그렇게 기획해서가 아니다. 민간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성장에 정부의 뒷받침이 있을 때 사회적경제건, ESG 부문의 어떠한 변화건 올바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국내 ESG 흐름은 세계적인 분위기와 연계돼 중요한 시기에 와있다. 이때 실기하면 우리는 기업이 어떻게 사회와 호흡하는지 쉽게 정립할 기회를 놓치고 추후 비싼 값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책 가이드는 필수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민간과 경쟁을 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거나, 원의를 벗어나 잘 진행되던 흐름을 틀어버리는 경우가 분명 있다. 또, 굳이 그 가이드라는 방식이 이미 전 세계 1000개가 넘는 평가지표를 한국 특화로 만드는 일이어야 하는지, 혹은 그 일이 대기업이 아닌 그보다 작은 기업들에 맞춰진 명분에 동의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일인지 고민해보자는 말이다.

정부 정책이 좀 더 올바른 구획과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영역 또한 많이 남아 있다. 사회적경제가 바라는 각종 법안도 통과되지 않고, ESG 정보 공시 대상을 확장하는 일도 난관을 거치고 있다. 또,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산화탄소 배출 능력이 높은 산림을 조성하겠다고 나무를 베고 다시 심는 일이 진행된다. 과거에는 분명 득이 있었지만, 지금은 참 불편해진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을 인증 제도로 독점하는 상황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넓게는 정말 많은 청년이 주거 문제에 답을 못 찾고 있고, 사회의 사다리로 코인을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사회적 합의나 가이드가 정리되지 않아 혼란이다.

‘K’는 ‘K’가 주역일 때가 아니라, ‘K’가 묵음이지만 제대로 된 결과 뒤에 정체성을 부여할 때 아름답다. ‘K’를 굳이 발음해야 한다고 우길 이유가 뭔가. 우리 정부의 최소한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생태계 안에서라도 ‘K’는 붙여져야 할 곳에 붙여지고, 또 실용적으로 묵음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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