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한 국가 민주주의의 가장 민감한 체온계다. 그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가 발표한 법원 직원 다면평가 결과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받은 평정점수는 1점 만점에 0.21점. 직무 수행 적절성에 '부적절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78%였다. 사법부 최고 책임자가 내부 구성원으로부터 이 정도의 불신을 받은 사례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법원 공무원들은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지키지 못했다"고 규정했다. 비상계엄 사태, 서부지법 폭동까지 이어진 사법부 위기에서 조 대법원장은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선 직전 이재명 당시 후보의 상고심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는 비판까지 더해졌다. 사법부 최고 수장의 무능·무대응·무책임이 집약된 평가다.
그러나 이 내부 불신은 단지 한 명의 대법원장에 대한 '평가 점수'로 환원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내란 관련 재판은 두 판사의 극명한 소송 지휘 대비를 통해 사법부 신뢰 위기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 지귀연과 이진관, 법정에서 마주한 두 얼굴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지귀연 판사는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사건을 맡으면서 법조계는 물론 국민적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구금 기간 산정이라는 기본적 형사소송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희대의 결정은 "사법 시스템 자체가 고장 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았다.
재판 과정도 마찬가지다. 피고인 측 변호인의 과도한 발언과 재판 지연 전략에 대해 단호함이 부족한건 물론, 방청석에서 "귀여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벼운 재판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중대한 내란 사건이 '만담극'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은 과장이 아니다.
반면 형사33부 이진관 판사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변호인단의 반복적인 법정 모욕과 재판 방해 전략에 대해 감치 명령, 출석 요구 강화, 법정 질서 교육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했다. 그에게 법정은 권위의 상징이며, 국민 신뢰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단순한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다. 한쪽이 재판을 방치해 사법 불신을 가중시켰다면, 다른 한쪽은 법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관의 양심을 실천하고 있다. 결국 두 판사의 대비는 '사법부가 어떻게 스스로의 권위와 신뢰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 사법부는 왜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는가
사법부는 헌법이 부여한 독립을 누구의 허락 없이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사법책임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가기 검열'을 선택했다는 방증이다. 이쯤되면 '정치 판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비상계엄 시도, 서부지법 폭동, 사법부에 대한 권력의 직접적 개입 가능성이 드러난 순간마다 침묵을 선택했다. 침묵은 방관이 되고 방관은 결국 사법부를 보호해야 할 자가 사법부의 방패가 아닌 '구경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사법행정은 법관을 지키지 못했고 법관은 법정 질서를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실패는 고스란히 사법부 전체의 신뢰 붕괴로 이어졌다. 사법부는 외부의 공격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무를 포기한 순간 내부에서 붕괴가 시작됐다.
오늘의 사법 신뢰 위기는 정치권력의 압력보다 그 압력 앞에서 책임을 회피한 사법 수뇌부의 선택에서 비롯된 '자기 붕괴형 위기'다. 결국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였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신뢰 회복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에 달렸다.
첫째는 '책임 회피의 전통'을 유지하는 길이다. 인적 쇄신 없이,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않은 채 위기를 봉합하는 데만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 길을 택한다면 사법부는 국민에게 다시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는 '완전한 리셋'을 선택하는 길이다. 사법행정 책임자의 교체, 재판 절차의 투명한 공개, 법정 질서 확립, 법관 독립 보장 체계 재정비 등 구조적 개혁을 통해 사법부가 스스로 개조되는 길이다.
사법부 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뢰 회복을 위한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사법부는 지금 한계선 앞에 서 있다. 사법부 구성원의 78%가 대법원장을 불신한 조직에서 '신뢰 회복'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법부의 신뢰는 판결문이 아니라 판사의 태도, 대법원장의 책임성, 법정에서 실천되는 원칙으로부터 나온다. 그 기본이 무너진다면 그 어떤 개혁 법안도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없다.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여론은 사법부 스스로가 불신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재판부 설치 논의가 사법부가 내란 재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금 사법부가 직면한 위기는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사법부가 사법부 자신을 구해야 하는 존재론적 위기다. 이제 답할 차례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사법부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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