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이로운관리자 에디터

수도권 집중화와 초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빈부격차 등 사회적인 문제도 같이 야기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이 예정된 미래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지방분권이 그 어느 때 보다 당면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과 지방분권전국회의는 올 한 해 동안 '지방분권'에 관한 담론들을 이슈화하는 데 서로의 역량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이로운넷과 지방분권전국회의는 공동기획 세 번째 의제로 <기타 지방분권 균형발전>이라는 주제로 △남부권 메가리전 추진  △시도 통합 추진 △행정수도 완성 △공공기관 이전 △분권형 대학정책 추진 △사법 분권을 의제로 기획 특집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재훈 교수
김재훈 교수

 

"지역 정책주권의 중요성"

김재훈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명예교수)

요즘에는 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 별개의 분리된 개념과 정책체계가 될 수 없고 하나의 개념이며, 정책체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유, 경제적 사회과학적 철학적 기반이 없이 단지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머물면, 많은 정책이 그렇듯 이 역시도 실제 내용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시늉만으로 그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두 개념과 정책이 하나임을 살펴보려 한다. 

지역 경쟁력의 절대우위와 비교우위

가령 우리나라의 업종별 대표적인 지역을 떠올려보자. 제조업을 업종별로 보면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 부문은 울산시와 화성시, 인천시와 아산시 등을 꼽을 수 있다. 전기장비 제조업의 경우는 창원시, 청주시, 인천시, 화성시를 꼽을 수 있다. 다른 많은 업종의 경우에도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역들이 있다. 실제로 제조업의 종사자 수에 관한 통계를 보면 업종별로 이들 지역이 우리나라 전체에서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타 기계, 장비 제조업에서는 화성시, 인천시, 창원시, 부산시, 대구시 등의 순서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국가의 산업정책에서도 이들 업종에 관해, 거기다가 인접한 신규 업종 육성정책에서도 이들 지역이 우선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각 시군지역 내의 취업자 수에서 업종별 취업자 수가 차지하는 비율인 ‘입지계수’를 보면 전혀 양상이 달라진다. 위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 부문은 광명시, 완주군, 경주시, 서산군, 보령시 등의 순서가 나타난다. 전기장비 제조업에서는 청도군, 의왕시, 경산시, 김천시 등의 순서를 볼 수 있다. 또 기타 기계, 장비 제조업은 진주시, 옥천군, 거창군, 함안군, 시흥시의 순서이다. 여기에서 약간의 경제학 지식을 동원해보자. 이렇게 입지계수로 상위에 있는 지역은 만약 지역별로 환율 주권과 통화 주권을 가지고 있으면 지역의 산업 발달 수준에 맞게 환율정책과 통화정책, 그리고 임금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이 지역의 대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국민국가인 대한민국에 소속되어 있어서 이런 정책주권은 당연히 중앙정부에 위임하고 있다. 그래서 전혀 독자적인 정책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그 결과 개별 지역의 경쟁우위는 비교우위 원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절대우위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기존 산업에서,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같이 왕성하게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경우 신규 산업의 육성에서 한번 산업화의 업종 선점을 못 한, 혹은 전국적 점유율을 갖지 못한 지역은 산업의 경쟁우위에서도 밀리고, 또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에서도 선택되지 못하는 이중의 불리함을 안게 된다. 역사적으로 지역의 독립성을 가진 기회가 없었던 나라에서는 이 구조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각 지역이 독자성이 강했던 유럽에서는 인구 규모 3-4백만의 국가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소국들이 많이 존재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유럽이 EU 결성으로 규모의 경제를 꾀해서 경쟁우위를 강화하고자 하는 과정에 가장 역점을 둔 정책이 지역균형발전정책이며 그 이름을 ‘결속정책(Cohesion Policy)’라고 한 것도 이런 배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역균형발전이 없이는 EU의 결속, 따라서 EU가 지속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겠다.

권리로서의 지역균형발전정책

시민혁명을 거쳐 성립한 근대 국민국가에서 천부인권을 인정하듯이 각 지역은 그 주민이 지역의 정책에 관해 주권을 가지는데 그 최종 주권을 국가, 즉 중앙정부에 일부 위임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에 비교우위를 발휘하는 독자적 정책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데 따른 불리함을 보완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이 필요하며, 이는 중앙정부가 지역에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지역의 당연한 권리이라 볼 수 있다. 즉 근대 시민의 천부인권은 주민주권, 국민주권으로 확대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복지국가의 제도 체계가 지역주민의 자치에 기반하는 ‘보충성의 원리’에 입각하듯 지역발전정책에 관해서도 이 ‘보충성의 원리’가 기반으로 작동해야 함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제도적 과제는 이렇게 지역과 지역주민이 정책주권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 범위와 조정 및 협력체계를 잘 설계해야 하는 점이다. 그래서 기초 지방정부와 광역 지방정부, 그리고 중앙정부에 이르는 다층적 거버넌스 구조를 효과적으로 잘 설계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커다란 과제로 남아있다. 총괄적으로, 그리고 교육과 과학, 생태, 에너지 등의 각 부문별로 이 구조를 잘 설계해야 한다. 이 구조가 비교적 잘 설계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예컨대 미국과 유럽에서도 지역의 발전, 지역정책이 잘 작동하지 못함으로써 쌓인 지역의 불만이 오늘날 ‘불만의 지리학(Geography of Discontents)’을 초래했다. 그들 지역에서의 배외주의적 극우 포퓰리즘이 주요 선진국들에서 커다란 이 시대의 과제가 되어 있다. 러스트벨트라 불리는 산업쇠퇴 지역에서, 혹은 해외 유입 노동력이 기존 국내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간주하는 지역들에서 그 불만을 사회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심각하고 어려운 과제이다. 

이런 지역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경제적 단위로서의 지역이 다른 경제적 단위인 기업과 다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기업은 그 경쟁력이 취약할 경우 시장에서 퇴출당하거나 다른 기업에 흡수 합병되어 사라진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공간의 특성에 관해 이론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경제학(그리고 아마도 사회과학)에서는 공간의 문제를 명시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암묵적으로만 다루었다. A.스미스는 시장의 문제가 그의 최대 주제였지만, 국부론에서 시종일관 개인적 관심은 당시 발전한 이탈리아와 같이 영국이 발전할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과제는 분업과 교환이 생산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체계라는 그의 시장 분석에는 명시적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스미스의 고전학파 경제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신고전학파 경제이론 체계를 제시한 A.마샬도 그의 이론구조는 시장의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으로부터 가격이 결정되는 비공간적(몰 공간적) 메카니즘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개인적 관심은 당시 대형 기업들을 중심으로 급성장해오던 미국의 산업조직에 대해 영국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안으로서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산업지구’에서의 암묵적인 지식의 교류와 협력이었다. 그들에게 공간은 암묵적인 방식으로 다뤄진 국민경제였다. 그 뒤 산업혁명을 진행해야 했던 후발 자본주의국가들은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진행해야 했고, 이를 위해 명시적으로 국가권력을 통해 자원을 동원했다. 즉 근대화를 위한 효과적인 단위가 국민국가였다. 

열악한 지역을 위해 특히 필요한 정책주권

신자유주의는 국가경계를 약화시키고 초국적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지역 간의 경쟁을 심화시켰지만, 경쟁 열위의 지역이 시장에서의 기업과 같이 퇴출당할 수 있는 단위는 아니다. 경제이론에서는 자원의 완전한 이동성을 전제하고, 후진국 경제발전에 관한 세계은행의 권고에서도 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근대화를 위한 교육의 공간으로 간주해서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그러나 실제 선진국에서도 인구의 완전한 이동은 이루어질 수 없다. 연령과 숙련 면에서 도시로의 이동이 원활한 집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다. 또 살아온 지역에 대한 애착(애향심) 때문에 선뜻 지역을 버리지 못하는 집단도 있다. 거대도시에서도 일자리, 주택과 교통 등의 정주 환경을 인구 유입에 따른 수요 증가에 맞춰서 재빠르게, 탄력성 높게 공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 나타난 세계적인 거대도시들은 대부분 후진국 내지 개발도상국에 있는 것들이다. 자카르타(3,210만), 방콕(1,940만), 마닐라(2,630만), 뭄바이(2,560만), 델리(3,130만), 라고스(2,010만), 카이로(2,150만), 아크라(520만), 상파울루(2,260만), 리마(1110만), 보고타(980만), 나이로비(610만) 등 저소득 국가에서 거대도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세계개발 보고서, 2009). 2015년에 30개 거대 집적도시 중 23개가 방글라데시, 콩고, 멕시코, 페루,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저소득, 중소득 국가들에 입지해 있다(UN, 2014). 그렇지만 그 거대도시들이 자동으로 경제성장을 낳지는 않았다. 즉 규모가 자동으로 생산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님이 입증되었다. 여기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세계적 추세와 다르게, 뒤늦게 수많은 정책 관료들과 심지어 소위 전문가들도 메가시티가 지역 성장을 담보해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사고들을 볼 수 있다. 즉 지역과 국민국가의 경제발전은 인구 규모와는 상관없이, 필요한 정책체계들과 경쟁요소들이 잘 작동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지역의 경쟁요소에 가장 적합한 정책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중앙의 시점(視點)이 아니라 지역의 시점(視點)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지역 차원에서 보아야 산업의 후발지역, 소규모 지역들도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고, 그 지역에 맞는 경쟁우위의 분야를 발굴해서 지역산업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여건이 불리한 지역들의 발전이 기대처럼 그렇게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할 수도 있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고, 지역 내의 폐쇄적 사회자본이 지역의 정책을 투명하게, 냉철하게 작동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특히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가 지역 집행부에 대해 전혀 감시와 견제 기구로 작동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그에 맞는 제도적 조치, 지역주민의 노력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이른바 경제성의 논리에서 계속 정책순위에서 밀리게 되면 지역 혹은 도시 간에도 이렇게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었느냐, 언제부터 산업도시였느냐?"

김재훈: 대구대학교 교수(8월31일 이후 명예교수), 한국지역사회학회 남부권특별위원장, (전)대구사회연구소 소장, (전)한국지역사회학회 회장,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전)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전)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자문위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 경기도 일자리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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