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수도권 집중화와 초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빈부격차 등 사회적인 문제도 같이 야기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이 예정된 미래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지방분권이 그 어느 때 보다 당면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미디어 이로운넷과 지방분권전국회의는 올 한 해 동안 '지방분권'에 관한 담론들을 이슈화하는 데 서로의 역량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이로운넷과 지방분권전국회의는 공동기획 세 번째 의제로 <기타 지방분권 균형발전>이라는 주제로 △남부권 메가리전 추진  △시도 통합 추진 △행정수도 완성 △공공기관 이전 △분권형 대학정책 추진 △사법 분권을 의제로 기획 특집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상훈 상임대표
이상훈 상임대표

 

지역자치분권의 한 관점으로 바라본 '메가 이벤트' 

이상훈 자치분권전남연대 상임대표

세계박람회라고 쓰고, 자치분권이라 읽는다.

국가균형발전, 지방자치분권을 갈망하고 주창하고 절규한지 그 어느 세월인지, 그 얼마의 열정인지 이제는 지치기까지 한다. 또다시 이 주제로 글을 시작하려니 그저 무망한 생각에 차일피일하였다. 

그러다 문득, 담론과 치밀한 논리전개로 써진 글은 차고 넘치니 다소 엉뚱하지만 구체적 얘깃거리 하나를 가지고 원고분량을 채워보자 하는 꾀가 들었다.

올해 초 부산세계박람회 유치가 허망하게 실패하자 정권이 휘청할 정도로 민심이 사나워졌다. 특히 부산시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더욱 컸을 것이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이벤트라 하는 세계박람회는 그만큼 매력적이며 쓸모가 많은 행사라는 반증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이 사태가 이 원고주제와 잇닿은 지점은 부산이라는 특정지역에서 극도로 예민한 이슈가 되었다는 것에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개최주체가 국가인데 반해 세계박람회는 지역(Local)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열린 이후 지난 170여 년간 모든 세계박람회는 지역에서 열렸다. 그로 인해 세계박람회의 목적과 기능은 다음 두 가지로 뚜렷하게 정립되었다.

첫째, 당 시대의 문물과 문화, 가치지향을 전시한다.

둘째, 이 행사 개최로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재개발, 재창조한다.

미흡하지만 필자가 나름대로 학습하여 정리한 그간 주요 사례를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역대박람회의 주제와 가치, 사후활용 사례>

 

사례에서 보듯 국가에서 유치하여 지역에서 개최하고 그 가치를 세계화하여 종내는 국가와 지역의 균형발전을 일으키는 선순환 촉진제가 세계박람회의 특징이다. (물론 박람회가 성공했을 경우를 전제로 한다.)

수도권 비만과 지방소멸의 위기, 중앙독재가속화와 분권민주주의 쇠락의 시대에, 거대담론과 당위성 주장과 함께 다양한 전략과 전술 차원에서 이와 같은 구체적 실체에 대한 도전과 사례 만들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 원고의 가설이다.

여수는 왜 세계박람회 유치와 사후활용에 목을 매왔는가.

1991년 부활한 지방자치제는 내가 사는 지역의 명운을 내가 결정해야한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었다. 제도를 잘 쓰면 주체적으로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 반대면 지역파산선고를 해야 했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전남여수도 이 위기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토 최남단 지리적으로 고립된 반도의 특성으로 교통, 의료, 교육환경이 열악했다. 그나마 풍부했던 수산업은 여수국가화학산단에서 발생한 오염으로 침체되고, 특 하면 터지는 폭발과 안전사고로 지역정체성은 훼손되어가고 있었다. 

이 위기가 자연스럽게 치열한 고민과 역동성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3여 행정구역을 전국 최초의 주민발의로 통합하여 자생 자구적 규모와 기반 확보를 지향했다. 

이를 기반으로 1996 YS정부의 2010세계박람회 유치지역공모에 도전, 거대한 중국 상하이에 패배해 한때 패닉에 빠지기도 했지만 시민사회가 결집, 재도전해 마침내 2012박람회 유치를 해냈다.  (정부주도 유치의 한계에 배신감을 느끼고 역시 지방자치시대에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집단경험과 결의가 이때 형성된 것이 박람회유치 그 자체보다 더욱 큰 것이라고 필자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비슷한 상황에 빠져있는 부산지역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

지역의 거의 모든 시민사회단체, 기업, 언론, 종교기관 등이 망라해 지역사회 합의를 다지고, 이 힘으로 정부를 설득, 압박하여 성공한 여수세계박람회이므로 우리 스스로 '시민박람회'라 불렀다.

그랬기에 개최준비와 개최기간까지 4년여를 대중교통이용하기, 친절 청결 캠페인, 외부방문객 홈스테이, 처치스테이 등 시민참여운동을 전개하였다. '여수EXPO시민포럼'을 만들어 지역사회 전문가, 오피니언 리더 100여명이 매월 소주제별 토론회를 열고 방향성과 현실성, 개선대안들을 내놓았다. 개최 후에는 10년간 주제구현 사후활용성공 시민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수세계박람회의 주제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은 이제 여수지역의 정체성이자 비전으로 지역사회 합의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주제에 반하는 무분별한 개발, 공장증설, 환경파괴요인은 들어설 엄두를 못 내게 되었다.

여기에 부주제인 '기후변화의 해법 찾아 인류에 제시'가 전 인류의 핵심 이슈가 되면서, UN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를 여수박람회장에 갖춰진 전시장과 시설을 이용해 유치, 개최하자는 시민운동을 10년째 전개하고 있다. 

2028년 아시아권에서 개최예정인 제33차 COP가 대한민국유치를 거쳐 여수박람회장에서 개최한다면 여수세계박람회는 단일성 행사가 아닌 해양과 기후 영역의 범세계적 아이콘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지방자치 영역에서 쉽고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국가 간 교역에서 지방 간 교역으로 바뀌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에서 '경제시장' '투자유치 도지사' 등을 공약으로 걸고, 실제로 당선되면 지역 특산물 어깨띠를 매고 가락동시장에서 세일하는 이벤트를 한다. 

그렇게 해서 열심히 발버둥치기만 하면 모든 지방들은 잘 살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세계와 경쟁해야할 모든 도시, 농촌지역들이 균등한 조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어떤 지역은 넘치는 재원을 감당하지 못해 허구한 날 삽질이요, 어떤 지역은 파산신청을 해야 할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실재하지도 않는 홍길동, 심청, 춘향이를 우려내 축제를 벌인다.

거기에 또 하나의 전략으로 등장한 것이 메가 이벤트이다. 자기지역의 한정된 재원에 전국, 나아가 세계의 기운을 더해 일약 고품질의 지역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버둥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그리고 세계박람회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그간 한탕주의, 허황된 혹세무민 등의 부정적 시각으로 이를 바라봐온 측면이 있다. 물론 그런 요소도 없지 않으며 그 결과에 대한 걱정의 충정이기도 했다. 

그에 앞서 문제의 본질은 지방자치시대, 각 지역이 안고 있는 숙명적 생존위기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마저도 손 놓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멸의 길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사라지겠다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여수세계박람회가 남긴 것, 자치역량... 

더 이상 횡설수설로 빠지기 전에 급하게 마치면서 과연 여수세계박람회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 여수이다. 

여수의 맑은 바다, 여수의 아름다운 섬, 여수의 풍부한 먹을거리, 그리고 고기 잡는 여수사람들, 여수의 노래, 여수의 춤, 여수의 동네골목, 여수의 바람과 햇빛을 세계 어디가도 볼 수 없는 여수만의 것이라고 내세웠다. 박람회주제에 맞는 콘텐츠로서는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둘째, 지역정체성이다.

많은 지역들이 5년 10년 30년 중장기 비전을 용역으로 만들어낸다. 지역정체성을 확고히 해 일관된 방향을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늘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캐비닛'안에 묻힌다. 지역사회 합의가 안 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여수는 여수세계박람회의 주제인 해양의 가치와 기후해법도시로 거의 완전한 지역정체성을 정립하였다.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극복할 자치역량을 갖게 된 것은 아마 돈으로는 환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외 관광도시로서의 인프라 확보, 경제적 효과 등 관점에 따라 많은 것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그에 못지않은 부정적 측면, 해로운 얘깃거리도 많을 것이다. 

다만, 분권자치역량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무엇을 시도해볼 것인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눠볼 것인가 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불쏘시개감은 되지 않을까? 

길가에 돌멩이 하나, 한 포기 풀, 부지깽이 하나도 그 지역에 있으면 모두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이 자치분권운동의 맨 바닥에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이상훈: 전)여수YMCA사무총장, 전)국립청소년우주센터원장, 전)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 전)민주평통여수시협의회 간사, 현)여수시지속가능발전위원, 현)해수부 여수세계박람회사후활용위원, 현)전남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자문관, 현)여수선언실천위원회 이사장, 현)자치분권전남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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