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2024.05.01./뉴시스
1일 오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2024.05.01./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전공의 이탈이 두 달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가 2일 사실상 확정됐다.

문제는 '의대 증원'이 의·정갈등의 도화선이 된 만큼 풀어야할 숙제도 만만치 않아 의·정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정부의 의대 정원 배정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소송이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변수다. 정부는 해당 소송에 대해 성실히 응하겠다면서도, 법원이 제출을 명령한 자료들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의사들은 급격한 증원에 따른 의대 교육 부실과 이로 인한 환자 피해 등을 이유로 들며 '백지화 후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새로 이끌 임현택 회장은 이달 말 정원 규모가 확정되기 전까지 앞장서서 증원을 막아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심의가 확정되면 의대 증원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의사단체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증원 2000명' 근거를 들여다보겠다는 사법부의 판단을 반전의 기회로 삼는 분위기다.

2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의대 정원이 늘어난 32개 대학은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 인원을 최소 1489명에서 최대 1509명으로 확정했다. 

아직 선발 인원을 확정하지 않은 차의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제외하면 31개 대학에서는 1469명이 증원을 제출했다. 차의과대가 50~100% 선발 시 의대 증원 규모는 최종 1489~1509명이 되는 셈이다.

이대로 적용한다면 2025학년도 의대 총 선발 규모는 최소 4547명에서 최대 4567명이 된다. 2024학년도까지 의대 입학정원은 3058명이었다.

국립대 9곳은 모두 증원된 정원을 50% 줄였고 사립대는 5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증원분을 100% 반영했다.

2025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은 현재보다 최소 1489명, 최대 1509명 늘어난다./그래픽=뉴시스
2025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은 현재보다 최소 1489명, 최대 1509명 늘어난다./그래픽=뉴시스

대교협은 이달 말까지 심의를 거쳐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게 된다. 이전 사례에 따르면 심의 과정에서 크게 변동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교협에서 증원된 정원이 확정되면 의료계의 '원점 재검토' 주장은 의정갈등의 뇌관으로 남게 되는 셈이다. 

정부의 대책은 전공인들의 수련 환경 개선을 당근책으로 제시하며 병원 현장 복귀를 촉구하고 있는 정도라 갈등을 풀기엔 역부족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7일까지 참여기관을 모집해 1년간 전공의 연속 근무 시간을 현행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필수 의료 과목이 대상이다.

다행인 건 병원을 떠났던 의사들도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4월 30일 기준 100개 수련병원 전임의 계약률은 61.7%이며 수도권 주요 5대 병원인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계약률은 65.9%로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강경파를 중심으로, 의사단체는 사법부의 판단을 기회로 삼고 '원점 재검토'를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지난 1일 서울고법 행정7부는 정부 측에 오는 10일까지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산출한 과학적 근거, 회의록 등을 제출하고 법원 결정전까지 모집 정원 최종 승인을 보류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임현택 의협 신임 회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 각종 불합리한 정책들을 하나하나 뜯어고쳐 반드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의협은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해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잘못됐고 한심한지 깨닫도록 하겠다"면서 "의료 농단이자 교육 농단을 바로잡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의대 증원이 마지막 대교협 심의만 남겨두면서 일각에서는 의·정 갈등이 새로운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왔다. 하지만 의료 공백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만만치 않다.

입시생들과 수험생 학부모들의 혼란도 큰 문제다. 재판부는 이달 중순께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집행정지를 결정하면 정부의 증원 처분 효력이 정지돼 내년 입시는 올해 입학 정원을 기준으로 치러야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재판부의 요청에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재판부가 요청한 자료는 구체적으로 복지부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결정하게 된 연구자료, 교육부가 정원 배정을 위해 각 대학을 실사한 자료, 각 대학에 정원 배정을 결정하게 된 회의록 등이다.

이 자료들은  그동안 사회적 논란 속에서도 정부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왔던 것으로 의료계는 증원을 신청한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실사가 부실했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반면 교육부는 의대정원 배정위원회에 누가 참석했고,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각 대학에 증원분을 배정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왔다. 

따라서 향후 사법부에서 의료계의 손을 들어줄 경우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을 대리하는 변호인 측은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에 이어 증원 중지가 인용되면 정부가 추진해온 '2025학년도부터 매년 2000명씩 총 1만명 증원'도 효력이 정지된다"고 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최근 총회를 열고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할 경우 휴진 기간을 다시 논의하기로 한바 있다. 주 1회인 휴진을 확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현실화할 경우 현장의 의료공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의 의대 증원 확정이라는 교육부 입장과 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한다는 의료계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만큼 의·정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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