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이정석 기자
의료분쟁을 불러온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가 동력을 잃고 있다. 매일 열리던 정부의 브리핑도 취소됐다. 여당인 국민의힘 일부에선 책임자 경질론도 나온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한지 50여일이 넘어가면서 정부와 의사들은 물론 병원과 환자들도 모두 지쳐가고 있다. 당초 합동 기자회견을 열기로 한 의료계가 돌연 일정을 연기함에 따라 총선 이후에도 의료 정상화는 불투명한 상태다.
정부는 이에 대해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이러다 보니 의료계 안팎에선 애초 정부가 꺼내들었던 의대 증원 2000명은 총선 용으로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가 12일 4·10 총선 결과와 관련해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의협 비대위 지도부와 전공의들에게 무리하게 내린 각종 명령과 고발, 행정처분 등을 철회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의협 비대위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지하 1층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들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 재검토에 나서달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여당에 내린 총선 참패라는 심판은 사실상 정부에 내린 심판"이라면서 "국민은 투표를 통해 의료개혁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포퓰리즘 정책인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에서 의료계와 함께 발전적인 의료 개혁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정부는 이제 편향된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짜 여론이 아닌 선거를 통해 증명된 국민의 진짜 여론을 받들어야 한다"면서 "의료 파국의 시계를 멈추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낼 수 있도록 의료계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됐음을 인정하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의과대학 교수 단체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이하 전의교협)'도 총선 결과를 두고 "정부의 독단과 독선, 그리고 불통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말했다.
전의교협은 전날 40개 의대 명의의 성명서을 내고 "대학 총장들께서는 학내 의대 증원 절차를 중단하고 교육부로부터 받은 증원분을 반납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정부는 정원을 배정했지만, 증원 시행 계획과 입시요강을 발표하는 것은 각 대학의 몫이다. 이제는 대학이 나서야 한다. 대학 총장들은 증원 절차를 중지해야 한다"며 "그것이 의대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고 대학의 자율을 지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교육부가 증원분 반납을 불허하면 총장이 직접 원고로 나서 행정소송을 진행해주기를 바란다"며 "총장들께서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결단을 내려 준다면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객관적 근거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전의교협은 앞서 '원고 적격성'이 있는 각 대학 총장들이 증원 집행정지에 관한 행정소송을 직접 제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총장들에게 보낸 바 있다.
야당이 압승한 제22대 총선 결과에 대해서도 견해를 내놨다. 전의교협은 "정부는 총선 전 의료계를 향해 선전포고하듯이 2000명 증원을 발표했고, 의료계의 우려에도 지금까지 이 숫자를 고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입학 연도 1년 10개월 전에 확정하고 발표해야 하지만, 현재 의대 증원 절차는 2025년 대학 입학 수시 접수를 불과 5개월 남겨두고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교육 관련 법령을 위배한 것이고 비교육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전의교협은 또 "준비되지 않은 무리한 증원은 의과대학 교육의 파행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이라며 "증원 절차를 강행함으로써 의료시스템의 파국이 초래된다면 총장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의과대학 2000명 증원 추진이 4·10 총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민단체의 의견도 나왔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한양대 교수)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열린 '22대 총선 평가 토론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관련이 깊은 분야인 보건의료분야가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지역간 의료격차 등을 해소할 의대 정원 확대는 옳은 방향이었지만,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계속 국민들의 염려와 불안을 야기시켰다"며 "사전 작업이 준비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으며 전문가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했었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대증원 1년 유예·책임자 경질'
환자단체와 야당은 국회가 개입해 중재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여당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의대 정원 문제를 두고 벌어진 '의정 갈등'을 정면으로 겨냥하기도 했다.
안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국민께서 '이만하면 됐다' 하실 때까지 정부·여당의 국정 기조 대전환과 낮은 자세로 혁신해나갈 것을 강력히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단계적 증원 방침을 정해 국민들의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면서 "의사들도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오고 정부도 증원의 전제 조건으로 필수 의료인력 및 의사 과학자 확보 방안, 지방 의료 발전을 위한 법률, 의료수가 조정, 투자 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 의원은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며 "정부, 의사, 환우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가 모인 의료 개혁 협의체에 미리 숫자를 정하지 말고 전권을 맡겨서 언제 어느 규모로 증원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 결론 내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당정은 민심을 받들어 전면 혁신에 나서야 한다"며 "총선 참패 원인을 제공한 당정의 핵심관계자들의 성찰과 건설적 당정관계 구축"을 촉구했다.
한편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참모들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가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들이 잇따르고 있다.
대대적인 인적 개편 이후에나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 관련 정책 방향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정부는 기존 입장에서 변화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용산 대통령실은 총선 이후 의대 증원 관련 이슈에 관심 없어한다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참모진들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당분간은 수면 아래로 접어둘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기존에 밝힌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집행을 강행할지, 아니면 이를 취소할지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 전공의 협의회나 의대 교수 협의회, 의협 등과 협상해 의대 증원 규모를 재조정하고 의료대란 국면을 마무리 지어야하는 부담은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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