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한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단 사직에 돌입하는 등 의정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휴진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자료사진=뉴시스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한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단 사직에 돌입하는 등 의정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휴진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자료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효과가 하루도 안 가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카드를 던졌지만 의료단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의대 증원 문제는 정부의 정치력 부재 문제로 되돌아온 셈이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때처럼 기세 좋게 밀어붙였지만 올해 총선의 최대 악재 가운데 하나가 됐다.

대통령실이 의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을 26일부터 절차대로 면허정지 처분시키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데 이어, 의대 증원 규모 수정은 없음을 분명히 하는 등 단호한 입장을 유지한 가운데 한 위원장이 나선바 있다.

의대교수들의 집단 사직서 제출을 하루 앞둔 전날(25일) 의대교수협의회 측 면담 요청에 응한 한 위원장이 교수들과 대화하면서 의료계와 정부 갈등을 조율하고자 했으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구원 투수로 등판한 한 위원장이 의료 대란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는데 의대 교수들이 결국 사직서를 냈다. 전국 의대 교수 7800여 명 가운데 3000여 명이다. 26일 40개 대학 교수들의 사직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이미 두 달 전쯤부터 증권가 정보지. 이른바 '지라시'에서 돌았던 시나리오를 들어 먹혀들지 않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즉 일촉즉발의 의료대란 위기에서 한동훈을 구원투수로 등장시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푼다는 '약속대련' 시나리오였다.

다급해진 정부가 면허 정지 유예 등 선처 가능성을 제안했지만 결국 2000명 증원을 철회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풀리는 상황이다.

이미 한 위원장이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중재에 나선 것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나왔다. 갈등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총선용 기획'에 나섰다는 비판이 다.

천하람 개혁신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25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의정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데 대해 "유치하다"고 평가했다.

천 위원장은 "한동훈 위원장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의대 교수들은 2000명 철회를 하지 않으면 집단행동을 하겠다는 거다. 한 위원장이 증원을 줄이는 타협안을 내놓든지 해야 되는데 타이밍이 지났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 1600명 가량을 지역의대에 배분을 했다"며 "실질적인 해결 없이 총선 때까지 환자 가족들 난리 나니까 시간 끌기용 정치쇼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정부가 애당초 우리나라 의료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것보다 정치적 목적으로 이 문제를 활용했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의대 정원 문제를 가지고 의사 때리기를 통해 정부가 일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나중에는 의사 단체에 양보해서 문제를 봉합하는 방식으로 당이 수습하려는 것이 애초 시나리오였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현장에서는 애초 최대 700명 정도의 합리적인 수준에서 의대 증원을 수용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2000명을 밀어붙이다가 현장에서 의료 공백과 국민 피해가 확대되니 당이 수습하는 형태로 발을 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 여론몰이를 통해 의사단체 때리기에만 집중하다 이젠 의료 공백이 너무 장기화되니 정권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라면서 "총선에 불리할 것 같으니 이제야 발 빼는 모습을 하는 것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의 자세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오후 의료계 주요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건동 캠퍼스 대회의실로 향하던 중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 2024.03.26.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오후 의료계 주요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건동 캠퍼스 대회의실로 향하던 중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 2024.03.26.

◆ 40개 의대 교수들 사직 돌입…"돌아가시는 분 나올 수도"

결국 전국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2000명 철회를 요구하며 25일 일괄 사직서 제출에 들어갔다. 

26일 각 의대 상황을 종합하면 전국 40개 의대 대부분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제출 결의를 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의료대란은 현실이 된 셈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의한 입학 정원과 정원 배정 철회가 없는 한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의교협과 별개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고 성명을 통해 사직서 제출에 나서겠다고 했다. 성명에는 강원대, 건국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수리되기 전까지는 근무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공의 공백을 메우는 데 한계를 맞고 있다며 주 52시간 이내 근무시간 단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개원의가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에 협조를 요청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에서 "보건의료 재난위기 '심각' 기간 동안 개원의가 의료기관 밖에서 의료행위가 가능하도록 지자체에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이날부터 약 60개 의료기관 군의관 100명, 공보의 100명 등 200명을 추가로 파견하자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도 나섰다. 윤 대통령은 26일 의료계에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서울대 의대 등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이 현실화되고 있으나 지난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관련해 유연한 처리를 당부한 이래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은 2000명 의대 정원 확대 원칙은 확고하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아 대화와 타협을 위한 전제 조건은 충족되지 않은 셈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뜬금없이 의대 정원 증원 문제와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고 한다.  

옛 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것'이라는 속담도 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펼친 정책에 딱 들어맞는 속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애초 시민사회단체들과 의료단체는 정부를 향해 대화를 촉구해왔다. 당시 정부는 2000명 증원은 변함없다는 강한 메시지만을 내며 밀어붙인 결과다. 

애초 의대정원 확대의 배경이 됐던 지역의료와 공공의료, 필수 의료에 대한 구체적 대안 없이 의대 정원만 확대하면 민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정부에 대한 원성도 커지고 있다. 

결국 의대 정원을 두고 숫자에 집착한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강대강 대치 구도 속에 발을 동동 구르는 건 환자와 환자 기족들 몫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정부와 의료계가 하루빨리 타협을 통해 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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