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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의정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이로운넷은 이기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견해를 전합니다. 본 [기고칼럼]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기우(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의사 부족현상은 전국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지역적인 문제

의대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사집단 간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사직 등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환자들은 불안하고 심지어는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하여 사망하는 일까지 속출하고 있다. 이에 중앙정부는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백방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찾기 어렵다.

먼저 의사 증원에 대한 필요성은 중앙정부와 의사집단 간에 이견이 있지만 국제적인 비교를 통해서 보면 명확한 사실이다. 한국의 인구대비 의사의 숫자를 보면 OECD 국가 중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이지만 한의사를 제외하면 꼴찌다. OECD 평균 의사 수가 1,000명당 3.7명이지만 한국은 2.12명(한의사 제외)에 불과하다. 한의사를 포함해도 인구 1,000명당 2.6명에 불과하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많은 선진국에서는 의사 부족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 사태를 초래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연방정부가 5,000명 의대 증원을 주정부에 권장하고 연방의사협회에서는 이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대 증원을 이유로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중앙정부가 굴복하여 단계적으로 2006년까지 의대 정원을 10%를 감축한 이래 그동안 의대 정원을 증원한 적이 없다. 의료 수요의 폭발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숫자는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오늘날 의사부족 사태가 심각하게 된 것은 여기에 원인이 있다. 

베이비 붐 세대가 노령화하여 의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 정원이 동결되어 의사부족이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를 양성한다고 하더라도 의사를 양성하는 기간을 감안하면 의사부족 현상은 12년 내지 15년 동안이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미 매년 400명씩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증원하기로 결정하고 추진하였으나 의사들이 이번과 마찬가지로 집단사직 등의 집단행동으로 좌절시켰다. 

 왜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의대 증원에 대해 의사들이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극단적인집단행동을 할까?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대한 집단행동에는 정부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가 있다. 고등교육법 제32조는 대학정원을 학칙으로 정하도록 하면서도 대통령령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는 의과대학 등 일부 모집단위별 대학정원은 교육부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하는 대로 학칙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즉, 의대정원 결정권을 국가에게 독점시키고 있다. 

그동안 중앙정부는 의대 정원 결정권을 국가가 독점하고 대학에 특권을 부여하듯이 의대 증원을 엄격하게 통제하여 왔다. 중앙정부가 의대 증원을 강력하게 억제함으로써 기존 의사집단의 의료시장 과점권을 보장해 온 것이다. 중앙정부는 의대 정원 결정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의대 정원을 동결하여 의사들의 독과점 이익을 보장하고, 의사들은 의대 정원 동결에 안주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하였다. 정부도 의사집단도 의료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심각한 의사부족 사태는 교육부와 이기적 의사집단의 합작품이다.  

뒤늦게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자 의사들은 그동안 반사적으로 누려왔던 특권이 침해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의사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사실상의 진료 거부에 해당하는 집단사직이나 집단휴직 등의 극단적인 수단으로 저항해 왔다. 이러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치명적인 위험을 수반하고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은 그것이 전국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전국화되는 것은 의대 정원 결정권을 중앙정부(국가)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앙정부 대신에 지방정부나 대학이 의대 정원을 증감할 수 있다면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한 지방이나 대학의 문제가 되므로 국지화되고 그 집단행동의 위험도 지방별로, 대학별로 분산된다. 

독일 등 많은 국가에서는 의대 증원 문제를 중앙정부가 결정할 권한이 없다. 중앙정부는 전국적인 의료환경을 고려하여 지방정부에게 의대 증원을 권고할 수는 있지만 결정권은 없다. 독일에서 의대 증원은 주정부가 결정하고 이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한다. 주정부는 지역의 의료환경과 재정상태, 주민들의 여론을 고려하여 의대 증원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전국적인 의사들의 저항도 집단행동도 불가능하다. 지역마다 사정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의사 증원에 따른 위험은 국지화되고 분산된다.  

의대 증원을 위한 의대 정원 결정권을 중앙정부가 가지는 것이 타당한가? 의사 부족이나 의사 과잉에 관한 문제는 지방에 따라 사정이 매우 다르다. 서울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35명이지만 경북은 1.36명에 불과하다. 의사 수의 지역간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 의료환경이 일자리나 교육문제와 마찬가지로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즉, 의사 부족현상은 지역마다 상이하다는 점에서 전국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지역적인 문제로서 성격이 강하다. 이에 의대 증원 문제는 지방정부가 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앙정부가 지역사정에 민간하게 반응하기 어렵고 책임을 질 수도 없으므로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고 위험하다. 

중앙정부가 의대 정원 문제에서 손을 떼면 의정갈등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일부에서는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과 의료대란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유연하게 의사집단과 협의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일부에서는 더 강경하게 의대 증원을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자는 모두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앞으로 의대 증원 또는 감원이 거론될 때마다 의사집단과 정부가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줄다리기하는 사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차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 

의대 정원은 의사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에 맞추어 결정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계획국가가 아니다. 국가가 사회수요를 정확히 예측하여 대비하는 것도 어렵다. 의사에 대한 사회적인 수요는 지방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지방정부와 대학이 책임을 지고 의대 정원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의대 정원 문제에서 손을 떼면 의정갈등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지방정부나 대학의 의대 증원 결정에 반발하여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더라고 지방별로, 학교별로 사정이 다르므로 집단행동의 위험성은 분산되고 감소된다. 

지방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의사양성에 소요되는 비용문제이다. 지방정부가 의대 증원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것이 어려운 경우에 중앙정부가 그 소요비용을 일부를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의대 정원을 증원하기 위해서는 1명당 연간 약 30,000유로가 소요된다(법학이나 사회과학은 약 4,500유로).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의사 문제도 지방정부와 대학이 협의하여 결정할 사항이다. 지방의대에서 양성한 의사가 일정기간 동안 그 지역에서 활동하도록 의대입학시에 계약을 맺어 장학금을 지급하고 졸업 후 10년 내지 15년간 그 지방에서 의사로 복무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위약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지방마다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지역사정에 맞지 않게 된다.

사립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육에 소요하는 비용을 학생들이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도 사립대학의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사립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손을 떼야 한다. 이 경우 국가와 지방정부는 사립대의 교육을 질적으로 보장하고 통제하는 역할에 거쳐야지 정원 결정 문제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 독일 등 많은 국가에서 사립대학의 의대 정원은 공적인 의대 정원 문제에서 제외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를 선언하였다. 지방문제를 지방정부가 주민과 함께 지방주도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하였다. 옳다. 하지만 지역 문제인 의대 증원 문제를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의사들이 전국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집단행동을 초래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의대 증원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국가주도적 해결방식이다. 이는 결코 지방주도적 문제해결이 아니다. 

중앙정부는 말로만 지방주도를 외치지 말고 의대 증원과 같은 지역적인 문제를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법제를 개정해야 한다. 어렵지도 않다. 중앙정부가 의대 정원 문제에서 손에서 놓기만 하면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사들의 전국적인 집단저항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지방의 의료 확충을 위해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중앙정부는 의사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의사 양성 교육을 위한 인적, 물적 기준을 준수하도록 하고, 의사면허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재정적으로 취약한 지방이나 대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한다. 

지방정부와 대학이 의대정원 문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비단 의사들의 집단행동의 위험성을 국지화하고 분산시키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방의료 문제는 교육과 일자리문제와 함께 삶의 기본적인 인프라를 형성하므로 주민의 정주요건이 된다. 지역의 의료환경 개선 문제는 곧 지역의 균형발전과 지방대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의 대학이 자기책임 하에 지방의 의료수준을 향상시켜 주민들의 이탈을 막고 지역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기우 교수
이기우 교수

이기우 :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현), 향부숙지도교수(현),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 의장(전) 

저서: 스위스의 지방분권과 자치(2021, 2인공저), 이제는 직접민주주의다(2016), 분권적국가개조론(2016), 연방주의적 지방분권에 관한 연구(2010, 2인 공저)

역서: 유럽의 구원으로서 지방자유(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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