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베터가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혹시 알고 있었나요?"
“네! (장애인 고용이라는) 좋은 취지의 사업을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과제를 안고 10년. 그 노력의 결실이 시민들에게까지 닿은 것일까?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회사, 베어베터의 인지도가 10년새 한층 더 성장했다. 장애인 가족과 장애인고용의무기업을 넘어 일반 시민들도 아는 기업이 됐다. "이제는 제법 (우리가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말로 베어베터 10년의 성과를 표현한 이진희 대표의 소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서울 성수동 소재 베어베터 10주년 팝업스토어/출처=베어베터
서울 성수동 소재 베어베터 10주년 팝업스토어 / 출처=베어베터

베어베터(공동대표 김정호, 이진희)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성수동 소재 프로젝트 렌트 2호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14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는 팝업스토어에는 베어베터의 지난 10년이 담겼다. 2012년 태어난 베어베터의 캐릭터 '베베'와 10년 동안 직원들이 만들어온 '제품'(명함, 제과, 커피, 꽃 등) 그리고 장애사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영상, 롤링페이퍼 등)가 시민들을 맞이한다. 

직접 손으로 짠 털실 인형
10주년을 기념해 직접 손으로 짠 털실 인형

엄마와 아이들, 친구들, 근처에서 일하는 회사원 등 여러 시민들이 발길을 멈춰 팝업스토어를 찾았다. 매장 안은 연신 "귀엽다"는 소리로 가득했다. 특히 베어베터의 캐릭터 ‘베베’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매장 한 켠에 있는 커다란 곰 인형 베베와 매장 유리에 부착된 베베 스티커는 시민들의 단골 사진 스팟이었다. 직접 손으로 짠 베베 털실 인형 역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베베 수납월렛(지갑)
베베 수납월렛(지갑)

베베를 입힌 수납월렛(지갑), 티셔츠, 피크닉 매트 등 다양한 굿즈도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팝업스토어에 방문한 김민지님은 베어베터 굿즈를 집어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민지님은 “(제품 디자인이) 예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발달장애인 고용과 패러글라이딩 소재 재활용 등 사회적 역할과 환경을 생각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 하나 구매하려고 한다”며 수납월렛 굿즈를 들어보였다. 이 같은 인기는 방문자 대비 구매율로도 나타난다. 이진희 대표는 “보통 방문자 대비 구매율이 10%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는 30%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장애 사원들의 활약을 소개합니다

베어베터의 5가지 직무를 소개하고 있는 매장진열대
베어베터의 5가지 직무를 소개하고 있는 매장진열대

매장 정중앙에 가면 나무로 제작한 커다란 매대(상품진열대)가 있다. 이 곳에는 베어베터 장애 사원들의 직무 5가지가 펼쳐져있다. △인쇄팀 △플라워팀 △제과팀 △배송팀 △커피팀으로 섹션을 구분해 사원들이 베어베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했다. 전시를 기획한 박초롱 롱잉스튜디오 디렉터는 “장애 사원들이 각 사업 분야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인쇄팀이 하는 일
인쇄팀이 하는 일

각 섹션에는 발달장애 사원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가 전시돼 있다. 명함(인쇄팀), 쿠키(제과팀), 꽃 한송이(플라워팀), 드립백 커피(커피팀), 배송 방법(배송팀) 등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각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는 발달장애 사원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담아 공개했다.

커피팀이 하는 일
커피팀이 하는 일

섹션을 자세히 보면 발달장애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있다. 베어베터는 ‘꽃다발을 만들 때 발달장애 사원이 하는 일(플라워팀)’, ‘드립백을 만들 때 발달장애 사원이 하는 일(커피팀)’, ‘물건을 배송할 때 발달장애 사원이 하는 일(배송팀)’, ‘쿠키를 만들 때 발달장애 사원이 하는 일(제과팀), ‘명함을 만들 때 발달장애 사원이 하는 일(인쇄팀)’ 등의 제목과 내용을 각 섹션마다 붙여 놓았다.  

배송팀의 비밀, 업무노트
배송팀의 비밀, 업무노트

배송팀은 조금 더 특별한 비밀(?)도 공개했다. 바로 장애 사원의 업무노트다. 여기에는 발달장애 사원이 고객에게 배송상품을 전달하는 구체적인 순서가 나열돼 있다. △배송장소 지도 △고객님을 만난 후 인사하는 방법 △인수증 싸인 요청하기 △상품 꺼내기 △보고하기 등 업무 진행 사항이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베베 꽃가게
베베 꽃가게

제과팀, 커피팀, 플라워팀에는 다른 팀과 다르게 '베베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가 그려져 있다. 제과, 커피, 꽃은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 디렉터는 “그간 베어베터는 기업을 상대로 B2B 영업을 주로 해왔는데, 올해부터는 스마트스토어에서 본격적으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보려(B2C 영업) 한다”며 “베베와 가게를 함께 그려 (장애 사원들이) 마치 자기 가게를 하나씩 차린 후 소비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과팀이 하는 일
제과팀이 하는 일

"지금부터 베어베터 직장생활 썰 푼다"

직장인으로서 발달장애 사원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베어베터는 매장 벽 한켠에 ‘베어베터 직원들과의 일문일답’을 담아 공개했다. 직원들에게 △퇴근하면 뭘 하는지 △이번 달 월급을 어디에 쓸 건지 △회사의 어떤 점이 좋은지 △베어베터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묻고 직원들이 손글씨로 답변을 적었다. 박 디렉터는 “베어베터 직원들이 ‘직딩으로서’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펼쳐보이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발달장애 사원들의 생생한 일문일답
발달장애 사원들의 생생한 일문일답

들어보면 여느 직장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옷도 사고 부모님과 외식하겠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설거지하고 게임하면서 쉰다' 등 직장 내에서 흔하게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며 장기근속의 의지를 불태운 사원도 있었다. 회사의 마스코트 베베를 회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꼽은 답변부터 10년, 20년 뒤 베어베터 같이 장애인고용에 앞장서는 사회적기업이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눈길을 끌었다.

베어베터, 즐거움을 선물하다

취재를 마치고 팝업스토어를 나오는 길에도 매장에는 연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베어베터가 어떤 일을 하는 지 알고 찾아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저 팝업스토어의 분위기를 즐기러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는 아이스크림에 빠진 베베 쿠키를 보며 “엄마. 곰이 아이스크림에 빠졌어”라고 즐거워했다. 베어베터는 잘 몰랐지만 매장과 캐릭터의 트렌디함에 이끌려 방문한 시민들도 있었다. 이제 막 들어와 굿즈와 제품 등을 살펴보던 박하람님은 “저는 트렌드를 캐치할(따라잡는) 목적으로 방문했다”면서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지나가다 보니 괜찮아서 들렀다”고 설명했다.

매장에서 만난 시민들을 떠올려보니 문득, 어쩌면 베어베터는 세상에 즐거움을 선물하는 기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 영역과 관계 없는 시민이었지만 베어베터가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긍정적) 자극을 받은 사람도 있었고 그저 즐길거리에 매력을 느껴 팝업스토어를 찾은 사람들도 만났다. 착한기업으로 뿐 아니라, 브랜드 자체로도 시민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베어베터의 모습을 보며 지난 10년의 성과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10년은 또 어떤 일로 세상에 즐거움을 줄지, 한번 기대해본다.

팝업스토어에서 판매중인 상품들
팝업스토어에서 판매중인 상품들

 

[미니인터뷰] 박초롱 롱잉스튜디오 디렉터

박초롱 디렉터 / 출처=베어베터
박초롱 디렉터 / 출처=베어베터

팝업스토어 매장에서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받은 '베베'는 베어베터의 대표 캐릭터다. 곰을 모티브로 제작된 베베는 2012년 세상에 데뷔했다.

베어베터의 전신인 제이앤조이는 장애인 연계고용 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회사 브랜드를 새롭게 정비했다. 제이앤조이는 '베어베터'로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베베'라는 캐릭터도 얻었다. 베베는 이후 큰 힘이 됐다. 초기단계라 영업 기반이 탄탄하지 못했던 베어베터에게 베베는 세련된 이미지를 선물하며 회사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줬다. 이진희 대표는 덕을 많이 봤다며 베베에 고마움을 표했다. 

박초롱 롱잉스튜디오 디렉터는 베베의 엄마로 불린다. 베베의 제작과 관리, 이후 베베를 활용한 굿즈와 제품패키지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디렉터를 만나 베베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캐릭터 제작에 참여한 계기는. 

베베 캐릭터가 탄생할 당시(2012년) 나는 디자인 회사 JOH에 소속된 디자이너였다. 제이앤조이(베어베터 전신)가 우리 회사에 새롭게 브랜딩을 의뢰했고 나는 회사 직원 자격으로 브랜드 작업에 참여했다. 브랜드 네이밍은 다른 분이 했고 나는 캐릭터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JOH를 나와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 본격적으로 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스튜디오를 열었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베베 캐릭터와 관련 굿즈, 패키지 디자인에 참여하게 됐다. 

왜 하필 곰이었나?

일단 베어베터 공동대표인 김정호 대표의 별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김정호 대표님 별명이 곰이었다(웃음).*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걸 브랜드로 결정하려면 회사의 특징을 곰이라는 캐릭터와 연결해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장애 사원들의 업무스타일에서 굉장히 곰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애 사원들은 정말 묵묵히 일한다. 사원들 업무가 비교적 세분화되어 있는데,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곰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김정호 대표는 2008년부터 북한아이들을 위한 빵공장에 기부하면서 '곰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베베의 디자인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표정에 주목해달라. 조금 놀란 표정이지 않는가? 장애 사원들 표정도 비슷하다. 묵묵하게 일하다가 딱 사진 찍혔을 때의 표정을 생각하면서 그렸다. 베베의 표정에서도 마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는 조금 말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덩치가 커졌다. 어깨도 생기고(웃음). 

원래 ‘베베’라는 이름은 없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원래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베어베터곰 또는 빨간곰이라고 불렸다. 대표님도 "우리 곰이” 이렇게 부르셨다. 사실 베어베터 직원분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서인지 귀여운 이름을 특정해 붙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다가 2019년, 대표님과 회의 중에 베베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막상 이름을 붙이고 나니까 베베가 베어베터라는 회사의 마스코트로서 한 사람의 존재감을 획득했다고 본다. 

매장에 들어선 사람들이 연신 '귀여워'를 연발한다. 혹시 캐릭터 기획 의도가 귀여움이었나?

아니다. 내 목표는 세련됨이었다. 시장에 나가면 카카오나 라인 등 캐릭터 상품들이 많다. 베어베터가 소위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인 건 맞지만 시장에 나가면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나는 경쟁 캐릭터들과 견주어 결코 세련됨으로 지고 싶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장애 사원들이 만든 제품이니까 착한 소비를 하겠어’가 아니라 정말 마음에 들어서 사고 싶게 만들고 싶었다. 

캐릭터 제작자로서 베어베터 또는 베베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사람으로 치면 이름 없이 살다가 6~7살에 이름이 생긴 셈이다. 뒤늦게 존재감을 인정받은 게 어쩐지 베어베터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베어베터가 지난 10년을 자신들만의 속도로 달려오지 않았나? 남들과 비교해보면 조금 느렸을지 몰라도 이제는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다. 베베도 그런 것 같다. 남들 보기에는 조금 늦었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생명력을 얻어가고 있다고 본다. 이번 팝업스토어를 통해 ‘갖고 싶은 캐릭터, 곰돌이’로 한 발 더 전진한다면 나로서는 더욱 행복할 것 같다

팝업스토어에 출근한 베베 / 출처=베어베터
팝업스토어에 출근한 베베 / 출처=베어베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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