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우성2차 아파트 우리동네 복지센터 전경
목동우성2차 아파트 우리동네 복지센터 전경

영하의 차가운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저는 목동우성2차아파트 신목종합사회복지관 우리동네 복지센터를 찾았다. 분홍색 윗부분이 인상적인 건물 지하 1층에는 '커피향 가득한 우리 동네 다방'이라고 적힌 문구의 카페가 테이블이 없는 채로 미래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커피머신과 오븐 등의 기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곳에는 바리스타 수업이 시작되기 전 수강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커피 내리는 연습을 하며 공간을 채웠다.

수강생들은 목동우성2차 아파트에 거주하는 60~7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주방 안에 모여 바쁜 손놀림으로 원두를 갈고 커피가루를 필터에 담아 고르게 편 후에 밀착시켜 누르고 기계에 끼워 작동시키는 등 우리가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커피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커피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커피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커피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배운 지 이제 4주차라는 한 할아버지가 커피가루를 담은 통을 기계에 끼우자 다른 할머니가 "그렇게 하면 물 떨어진다"고 타박하듯 말했다. 69세 할아버지는 머뭇거리며 커피 만들기를 계속했다. 70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할머니는 작년부터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다며 커피 만드는 솜씨를 자랑했다.

​"카페라떼도 다른 곳은 우유를 그냥 넣어주는데 우리는 우유를 거품기에 넣어 거품을 낸 후에 맨 윗부분 거품은 덜어내고 넣어서 더 부드러워요. 난 다른 커피전문점에서 낸 커피는 이제 맛없어서 안 먹어요. 우리가 만든 거 한 번 마셔 봐요."

카페라떼를 만들고 있는 조끼 차림의 할머니
카페라떼를 만들고 있는 조끼 차림의 할머니.

그 중 한 할머니는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지" 물어보았고 카페라떼를 청했다. 할머니는 커피가루를 가는 과정부터 시작해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끝에 따뜻한 카페라떼와 원액만 넣은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여기서는 못 마시니까 집에 가서 마셔요"라고 이야기한 뒤에 함께 간 6살 아이에게도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당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또다시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카페 주방 앞에 서서 꼼짝을 않고 있던 아이는 나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나한테 초콜릿을 주신대." 아직 초콜릿 음료를 마셔본 적 없는 아이는 초콜릿이라는 이름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놓인 선물꾸러미를 바라보는 것처럼 흥분돼 있었다.

"기다리느라 가슴이 두근거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자기 키만한 주방선반 너머를 바라봤다. 얼마 후에 아이 손에도 초콜릿라떼가 주어졌고 엄마와 아이는 그분들의 자긍심과 따스함이 담긴 선물을 각자 손에 들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그동안 마신 커피가 1000잔은 넘을 텐데도 그날 받아든 커피는 이상하게도 감격스러웠다.

60~70년 이상 커피와 관련 없는 일을 해 왔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커피 만드는 방법을 배워왔고, 이날은 아마도 나를 위해 최대한의 정성을 다해 맛있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 커피는 누군지 모르는 손님에게 내미는 일반 커피전문점의 커피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있었다.

우리 동네 다방의 주방으로 모여드는 참여자들.
우리 동네 다방의 주방으로 모여드는 참여자들.

커피를 만들어 주신 74살 노수덕 할머니는 이 아파트에 거주한 지 5년 됐다. 며느리가 7년 후 퇴직하고 나면 함께 커피숍을 차리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2019년에 무료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코로나로 중단됐다. 하지만 올해 10월 '같이살림 프로젝트'를 접하고 무료로 '제과제빵' 교육까지 받게 됐다.

노 할머니는 "지금은 구청에서 실시하는 공공근로에 참여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바리스타로서 아파트 내에서 재능기부를 하다가 사회적 기업 형태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용돈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내비쳤다.​

"내가 옷 장사를 30년 해서인지 최대한 오래 일하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게 끝나니 사는 게 지루해졌어요. 그래서 다시 목표를 세웠죠. 그래서 지금 너무 좋고 즐겁고 행복해요. 힘이 닿는 데까지 바리스타 일을 하고 싶어요. 작년에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중단됐는데 내년에는 같이살림 사업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어요."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서 있고 싶으냐는 물음에 노 할머니는 오랫동안 생각해 온 듯 바로 대답했다.

"커피를 판매하는 자리에 서고 싶어요. 작년부터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었으니까 내년에는 코로나가 끝나고 카페에서 유기농으로 좋은 커피를 만들고 주민들과 대화도 하면서 우리 아파트가 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돈도 벌면 좋겠지만."

관리사무소 건물 입구.
관리사무소 건물 입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카페는 목동우성2차 아파트 관리사무소 지하 1층 주민 공유공간에 자리했다. 이 아파트는 1인 가구가 많아 공동체 모임에 대한 욕구가 많고 장애인, 어르신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많이 살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는 김태련 같이살림 코디네이터에게 '같이살림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저희는 '같이살림 프로젝트' 1단계, 2단계도 아닌 2차 모집 기간에 참여해서 올해 10월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2019년에 이미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고 그 사업을 이어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 방향을 정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더구나 작년 참여자 중 많은 수가 함께 모임을 하고 있어서 사업 구성원도 쉽게 모을 수 있었고요. 새로 참여하신 분도 많지만 기존 참여자들이 잘 이끌어 가고 있어서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주민들.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주민들.

지난해 '바리스타' 과정만 진행됐는데 주민들이 북카페를 운영해서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가 커서 더 이용범위가 큰 카페로 운영하기 위해 올해에는 커피와 함께 제과제빵 교육을 실시했다.

공정무역을 하는 사회적기업 '트립티'와 계약을 맺어 '바리스타'와 제과제빵 강사가 출강하며, 총 20명의 주민이 두 가지 교육을 동시에 받고 있다. 교육마다 12번의 수업이 진행된다고 하니, 이날로 8회를 맞는 수업이 코로나로 멈추는 일 없이 끝까지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희망이 강사를 맞이하는 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제과제빵 교육을 받는 주민들.
제과제빵 교육을 받는 주민들.

제과제빵 교육은 월, 화요일에 '바리스타' 교육은 목, 금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김 코디네이터는 "주 4일 교육하다 보니 주민들이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아 그 중에는 일 때문에 참여 못 해서 아쉽다고 말하는 주민이 있다"고 말했다. 교육을 진행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제과제빵은 계량이 중요한데 어르신들은 무조건 많이 넣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힘든 면이 있어요. 연세 많으신 분들은 팔 힘이 많이 드는 제빵교육을 힘들어하시기도 하고요."

카페 인테리어를 업체에 맡기면 너무 비싸기 때문에 '같이살림 프로젝트'예산에 맞춰 스스로 진행하고 있다. 김 코디네이터는 "카페를 꾸미기 위해서 바닥에 까는 나무 등 인테리어 용품을 사오면 주민들이 보고 참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제과제빵 교육을 받는 주민들​
제과제빵 교육을 받는 주민들​

"주민들이 교육을 열심히 받고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며 의견도 내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주민들이 지금까지 한 노력이 내년에는 카페를 직접 운영하면서 빛을 발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지관은 기본적으로 주민을 돕는 시설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돕고 다른 사람은 도움을 받는 관계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날 만난 목동우성2차 아파트의 주민들은 황혼의 나이라는 편견을 깨고 또 다른 시간을 개척하려는 노인들의 의지와 활기참을 보여주었다.

내년 6월 이 아파트를 다시 찾았을 때 바리스타의 상징인 갈색 앞치마를 두르고 꾹꾹 커피를 눌러 담는 이 분들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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