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삼성 아파트 전경.
신정삼성 아파트 전경.

서울 양천구 목동에는 오래된 아파트가 많다. 그 중에서 오래된 아파트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 안양천이 가까이 있어 노인들의 느린 걸음으로도 건강을 위한 산보를 나갈 수 있는 곳. 신정삼성 아파트에 다녀왔다.

신정삼성 아파트는 105동과 106동 2개동으로 구성됐으며, 지난 1996년 주민들이 입주한 이래 올해 25년째를 맞았다. 총 964명의 입주민 중 65세 이상의 노인 세대가 45% 이상 거주하는 노령화 아파트다. 국민임대아파트라서 취약계층이 먼저 입주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취약계층이 이곳에 둥지를 틀 것이다.

노인 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에서 '같이살림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신목종합사회복지관 임복희 과장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알아봤다.

신정삼성아파트 주민들의 모습.
신정삼성아파트 주민들의 모습.

임 과장은 먼저 '같이살림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며 지금은 사업 초기 단계로 주민들이 사업 취지와 공동체의 의미, 사회적경제에 대해 알아가면서 조금씩 관계를 맺는 시기라고 말했다. 

'같이살림 프로젝트' 취지에 따라 신정삼성 아파트 주민이 갖고 있는 문제를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해결해 가기 위해 처음 워크숍 단계부터 시장 형성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토론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어르신이 많기 때문에 노인 돌봄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따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어요.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지, 적정한 서비스 비용은 얼마인지, 그리고 돌봄을 행하는 주체인 사업단참여 의향을 물은 후 참여의사가 있으면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지요. 확인 결과 충분히 시장형성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와서 노인 돌봄 양성과정과 협동조합을 추진 할 수 있었어요."

교육을 받는 주민들.
교육을 받는 주민들.

처음부터 신정삼성 아파트 주민 구성원의 특성과 욕구를 파악한 후 사업을 진행해서인지 3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의 주민 10명이 돌봄 사업단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 중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거나 주민활동에 관심 있는 7명이 협동조합 발기인이 됐다.

코로나19로 대면활동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민 한 명 한 명에게 조심스레 찾아가 설문 조사지를 내밀고 마스크를 낀 채로 '같이살림 프로젝트'를 통한 협동조합 설립 등을 설명했다. 지난 11월 말에 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서류 작성법을 교육받고, 12월 초에는 양천구에 설립 인가 요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신정삼성아파트에서 주민이 다른 주민을 돌보는 돌봄 사업을 지켜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1월 21일 신정삼성 아파트에서 건강나눔 체조 프로그램과 벼룩시장이 진행돼 찾아가봤다. 건강나눔 체조 프로그램은 496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하고 싶은 공동체 활동’을 묻는 조사에서 1위로 나온 걷기체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지난 10월 31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진행된다.

건강나눔 체조를 하는 주민들.
건강나눔 체조를 하는 주민들.

추운 날씨임에도 주민들은 10시부터 모여 안양천으로 걸어가 단전호흡을 비롯한 체조와 스트레칭, 걷기 운동 등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계속 연기되다가 10월 말에야 시작한 프로그램은 아쉽게도 11월 28일 5회를 끝으로 해산했다.

신정삼성 아파트 강선순 부녀회장은 “집에 있는 날이 많았는데 건강 체조를 통해 기분이 상쾌해지고 새로운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 아파트에 살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20~30명 정도의 주민들이 함께 모여 운동도 하고 끝난 후에는 참여했던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니 점점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건강나눔 체조가 끝나는 11시 30분, 신목종합사회복지관 옥상에서는 또 다른 행사인 벼룩시장이 아파트 주민들을 맞이했다. 주민들이 하고 싶은 활동 4위로 조사된 벼룩시장은 코로나 19 여파로 연기되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농구장 사용 허가도 나지 않아 결국 복지관 옥상에 파라솔을 치고 소규모로 진행됐다.

행복나눔 벼룩시장
행복나눔 벼룩시장

1층에서 발열 체크, 손 세정, 방명록 작성 등 코로나 방역을 한 후 올라간 옥상. 정원으로 가꾸어진 50평짜리 작은 옥상에는 지난해 장 담그기 행사에서 담갔다는 고추장, 된장이 항아리에 담겨 있었다. 항아리를 둘러싸고 6개의 파라솔과 돗자리가 원형으로 놓였다.

벼룩시장이 열리기 전 11시에 올라가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앉아 뜨개실로 수세미를 뜨고 계셨다.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집에 있어도 혼잔데 뭐. 겨우 30분 미리 나왔어"라고 답했다. 1층에서 맨손이 시려 울 만큼 불던 바람이 옥상에서는 따스한 햇살 덕분인지 다행히 선선한 바람 정도로만 불어왔다.

행복나눔 벼룩시장

시간이 지나고 6명의 판매자와 같이살림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를 비롯한 복지관 직원들이 옥상 공간을 채웠다. “많은 주민이 오지는 않겠지만 이번 계기로 정기적으로 실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던 임 과장의 말대로, 판매자가 다른 판매자의 물건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방식으로 벼룩시장이 진행됐다.

날이 춥고 옥상이라 구경 오지 않는 건가 싶어 아쉬워하고 있는데, 12시 30분이 좀 지나니 옥상 문을 넘어 판매자들을 향해 웃으며 다가오는 지역 주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이 이곳 옥상정원에 모여 벼룩시장을 열어갈 모습을 기대해봤다.

임 과장은 입주민 대표자 회의가 없고 주민이 모일 수 있는 공간도 없어 조용하기만 했던 아파트가 '같이살림'이라는 사업을 하면서 조금 시끄러워졌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주민들이 주도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아파트 주민 간에 세력 다툼, 즉 좋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물음에 임 과장은 "지금은 주민들이 갈등을 극복하기 시작하면서 협동하여 마음을 모으는 단계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주민 간 갈등을 중재하고 의견을 취합하는 게 힘들었다. 앞으로 더 많은 주민이 '같이살림 프로젝트'를 알고 동참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협동조합의 가치를 알면 너무 행복한 사업이에요. 주민들이 서로 협력해서 나누고 적은 수익이지만 용돈도 벌 수 있고 나누는 기쁨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 아파트만의 나눔 공동체가 선한 영향력을 펼쳐서 이것을 모르던 다른 주민들도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실행해 가면서 온전히 정착했을 때를 상상하면 굉장히 행복해요. 주민들도 충분한 역량이 있기 때문에 힘들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주민의 힘으로 마을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일을 자기 집안일처럼 여기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신목종합사회복지관의 중재와 조력을 요청할 수 있어 누군가가 없이도 내 목소리를 내는 일에 용기 내어 뛰어들 수 있었다.

내년에는 협동조합 팀, 노인정 중심의 돌봄 나눔팀, 어느 주민이나 참여할 수 있는 지역주민 공동체 활동 등 3개의 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신정삼성 아파트가 새해에는 입주 이래 가장 시끌벅적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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