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여성이란 결혼과 육아로 일을 그만두고 직장 경력이 끊긴 여성을 말한다. 그들을 위한 지원정책이 시행될 정도로 사회문제의 하나로 여겨진다. 경력단절 여성의 삶은 어떨까? 사회에서 더는 자신의 역할을 가치롭게 수행할 수 없는 자존감 낮은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서울 성동구 성수금호3차 아파트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봤다. 성수금호3차 아파트를 소통의 공간으로 바꾸고 주변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축제에 참여하게 만든 5명의 '경단녀'를 만났다.

2017년 서울시 '걷기 좋은 서울' 시민 공모전 대상과 2018~2019년 서울시 공동체활성화사업 금상, 은상 수상, 2020년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공동주택 비대면 공동체활성화사업 영상부분 최우수상을 받은 사람들. 이들은 한 시기를 마무리하고 다른 시기로 넘어가는 사람들일 뿐 경력이 끊어져 절벽 앞에 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성수금호3차 아파트의 '행복나눔패밀리'
성수금호3차 아파트의 '행복나눔패밀리'

5명의 '행복나눔패밀리'. 이름마저 가족적인 그들은 5년 전엔 서로를 전혀 모르는 그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명목상의 이웃이었다. 어떻게 서로를 알게 됐을까?

​성수금호3차 아파트도 다른 공동주택처럼 이웃과 교류 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 아파트를 위해 뭔가 도움 되는 일을 해 보자는 뜻에서 주민 7명이 모여 쓰레기봉투와 젓가락을 들고 아파트 청소를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에 봉사단체 인증을 받아 아이들과도 함께 청소봉사를 하면서 주민들은 아파트를 넘어 마을에까지 관심을 넓혔다.

아파트에서 경동초등학교까지 가는 짧은 길. 그곳에는 보행로가 없어 아이들은 자동차가 달리는 길을 위험하게 걸어 다녀야 했다. 주민들은 서울시 '걷기 좋은 서울' 시민 공모전에 아이들에게 보행로를 만들어 주자고 제안해 대상을 받았다. 이에 따라 아이들이 좀 더 안전한 길로 통학할 수 있는 보행로 공사가 2021년 진행될 예정이다.

​159세대가 사는 성수금호3차 아파트는 서로 이야기하고 싶어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는데, 지금은 SNS 그룹채팅방에 49세대 주민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그야말로 이웃사촌이 됐다. 채팅방에서는 아파트 문제와 행사뿐 아니라 무료 나눔도 이뤄져 책, 교구, 장난감, 옷, 신발 등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들을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눈다. 2019년에는 주민들과 함께 헌옷,헌책,안쓰는컴푸터를 모아 팔아 그 수익금으로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도 했다.

현재 채팅방 안에 자신의 윗집, 아랫집이 모두 모여 있으니 층간소음 문제가 덜 발생하고, 아파트 입주민대표위원회 회장이 봉사활동에 앞장서니 아파트에 불만 있는 일이 있어도 한발 물러날 줄 아는 살기 좋은 아파트로 바뀌었다.

주민이 직접 나서 건강한 식재료로 믿을 수 있는 반찬을 만들었다.
주민이 직접 나서 건강한 식재료로 믿을 수 있는 반찬을 만들었다.

아파트 주변에는 초·중·고등학교가 모여 있어 주민 중에 맞벌이 가정이 40~50%에 이를 정도로 많다. 이곳의 '같이살림 프로젝트'는 맞벌이 가정을 위한 반찬을 만들어 퇴근하고 돌아와 지친 워킹맘들의 가족 건강을 챙겨 줄 수 있는 우렁각시가 돼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입주민대표위원회 회장이자 '성수맘푸드' 맏언니인 김용분 씨가 30년 경력의 출장 요리사인 덕에 전문가의 손맛이 들어간 반찬을 만들 수 있었다.

'성수맘푸드'라는 사업명으로 출발한 이들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명태, 다시마, 멸치 같은 천연재료로 육수를 우려내거나 과일을 갈아 넣어 조림, 볶음, 탕, 국 등의 반찬을 만들었다. 채소를 기름에 볶아서 낸 맛기름을 사용한 덕에 맛의 깊이가 달라졌고, 고춧가루나 참기름 등 원재료를 모두 국산으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적은 양을 사가던 아파트 주민들이 차츰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준 맛이라며 한 아름씩 사가게 됐다. 애초에 판매하기로 한 15주간의 기간이 지나자 주민들이 매우 아쉬워하며 다시 판매해 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성수맘푸드에서 반찬을 만드는 모습
성수맘푸드에서 반찬을 만드는 모습

애초에 수익을 내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매 가격이 시중가보다 더 저렴했다. '같이살림 프로젝트' 사업 시작 전에 주변 상가에서 판매하는 반찬 가격을 조사해 가격은 더 싸고 양은 더 많게 담았다. 코로나19로 각별히 위생에 신경써야 했기 때문에 늘 마스크를 쓰고 요리했고, 미리 보건증을 발급받거나 식품 위생교육을 받는 등 청결에 더욱 신경 썼다. 식중독을 우려해 샘플 보관등 체계적으로 관리한 덕분에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도 모두 이상 없이 반찬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지난해 7월 10일부터 12월 3일까지 '퇴근 후 지친 부모들의 가사노동을 줄여주기 위한 우렁각시'가 되려고 성수맘푸드를 운영한 5명의 15주 일상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주말에 10~12가지 메뉴를 정해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올리고 화요일 저녁에 주민들이 신청한 주문 수량을 취합하고 나면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온전히 '성수맘푸드'를 위한 시간이었다. 수요일과 목요일에 장을 보고 금요일에 요리해 미리 통에 담아두면 그날 오후에 신청자가 주문한 것을 가져갈 때까지 다른 것은 생각할 시간도 나지 않았다.

가족들을 챙길 수 없어 오히려 '성수맘푸드'의 아이들이 끼니를 대충 때우는 등 어려움이 많았기에 '성수맘푸드'는 2021년에도 반찬사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성수동 우렁각시에서 활동 범위를 넓혀 전국의 우렁각시가 되어 보기로 결심했다. 사회적경제 조직인 협동조합을 설립해 반찬과 도시락을 주문받아 판매하고, 수익금의 일부는 어려운 이웃에게 나눈다는 계획이다.

주민요리교실 열고 이웃들과 함께 레시피를 공유했다.
주민요리교실 열고 이웃들과 함께 레시피를 공유했다.

전용 공간 없이 노인정 할아버지 방을 빌려서 하는 고된 노동을 왜 굳이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혼자가 아닌 다섯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5년 전 7명이 모여 아파트의 문화를 바꾸었고, 그 후로 가족과 함께 환경정화 봉사를 통한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같이해와서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만 하면 어려움을 뚫고 진행할 수 있었다.

2020년에도 주민들을 위한 반찬 사업 외에 독거노인 100명과 장애인 및 기초수급자 가정에 집밥 도시락을 전달했다. 특히 주민들의 김장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김장철에는 절임배추 250kg 이상을 5명이 김장해서 판매했다.​

'행복나눔패밀리' 최민희 대표는 이야기 내내 웃으며 말했다.

"이 힘든 걸 왜 하냐고 주변에서도 걱정이 많아요. 근데 주민들과 함께 계속 같이하다 보니 힘들어도 재밌는 거예요. 일하다가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도 즐겁고요. 그리고 전업주부로서 제가 있는 자리를 지킬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좋은 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기뻐요."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며 이웃과 마음을 나눴다.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며 이웃과 마음을 나눴다.

아파트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의지가 모여 그 관심이 아파트 밖 마을까지 확장됐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일지 모른다. 성수금호3가 아파트의 '같이살림 프로젝트'는 내 이웃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인식하고 측은지심을 바탕으로 펼쳐나가는 활동이었다. 새해에도 그 마음이 이어져 '성수맘푸드'의 반찬마다 따스한 맛이 녹아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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