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초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에 관악구 신림주공2단지아파트 공동체공간 ‘로뎀나무’를 찾았다. 이 공간에서 2020 공동주택 같이살림 사업의 하나인 주민공예기술학교 ‘크리스탈아트 자격증반’이 개설돼 취재하기 위해서다.

코디네이터까지 모두 10명 정도가 모여서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중에 청일점으로 남자 한 분께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응해주었다. 아내가 대표 제안자이었지만 자신은 자발적인 참여자임을 강조했다. 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무엇를 할까 고민하다가 크리스탈아트 자격증반 모임을 해서 생산과 판매를 직접 한다면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들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내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려 했으나, 코로나 여파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참여자들의 열의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각자 직장생활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싶을 시간인데도 피곤함을 물리치고 강의에 나와서 열심히 공예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크리스탈아트 자격증반 진행 모습.
크리스탈아트 자격증반 진행 모습.

2019년 공동주택 같이살림 사업으로 신림주공2단지 아파트에서 아이돌봄 사업을 했다. 그때 함께 한 사람들이 다시 모여서 자격증반을 꾸렸다. 이들은 주말에 ‘로뎀나무’에 모여서 공동육아를 한다. 아빠들이 공동육아를 담당하고 엄마들은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다는 설명이다. 함께 어울려 아이들을 키우니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이웃 간 정이 돈독해졌고, 이러한 유대가 2020년 공동주택 같이살림의 기반이 됐다.

신림주공2단지의 사랑방으로 쓰이는 ‘로뎀나무’는 관악구에서 처음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육아를 시작한 곳이다. 아파트라는 특수한 주거공간에서 만들어진 모델이라는 점에서 이후 서울시에서 사업 프로그램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주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권리를 주장하고 관리사무소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로뎀나무’라는 공간을 마련한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020 신림주공아파트 공동주택 같이살림의 또 다른 사업으로는 '건강돌봄학교'이 있다. 주민건강돌봄학교, 어르신건강돌봄학교, 어린이건강돌봄학교로 나누어 진행됐다. 그중 어르신건강돌봄학교가 가장 호응이 좋았다. 

관악정다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전문 강사의 도움으로 건강체조를 배우고, 노인 건강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안내와 개별적인 건강점검을 받는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어르신 건강돌봄학교에서 체조를 하는 주민들.
어르신 건강돌봄학교에서 체조를 하는 주민들.

나이가 들면 먹는 약이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는데 각자 올바르게 약을 먹고 있는지 점검해준다. 또 질병과 관련한 가족력을 알아보고 예방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자상한 강의에 어르신들은 평소 궁금해도 선뜻 의료기관을 찾아가 묻지 못하는 궁금증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소한다. “아들, 딸 보다 더 친절하다”는 칭찬 일색이다. 그런 연유로 강좌 출석률이 100%에 가깝다.

‘생활건강이야기’를 주제로 한 강의에 참석하여 직접 들어봤다. 강의는 국민 공통 식생활 지침, 수면과 운동, 마음건강, 환경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특별히 노년기에 흔히 접하게 되는 수면의 질에 관한 강의에서는 불면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르신이 많았다.

“나는 잠이 안 오면 새벽 2시에도 콩나물을 다듬거나 냉장고를 정리하기도 해요.”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수면제를 먹고 자는데 수면제를 먹으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음날까지 몸이 늘어져서 계속 먹어야 되나 싶어서 걱정이 돼요.” 

직접적인 체험을 들려주고 불면증을 이겨내는 방법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웃 사이인 노인들이 강의에 참여하다 보니 서로의 어려움에 더 잘 공감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활력이 생기고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전언이다. 

강의를 마치며 강사는 다음 시간에는 각자 집에서 먹는 약을 가지고 오면 함께 복용하면 안 되는 약이 있는지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만병 통치약이라고 습관처럼 복용하는 약의 맹점과 부작용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강의한다고 하니, 노인들은 다음 시간에 꼭 챙겨 오겠다고 화답했다.

주민건강돌봄학교에서는 건강한 생활습관, 질병 관련 지식 등 다양한 강좌를 진행했다.
주민건강돌봄학교에서는 건강한 생활습관, 질병 관련 지식 등 다양한 강좌를 진행했다.

강의는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건강습관 중에서 마음건강을 위한 방법을 나눔하며 마무리시간을 진행했다. 항상 좋은 생각을 하자거나,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방송을 보면서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면 화가 가라앉고 즐거워진다는 등 나름의 ‘비법’들을 교환하며 다음주까지 건강하자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아가는 주민들의 작은 어려움과 문제를 사회적경제 활동 관점에서 해결해 나가는 같이살림 프로젝트 사업이 더 활성화한다면, 삭막한 도시의 삶이 정겨움으로 채워져 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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