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따로 살던 남녀가 결혼해서 한 공간에 살게 되면,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맞추기 위해 많은 다툼과 혼란을 겪게 된다. 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사회 일원으로 키우기 위해 10년 이상을 자기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한다. 

같이 산다는 것이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울고 웃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내 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주민들이 한 데 모였다.
단지 내 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주민들이 한 데 모였다.

서울 송파레미니스 2단지 아파트는 지금 '같이 삶'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 2019년 옆 단지인 송파레미니스 1단지 아파트가 '공동주택 같이살림' 2단계 활동을 하면서 2단지도 그림책 프로그램이나 마을강사 양성과정 등 몇 가지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됐다. 그곳에서 '공동주택 같이살림'을 처음 접했는데,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한편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시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2020년 9월, 송파레미니스 2단지에 있는 작은도서관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모인 16명의 주민은 '공동주택 같이살림'에 지원해 선정됐다. 9월에 시작해 촉박하긴 했지만, 워낙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돼 모든 것이 중지된 11월 중순까지 많은 활동을 했다.

2018년 신축된 송파레미니스 2단지 아파트는 전체 818세대 중 임대가 580세대로 임대 비중이 70% 이상이고, 특히 고령층 및 다자녀 비중이 높아 주민들은 이들을 위한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 활동을 구상했다.

주민 워크숍을 통하여 단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함께 고민했다.
주민 워크숍을 통하여 단지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함께 고민했다.

사업 전에 아파트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주민 워크숍을 실시한 결과, 입주 2년이 넘도록 문이 닫혀 있는 휘트니스 센터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제일 많았다.

지금까지 직접 운영할지 대리 운영을 시킬지, 직접 운영한다면 관리비나 상주직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정하지 못해 문을 열 수 없었다. 따라서 제1의 목표는 "우선 문을 열자"였다.

휘트니스 센터에서 스트레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휘트니스 센터에서 스트레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더 스트레이트'라는 사회적기업과 용역 계약을 맺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2명의 트레이너가 교대로 오전, 오후에 각각 스트레칭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기구 사용법, 운동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 결과 하루에 50~60명의 주민이 방문했고, 많은 노인이 집에서 나와 몸 둘 곳을 찾았다. 물론 문을 연 지 2주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다시 폐쇄됐지만, 한 번 가동된 휘트니스 센터는 내년 주민들이 트레이너 자격증을 취득해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재개관할 계획이다.

원예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이 꽃꽂이 수업을 듣고 있다.
원예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들이 꽃꽂이 수업을 듣고 있다.

휘트니스 센터 운영으로 주민들의 몸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코로나로 피폐해진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는 '마음아 나를 부탁해'라는 미술 심리치료와 원예, 양말목 공예 프로그램 등을 실시했다.

특히 원예 프로그램을 통해 꽃꽂이와 크리스마스트리·리스를 만들어 집에서 은둔해야 하는 주민들의 연말을 밝혀주었다. 또한 코로나 이후 '미니멀 라이프'가 필수가 된되면서 정리수납 협동조합 강사가 초등학생 이상의 주민들에게 좁은 집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정리수납 교육을 진행했다.
아이들과 함께 정리수납 교육을 진행했다.

이외에 아파트에 살면 빼놓을 수 없는 문제 해결에도 나섰다. 집안 거주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이나 흡연 등으로 분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주민 간 갈등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도록 '주민자율조정가 과정'이 진행됐다. 또한 한살림과 함께 고추장 만들기, 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놀이감을 이용한 놀이교실이 4회 운영되기도 했다.

총 8가지 프로그램으로 28회가량의 수업을 소화한 기간은 10월부터 11월 중순까지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 다보니 '공동주택 같이살림'을 주도한 송파레미니스 2차 아파트의 추진단 16명은 매우 지쳤다. 회의도 계속하고 프로그램마다 역할을 나누어 코로나 방역과 출석체크, 재료 준비와 뒷정리까지 해야 했던 탓이다.

추진단 문혜실 대표는 "짧은 기간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추진단이 해야 할 역할이 많았고 그런 것들을 더는 요구하기가 힘들어요. 내년에도 하고 싶지만 지쳐서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해요. 물론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 그걸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거죠."

힘듦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동주택 같이살림' 2단계 해보기로 했다. 마지막 성과 공유회 때 진행한 아파트 행사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강좌당 10명 이내로 참여해야 해서 아쉬웠는데, 성과 공유회는 온라인으로 케이크 만들기를 진행하면서 단지 내 70가정에게 케이크 재료를 나누어 줄 수 있었다.

많은 주민이 참여해 케이크를 만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줌(ZOOM)'을 통해 지켜본 것이 기뻤고 동시에 '공동주택 같이살림'의 사업 취지와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를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낀 것이다. 이날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카드에 소원을 적어 트리에 걸어놓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 역시 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단지에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에 주민들이 오고 가며 소원을 매달았다.
단지에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에 주민들이 오고 가며 소원을 매달았다.

올해 2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이것을 다른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과 연계해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사회적 서비스를 경험했다.

2021년은 아파트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사회적 경제 조직을 구성해 해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단계다. 지난해처럼 이것저것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 보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뚜렷하게 정해야 하기 때문에 활동 계획은 현재 구상 중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송파레미니스 2단지 주민들은 마을 학교, 카페 운영, 농특산물 직거래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나무가 겨울 추운 땅속에서 한  해 동안 잎을 돋우고 꽃과 열매를 맺느라 바빴던 뿌리를 쉬게 하는 것처럼, 2단지 주민들도 겨울의 고요와 함께 쉬어감이 필요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목적지에 다다르는 결과가 아니라, 어디인지 모르지만 서로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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