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기획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협동조합 판 직원 단체사진./출처=협동조합 판

판 벌여 노는 청년들이 있다. 단순히 노는 건 아니다. 청년고용, 환경, 소상공인 등 잊혔던 지역 사회의 문제를 축제와 행사로 다시 조명한다. 협동조합 ‘판’은 문화를 사랑하는 춘천 토박이 청년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시민들은 판과 함께 축제를 즐기며 지역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고향 춘천을 떠나지 않은 이유

춘천은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이 남아있다. 오석조 판 대표는 “느리지만 빠르기도 하다. 자연을 가지고도, 도시를 가지고도 축제를 할 수 있다”며 춘천의 매력을 설명했다. 그는 춘천 명동에 있는 판의 사무실을 예시로 들었다. 사무실에서 10분을 나가면 도심으로 갈 수 있고, 반대로 10분이면 소양강이 보인다. 도시는 물론 자연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춘천은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취향’도 있다. 주류 장르인 가요, 뮤지컬 등이 아닌 인형극, 마임, 고음악 등 마이너 장르가 소비된다. 다양한 예술이 공존해 문화 분야가 넓은 편이다. 매년 춘천인형극제, 춘천마임축제, 춘천고음악페스티벌 등 걸출한 축제도 열린다. 오석조 대표는 “춘천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을 만나 큰 영감을 얻고 있다”며 “인구 28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19년 '존버했어, 오늘도' 퇴사종용프로젝트 포스터./출처=협동조합 판

톡톡 튀는 기획과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

판은 청년들의 관점으로 축제를 열고 세상의 문제를 짚어낸다. 대표적으로 ‘존버했어, 오늘도’ 퇴사종용 프로젝트가 있다. 청년 취업난과 사회생활 초기 스트레스 문제를 다뤘다.

사람들은 프로젝트에서 회사 생활의 고충을 얘기하고 역설적으로 다시 회사에 나갈 힘을 얻었다. 오석조 대표는 “자꾸 공부하라고 하면 안 하는 것처럼, 퇴사해도 된다고 말하면 오히려 내가 회사에 다녀야 하는 이유가 생각난다”며 “청년에게 다시 활기와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취업 경험을 담은 프로젝트였다. 그는 “순수한 기획은 기획자의 결핍에서 시작하기도 하는 듯하다”고 웃었다.

17년 들깨 페스티벌에서 바오브라스가 공연하는 모습./출처=협동조합 판

판은 춘천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살린 축제도 기획했다. 구 도심지인 춘천의 육림고개에서 ‘주지육림’ 축제를 열어 상가를 되살렸다. 가까운 화천에 갔을 때는 빈 들깨밭을 활용해 ‘들깨 페스티벌’을 열었다.

축제는 시민들에게 잊혔던 옛 상가를 다시 상기시켰고,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어울리는 법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문화 기획이 시민들과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오석조 대표는 나아가 ‘쓰레기 없는 축제’도 계획 중이다. 판은 현수막, 배너, 일회용품을 최대한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문화·예술 기획, 전공·경력 없어도 도전하며 성장

협동조합 판에 문화·예술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높은 기획력만 놓고 봤을 때 의외인 부분이다. 오석조 대표의 전공은 ‘사학’이다. 원래는 백제사 학자가 꿈이었다. 변화가 찾아온 건 노래패 동아리를 하면서다. 동아리 공연을 기획하면서 축제의 매력을 깨닫고 문화·예술 분야에 뛰어들었다.

오석조 대표는 “문화적 트렌드는 경력이 아니고 감각”이라며 “문화·예술에서 경력이 오래됐다고 실력이 비례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신념으로 구성원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성장하게 도와준다.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도 ‘재능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좋은 아이디어는 나이, 경력이나 전공에 상관없이 채택된다.

오석조 협동조합 판 대표./출처=협동조합 판

판은 문화·예술 분야의 취업을 꿈꾸는 사람에게 기회의 장이 됐다. 예술인을 꿈꾸는 사람은 취업을 위해서 ‘경력’을 가져오길 요구받는다. 하지만 행사는 단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인 경력을 쌓기 쉽지 않다. 그런 이들이 판에 들어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해보는 것이다. 오석조 대표는 “판의 독특한 스타일”이라며 “비전공자들이 결국 판을 거쳐서 전문 회사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판은 앞으로 회사 밖 인재 발굴에도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대표적인 사업은 ‘성장판’ 프로젝트다. 스펙보다는 문화 기획에 관심과 열정이 넘치는 청년 15명 정도를 뽑아 2달간 무료로 교육한다. 오석조 대표는 “아직 인재를 단기로 교육하는 사업이지만, 나중에 이들을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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