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기간인 30일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2025.05.30./뉴시스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기간인 30일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2025.05.30./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6·3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사전투표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유권자들의 참여 열기를 확인시켜주었다.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역사적 책무를 지닌 조기 대선임을 감안하면, 이 같은 유권자들의 행동은 그 자체로 정치 회복의 신호탄이다. 그러나 그 열기 이면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가 위협받고 있다.

문제의 중심에는 반복되는 선거관리 부실이 있다. 사전투표 첫날인 5월 29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들이 투표 전에 외부로 이동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대기 공간 부족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기표 전 투표용지를 소지한 채 식당에 다녀오는 유권자까지 있었다는 증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대응 능력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김용빈 선관위 사무총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소쿠리 투표"라는 과거의 치욕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국민의 실망은 더욱 크다.

다음날에는 경기도 김포에서 지난 총선(제22대) 투표용지가 발견되는 초유의 사건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서울 강남에서는 선거사무원이 배우자의 신분증으로 대리 투표를 시도하다 긴급체포됐고, 경기 용인에서는 관외 투표 봉투 안에서 기표된 투표지가 나왔다며 소란을 벌인 사건이 자작극일 수 있다는 선관위 발표까지 이어졌다. 모두 사소한 것 같지만 그 여파는 결코 작지 않다.

이런 허점들은 극우 성향의 유튜버들, 부정선거론자들, 음모론 커뮤니티에게는 선거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증거 아닌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미 SNS상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중국인이냐", "무슨 띠냐"는 식의 추궁이 벌어지고 있고, 투표소 앞에서는 불법 촬영과 위협, 봉인지 훼손, 감시 집회 등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소동이 아닌 민주주의 자체를 겨냥한 위협이다.

물론 선관위의 잘못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부실이 '선거 자체'를 부정하려는 세력의 선동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일부 정치세력은 관리 실수 몇 건을 '조작의 증거'로 삼고 대선 불복의 명분을 쌓고 있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허위 정보에 흔들린다는 데 있다.

6·3 대선을 앞두고 시작된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사직동주민센터 앞에는 이른 점심시간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2025.05.29/사진=조은결 기자
6·3 대선을 앞두고 시작된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사직동주민센터 앞에는 이른 점심시간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2025.05.29/사진=조은결 기자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을 미리 전제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이는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라는 헌법적 질서를 부정하는 '내란 연장의 정치'라 불러야 마땅하다.

정치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정치세력은 선관위의 실수를 부풀려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소한 실수를 침소봉대해 제도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 아닌 의도된 파괴 행위다.

이제 본투표를 앞두고 있다. 선관위는 유권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모든 절차를 철저히 점검하고, 실수 하나 없는 완벽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 '믿을 수 없는 선거'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제도를 믿고 참여하는 유권자들 위에서 작동한다. 만약 이 신뢰가 무너지면, 선거는 분열의 기제가 되고 공동체는 파괴된다. 선관위는 더 이상 실망을 반복하지 말라. 선동과 혼란을 막아내기 위해 철통같은 관리로 공정한 선거를 완수해야 한다.

선거제도는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정당성은 사라지고 공동체는 갈라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허점을 부풀려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다.

이번 6·3 조기대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12·3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종식하고 민주헌정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국민적 열망의 분출이다. 내란 우두머리를 파면시키고 그 책임을 단죄하며 정의와 상식을 회복하자는 주권자의 뜻이 모여 만들어낸 선거다.

나아가 내란을 종식시키고 부패와 특권, 혐오와 불공정을 넘어서는 사회 대개혁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중요한 과정에 선관위의 무책임한 관리 부실이 찬물을 끼얹고, 극우 선동세력이 혼탁을 유발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반복하건대 이번 조기대선은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역사적 분기점이며 공정성과 투명성 속에 치러질 때 비로소 국민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 길에 단 한 줌의 의혹도, 단 한 순간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