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개발계획(UNDP)이 씨티은행 재단과 함께 한국을 포함한 아태 지역 18개 국가 창업가 4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가 지난해 코로나19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매년 국내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현황을 조사해 발표하는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0’에서도 국내 창업자들은 “지난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의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이어 기반자금의 확보와 투자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초기 기업에게 더 힘든 코로나19를 대전지역 로컬 스타트업 기업들은 어떻게 버텨내고 있을까. 대전을 대표할만한 로컬 스타트업 ‘팹랩 대전’의 김선명 대표, 소셜벤처 ‘tAB’ 오환종 대표, 인공지능혁신학교(AIFFEL) 대전센터의 송해인 센터장(AI&스터디 대표 겸임) 등 3명의 청년창업자들과 화상으로 연결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탄소중립’과 같은 시대적 트렌드에 착안해 제품을 탄소배출권(CER)이나 청정개발체제(CDM)와 연계해 해외판로 개척에 도전하고 있었다. 또 지역 카페들과 연합해 일회용품의 재생율을 높이는 사업을 새롭게 구상하거나 인공지능 분야 인재 양성의 지역거점 운영에 참여하는 등 사업방향전환(pivoting)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었다.


다음은 줌(Zoom)에서 진행한 인터뷰의 일문일답.  

김선명 팹랩 대전 대표, 오환종 tAB 대표, 송해인 AIFFEL 대전 센터장(왼쪽부터)/줌 화면 캡쳐
김선명 팹랩 대전 대표, 오환종 tAB 대표, 송해인 AIFFEL 대전 센터장(왼쪽부터)/줌 화면 캡쳐

Q. 코로나 19가 시작된 2020년, 초기기업 창업가로서 어떻게 보냈나?

송해인 센터장: 제가 운영했던 ‘AI&스터디’는 대전의 공기업이 제공하는 창업지원 공간에 입주해 있다. 일하는 공간지원은 통상적인 스타트업 지원책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인데, 막상 코로나19상황이 되고 보니 창업공간 지원이 지금같은 어려운 상황을 버텨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마도 대전창업허브에 무료로 입주해 있는 tAB 오환종 대표님도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김선명 대표: 같은 생각이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원래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하는데,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벌어지니 정말 어려웠다. 팹랩 대전은 그동안 자원순환, 제품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하지만 막막한 상황을 직면하니 자연스럽게 펩랩 대전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됐다. 그러면서 향후 운영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오환종 대표: tAB는 살균과 관련된 제품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로 오히려 주목을 받게 되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공적 마스크 수급이 원활하지 않던 시기에, 지역사회가 마스크 살균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 100대를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에 기부했다. 그 뒤 tAB의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Q. 코로나19 이후에 어려움 타개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사업 방향수정을 뜻하는 피보팅(pivioting)은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특히 새로운 아이템과 기술로 사업을 시작한 초기 기업에는 필수적인 덕목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방향 수정을 했나 ?

김선명 대표: 초기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 입장에서는 월세 100만원과 직원 4명 월급이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2~3년간 교육 등 지자체가 발주하는 여러가지 지원사업을 많이 수탁해 수행했다. 사업의 가지 수는 많았지만 어떤 특정한 지향점을 갖고 거기에 맞춰 일을 하기보다 그때그때 재밌어 보이는 일 또는 관심이 가는 일들을 바쁘게 해왔다. 

그러다 코로나19 같은 막막한 상황을 직면하고 방향성을 고민하게 됐다. 구성원들과의 긴 논의 끝에 향후 운영에 있어서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게 됐는데, 이것을 일종의 방향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해온 일 안에는 '적정기술'이란 키워드가 있었고, 관련 아이템인 자원 재활용과 폐기물 등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 그러던 중 카페에서 사용하는 1회용 용기의 재생율이 5%도 안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분야에 대한 해법 추구를 구성원들과 한번 새롭게 해봐야겠다 생각을 했다. 팹랩 대전의 구성원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아이템이고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윤리적으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지역의 카페들과 연합해 한번 추진해볼 생각이다.

오환종 대표: 국내 한 대기업은 동남아 한 국가에 '쿡 스토브(cook stove)'를 보급하고 1500억원 상당의 탄소배출권(CER)을 획득했다. 석탄을 사용하는 발전 분야의 한 국내 공기업도 UN과 세계은행이 정한 저소득 국가에서 유사한 사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업방식은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나라를 지원하면서 국내 기업은 탄소배출권을 얻는 일종의 일거양득형 비즈니스 모델이다. 

쿡 스토브는 부엌에서 조리에 사용되는 일종의 개량형 화로다. 저개발국에서는 여전히 조리과정에 땔감을 연료로 많이 사용하는 데, 쿡 스토브를 사용하게 되면 기존 재래식 화로를 사용할 때보다 땔감 사용을 약 40% 절감할 수 있다. 재래식을 사용할 때보다 대당 연간 1.2t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탄소배출 저감 숙제가 있는 기업들이 쿡 스토브 보급에 참여하면, 수혜국가의 쿡스토브 사용량과 비례한 만큼의 탄소배출권(CER)을 확보할 수 있다. 

소셜벤처든 사회적기업이든 초기 기업에게 시장은 늘 어려운 숙제이다. tAB는 국내 대기업과 공기업의 사례를 참고해 지난해 탄소배출권을 자외선 살균 정수기 사업에 새롭게 접목하는 데 집중했고 어느 정도의 중간 성과도 거뒀다.

살균을 위해 물을 끓이면 탄소배출이 되지만, 자외선 살균을 하면 끓일 필요가 없어서 땔감 사용이 줄어든다. 자외선 살균기 정수기가 탄소배출권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또한 자외선 살균 정수기는 수인성 질병을 감소시켜 노동 참여율도 증가시킨다. 

tAB는 라디스 보틀 제품판로 개척에 탄소배출권을 접목했다./제공=tAB
tAB는 라디스 보틀 제품판로 개척에 탄소배출권을 접목했다./제공=tAB

지난해 국내 한 국제개발 NGO와 협력해 저소득 국가인 라오스 버카우 지역과 필리핀에 라디스 정수기 제품을 보내고 현장에서의 성과측정을 진행 중인데, 현재는 문제해결 전 단계에 대해 현황 조사를 하고 있다. 추후 임팩트(impact) 측정결과를 UNDP와 세계보건기구(WHO)의 관련 프로그램에 공유해볼 생각이다. 향후 UN 국제기구의 조달시장에 도전해보기 위해서다.

물론 로컬의 작은 임팩트 스타트업이 국제기구와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우선은 국내 판매와 선진국 판매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등산용품 시장에도 판매를 준비 중이며, 온라인 오픈마켓에 가보면 tAB의 제품  확인이 가능하다.

최근에 tAB가 새로 출시한 병타입 물 살균기 ‘라디스 보틀’은 마스크도 편리하게 살균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고객 리뷰가 많다. 라디스 보틀로 마스크를 살균해 사용해보신 분들이 하루보다 조금 더 길게 사용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3~4일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점을 이용해 국내에서의 사회적 가치 창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라디스 보틀’을 기부해 마스크 구매에 따른 경제적 부담 경감, 쓰레기 배출 저감, 마스크 사용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 저감 등 여러 측면에서 어느 정도 임팩트가 있는지 한번 시도해 보려고 한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을 실제로 실행하려니 또다른 연결점들이 필요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연락주시기 바란다.

송해인 센터장: 그동안은 ‘AI&스터디’라는 인공지능 분야 교육 스타트업을 운영했다. 지난해 제 사업은 잠시 멈춤 상태로 두고, 인공지능혁신학교(AIFFEL) 대전센터 운영을 새로 맡았다.

사업을 하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너무 정부 지원 사업에만 의존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됐다. '내가 페이퍼를 쓰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는 사업가가 가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대전센터와 인연이 닿았다. 고용노동부 사업으로 한해 120명 정도의 인공지능 분야 인재를 길러낼 정도로 규모 있는 사업이다. 3년 정도 센터를 운영해보며, 더 많이 준비해서 다시 새롭게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인공지능혁신학교 대전센터가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제공=인공지능혁신학교 대전센터
인공지능혁신학교 대전 센터가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제공=아이펠 대전 센터

Q. 스타업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건 생태계라고 한다. 균형발전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지역 창업 여건 2위를 대전이 차지한 바 있는데, 현장에서 느끼는 대전 지역의 장점은 무엇인가 ?

오환종 대표: 저는 원래 강원도 출신인데, 대전이 좋다. 사람들도 마음에 여유가 느껴지고 성격도 되게 좋은 듯 싶다. 각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마다 대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고 핵심 분야가 있는데, 대전은 소셜벤처가 핵심분야이다. 소셜벤처 기업들간에 정보 공유와 네트워킹을 활발하게 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송해인 센터장: 대전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어서, 기술창업이 많이 활발하다고 생각한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같은 딥테크 전문투자사와 KAIST도 있고, 국내 스타트업들이 선망하는 중소벤처기업부 민간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팁스타운도 지방 최초로 대전에서 문을 열어 앞으로 더 활성화가 될 것으로 본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여전히 대전 시민과 연구자간의 네트워킹이 활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이런 점이 나아지면 기술기반 창업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MIT 같은 대학들은 지역주민을 위해 교육도 많이 하고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메이커 스페이스 프로그램도 많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연구기관들과 팹랩 등 메이커스페이스들이 연결돼 프로그램이 추진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등 공공기관들이 더 적극적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AIFFEL 대전센터는 AI개발자가 되고자 하는 미취업 청년이나 소득이 적은 영세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교육을 하고 있다. 교육을 이수했다고해서 이분들이 전문가 레벨의 인력은 아니다. 하지만 연간 120명 정도 배출되는 AIFEEL 대전센터 학생들과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공공 분야 연구원들이 함께 기술기반 창업을 얘기할 수 있는 교류나 네트워크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팹랩 대전은 지난해 8월 '어디든 베스트' 쪼끼를 출시하고 와디즈 펀딩을 진행했다./ 제공=팹랩대전
팹랩 대전은 지난해 8월 '어디든 베스트' 쪼끼를 출시하고 와디즈 펀딩을 진행했다./ 제공=팹랩대전

김선명 대표: 예전에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SK측 파견직원으로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같은 공공기관과 자원이 대전에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다만, 일반 시민에게는 과학기술이 일종의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대전이 워낙 과학기술 도시를 강조하고 지향하다보니 오히려 일정수준 난이도 이상의 과학기술이 없는 경우는 더욱더 인정을 못받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다양한 시각에서 다각적인 접근이 가능한데, 과학과 기술이 빠지면 후순위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인성 질병을 해결하는 자외선 물 살균기를 만드는 tAB나 인공지능을 이용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빈' 같은 기술기반의 사업모델이 아니면 반응이 그렇게 뜨겁지않다.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술기반의 해법과 더불어 사람들의 인식전환과 같은 행동변화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조금 더 다양한 주체가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가지고 다각적 해법을 추구하는 균형감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