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위스 다보스 포럼은 ‘코로나19 경제회복과 여성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을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다뤘다. 코로나19로부터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회복을 하기 위해 여성 사회적 기업가 만의 아이디어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재단 아쇼카(Ashoka)가 실시한 ‘글로벌 임팩트 서베이(2018)’에서도 여성 혁신가들은 자신들의 혁신 아이디어를 더 잘 전파하고 협력적이며 다른 조직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하지만 여성 사회적 기업가들이 부딪혀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글로벌 기구 ‘에코잉 그린’이 160여 개국 2600여 건의 사례를 분석한 ‘2020 사회적 기업가 현황’에 따르면, 사업추진에 필요한 투자유치 등 재원확보에 있어서 여성 사회적 기업가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여성 사회적 기업가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최근 대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로컬의 여성 소셜벤처 ‘블룸워크’의 양수연 대표와 ‘그림마카롱’의 이은경 대표를 화상으로 연결해 그들이 만들어가는 ‘스케일딥(Scale Deep)’한 이야기를 들었다.

스케일딥은 지갑의 크기가 아닌 심장의 크기 즉 마음의 공감대를 키우고 넓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창업과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양적인 성장 스케일업(Scale Up)이 중요하지만, 임팩트를 만드는 소셜벤처에게는 스케일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다음은 줌(Zoom)에서 진행한 인터뷰의 일문일답.

양수연 블룸워크 대표, 이은경 그림마카롱 대표(왼쪽부터)/출처: 줌화면 캡쳐
양수연 블룸워크 대표, 이은경 그림마카롱 대표(왼쪽부터)/출처: 줌화면 캡쳐

Q. 여성 소셜벤처 창업가로서 느끼는 자부심과 어려운 점은?

양수연 대표: 요즘 대학생 동아리 중에는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창업동아리들이 꽤 있다. 최근에 강의나 멘토링을 하며 만난 동아리들은 경력보유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 재개 방안이나 장애인-비장애인 매칭 사회서비스 개발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동아리들의 대표는 주로 여성인 경우가 많다. 여성 기업가로서 소셜벤처나 예비 창업가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됐고, 경험과 지식을 나워줄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나의 경우 지역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여성 멘토들이 전혀 없었다.

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복지 차원의 지원의 경우, 직원들은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1인 기업이라 할지라도 창업기업의 대표들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거나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창업을 하고 초기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창업가들에게도 지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사업자 등록이 있거나 프리랜서 여성들의 경우, 출산을 하면 한달에 50만원씩 3개월간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이 됐다. 법제처 등 정부에 건의가 돼서 이루어진 변화로 알고 있다. 일단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여전히 일반적인 출산의 경우와 비교해서는 1/5수준이어서 여성창업가 생태계를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은경 대표: 나는 그동안 한번의 경력단절 없이 버티며(?)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아직 뭔가를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제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라고 엄마를 생각해주고 인정해주는 점이 자랑스럽다.

저도 한때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각자의 의지의 문제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순수 예술 전공자들에게는 결혼이 경력단절 사유가 되기 보다는 순수예술을 전공했다는 자체가 경력단절의 이유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순수예술 전공자들도 포기하지 않고 내가 배웠던 노력들을 투자해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됐다. 순수예술 전공자들도 내 밥벌이와 가족들을 책임지기 위한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문화예술 분야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은 프리랜서 범주로 잡혀서 세무서나 은행에 가게 되면 작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듯 하다. 같은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비슷한 수준의 직장인들에 비해 예술가에 대한 신용도 평가가 낮아서 대출 조건도 무척 까다로운 편이다. 예술 분야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경제적으로는 그만큼 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의 기준점들은 너무 까다롭고 박하다. 

Q. “좋은 일을 해서 성공하자”는 소셜벤처의 명제는 잘 실천되고 있나 ? 

블룸워크는 대전광역시 농아인협회와 협력해 수어 홍보를 위한 '수어하는 꿈돌이' 이모티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출처=블룸워크
블룸워크는 대전광역시 농아인협회와 협력해 수어 홍보를 위한 '수어하는 꿈돌이' 이모티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출처=블룸워크

양수연 대표: 어쩌다 보니 벌써 창업 4년 차다. 창업초기 2~3년간은 거의 1인 기업으로 운영했었는데, 혼자는 시너지가 없어서 어려웠다. 최근 인원이 늘어 역할이 명확한 팀이 형성됐다. 이제는 제대로 뭔가 일을 벌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커졌다.

최근에는 대전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 캐릭터를 활용한 수어 이모티콘을 개발 중이다. 대전농아인협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사용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익금이 발생하면 농인 분들을 위한 영상정보 서비스를 하고 있는 ‘수어 뉴스’에 기부할 계획이다. 일종의 지역공헌 사업인 셈이다. 

기부만 하면 어떻게 운영이 될지 걱정하실텐데, 저희들이 이런 일을 하면 복지관 같은 곳에서 다른 일을 맡기겠다며 연락을 주신다.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개발중인 꿈돌이 이모티콘이 출시된 후에 화제가 된다면, 이모티콘을 제작한 업체인 저희 '블룸워크'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서로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저희는 늘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그림마카롱'은 노잼도시로 알려진 대전을 캐릭터화 한 노잼캐릭터를 개발했다./출처=그림마카롱
'그림마카롱'은 노잼도시로 알려진 대전을 캐릭터화 한 노잼캐릭터를 개발했다./출처=그림마카롱

이은경 대표: '그림마카롱'의 비전과 목표는 예술분야 경력보유 여성들도 본인들이 전공한 재능을 살려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캐릭터가 그런 비전을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사업 모델도 구상하며 캐릭터 몇가지를 시험적으로 만들어보았다.

최근에는 그동안 시험 개발한 캐릭터들을 활용해 인근 마을도서관과 함께 아이들 돌봄 교실에서 오프라인 수업을 해보고 있다. 마을도서관 측이나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그림마카롱에게는 MVP(초기 시제품)에 대한 고객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여전히 판매와 매출은 어려운 부분이다. 판매를 하려면 홍보가 필요한데, 초기기업들이 풀어가기 어려운 문제다. 

그런 면에서 카카오 같은 모바일 플랫폼은 자체 판매·유통 채널을 갖추지 못한 초기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카카오 출시에 성공하면 천군만마를 얻고 거기서 막히면 사실 다른 대안이 쉽지 않다. 그런데, 카카오 채널 입성은 정말 좁은 문이다. 5~6번 도전 끝에 성공하는 분들도 꽤 많다. 혹시 탈락자들이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재도전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Q. ‘Scale Deep’을 이어가기 위한 2021년도의 주요 계획은 ?

일반학교 특수학급의 장애인 학생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주문노트는 졸업선물로 전교생에 나눠진다./출처='블룸워크'
일반학교 특수학급의 장애인 학생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주문노트는 졸업선물로 전교생에 나눠진다./출처='블룸워크'

양수연 대표: 장애인 아티스트 외에도 일반 장애인들을 위한 참여기회를 확대하려고 한다.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공부하는 한 장애인 학생의 재능을 보고 담당 선생님께서 블룸워크에 연락을 주셨다. “우리 학급 학생의 작품으로 노트를 만들어주세요”란 요청이었다. 학교 예산으로 노트가 제작됐고,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전교생에게 선물하셨다.

장애 학생들은 평소 학교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 노트가 전교에 뿌려지면서 학생의 인기가 많아지고 선생님들의 칭찬도 이어져 학생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지역사회로 전해지면서 지난해 말에는 여러 학교로부터 비슷한 주문이 쇄도했다. 학교가 졸업선물로 장애학생들의 그림으로 만든 노트를 주문한 것이다. 품목도 노트에서 텀블러, 액자 등 다양한 팬시류로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블룸워크 운영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것이 계기가 되어 블룸워크의 비즈니스 모델이 장애인 아티스트 플랫폼으로 한걸음 더 발전하는 단계를 밟아가게 됐다. 

그림마카롱이 개발한 캐릭터 개롱패밀리. 그림마카롱은 집콕 솔루션으로 자체 개발한 개롱패밀리 캐릭터와 로컬의 캐릭터들을 활용해 관절인형 만들기 제품 개발을 추진중이다./출처=그림마카롱
그림마카롱이 개발한 캐릭터 개롱패밀리. 그림마카롱은 집콕 솔루션으로 자체 개발한 개롱패밀리 캐릭터와 로컬의 캐릭터들을 활용해 관절인형 만들기 제품 개발을 추진중이다./출처=그림마카롱

이은경 대표: ‘그림마카롱’은 ‘블룸워크’에 비해 더 초기 단계의 기업이지만, 예술 분야의 경력보유 여성들이 함께 자신의 재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협업 플랫폼으로 한걸음 더 나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계획이다.

사업적 노력 외에 목소리를 내는 데도 더 힘써볼 생각이다. 지난해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시민참여혁신단에 참여해 문화예술 분야 여성창업가들에 대한 지원 강화의 필요성을 말씀드린 바 있다. 올해도 더 많은 기회를 찾아볼 생각이다.

로컬은 수도권과 비교해 인프라가 적고 뭔가 사업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파트너십 기회가 적다. 그래서 그런 기회가 제공할 수 있는 혜택 수혜를 바라보는 기대치도 낮다. 하지만 다행히 로컬이어서 좋은 점도 있다. 로컬은 작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금방 입소문이 나고 연결점들이 만들어졌다. 먼저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올해도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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