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가격은 ㎏당 약 50원. 리어카 한 대를 폐지로 빈틈없이 채우면 150㎏ 정도가 된다. 폐지를 이만큼 채우려면 하루 8시간 꼬박 일해야 한다. 가게에서 내놓은 폐지가 적거나 몸이 안 좋으면 3일이 걸릴 때도 있다. 사흘 일해 7500원을 손에 쥐는 것이다.

폐지 수거는 빈곤 노인의 대표적 일자리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폐지 수거 노인은 6만6000명. 이 중 절반은 월 평균 수입이 10만원 미만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지만 대가는 턱없이 적다.

㈜아립앤위립은 폐지 수거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사회적기업이다. 2017년 설립됐다. 저소득층·취약계층 폐지 수거 노인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공한다.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는 “대부분 취약계층인 폐지 수거 어르신이 고강도, 저소득 노동에 시달리지 않도록 새로운 일거리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당한 대가, 만족감 주는 일거리 제공

심 대표가 폐지 수거 노인에 관심을 두게 된 건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할머니께서 폐지 수거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심 대표는 "저희 할머니는 소일거리로 하셨지만, 주변에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도 많다는 걸 알았다"며 아립앤위립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아립앤위립은 폐지 수거 노인에 '미술작업'을 통한 일거리를 제공한다. 미술 수업을 열고 이 과정에서 어르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제품화해 판매한다. 디자인은 저작권료를 내고 구매한다. 소비자에게 판매된 제품을 포장하는 일도 어르신 몫이다. 1차 미술작업, 2차 포장작업으로 두 번의 일거리를 창출한다. 이 과정에서 폐지 수거의 최소 두 배 이상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심 대표의 설명이다.

아립앤위립 프로젝트에서 미술작업을 하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 /출처=아립앤위립
아립앤위립 프로젝트에서 미술작업을 하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 /출처=아립앤위립

미술 작업은 어르신이 자기 경험을 회상하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창구다. 어르신들은 오방색 부채, 저금통, 머리빗 등 추억의 물품을 그린다. “다 필요 없고 밥 잘 먹는게 최고다”, “나도 하는데 다 할 수 있다”처럼 작업 중 오간 삶의 지혜가 깃든 이야기도 콘텐츠가 된다. 아립앤위립은 이런 추억과 이야기를 제품화해 ‘인생꿀팁’이라는 브랜드로 선보이고 있다. 어르신들의 만족감과 작업 참여율이 높은 것은 단지 수입이 늘어서만이 아니라, 이런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폐지 수거 노인은 대부분 혼자 사시는 분들입니다. 아립앤위립에서 함께 일한 분들도 대부분 독거 노인이셨어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면서 소외됐던 분들이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기의 창작물을 만들면서 밝아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브랜드 '인생꿀팁'은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추억의 물품을 디자인으로 활용해 만든 수첩, 엽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출처=아립앤위립
브랜드 '인생꿀팁'은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추억의 물품을 디자인으로 활용해 만든 수첩, 엽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출처=아립앤위립

일거리에서 일자리로.... "세대 간 교류하는 회사 만들겠다"

아립앤위립은 지금까지 9명의 어르신과 함께 일했다. 미술작업 등 일거리 프로젝트는 1년에 평균 네 번 진행한다. 당사자가 이탈하지 않는한 한 번 일한 어르신과 계속 일하는 게 아립앤위립의 원칙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르신은 최소 1년 이상 길게는 3년까지 아립앤위립과 함께 일하고 있다.

심 대표는 “프로젝트 때마다 새로운 어르신을 모집했다면 일거리를 드린 어르신 숫자가 더 늘어났겠지만, 그보다 한번 일한 어르신께 꾸준히 일거리를 드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동구 사회적경제 창업 지원 허브인 '소셜타운' 내 매장에서 수첩, 엽서 등 아립앤위립 제작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강동구 사회적경제 창업 지원 허브인 '소셜타운' 내 매장에서 수첩, 엽서 등 아립앤위립 제작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아립앤위립은 현재 프로젝트성으로 제공하고 있는 일거리를 장기적인 '일자리'로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일하는 어르신을 정직원으로 고용하는 건 단기 목표다. 이를 위해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 기회를 늘리는 등 수입 모델을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해는 SK텔링크 알뜰폰 브랜드와 친환경 패키지 제품을 만들었다. 휴대폰 배송박스에 어르신들이 작성한 글과 그림을 넣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어르신과 청년세대를 함께 고용해 세대가 교류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다. ‘인생꿀팁’에서 어르신이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격려의 말을 모아 제품화한 이유도 두 세대가 교류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단기적으로 폐지 수거를 대체할 일자리를 만들고 이후에는 청년과 노년이 함께 일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어르신들은 그간 살아온 경험과 지혜를 얘기하고 청년들은 이를 콘텐츠로 기획해 사업모델로서의 성공가 세대통합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모두 이루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립앤위립은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말한 이야기 제품화해 판매해 폐지 수거 노인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출처=아립앤위립
아립앤위립은 어르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말한 이야기 제품화해 판매해 폐지 수거 노인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출처=아립앤위립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