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이수진 에디터
정부가 산업재해를 근절하기 위해 강력한 경제적 제재와 대규모 예방 지원을 동시에 내놓았다. 내년도 예산에 2조 723억 원 규모의 산재 예방 지원금을 편성하고,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법인에는 영업이익의 5% 이내,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고용노동부는 "사고 없는 일터, 안전 대한민국"을 기치로 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15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관계 부처 협업, 전문가·노사 간담회, 타운홀미팅 등을 거쳐 마련됐다.
◆ 연간 3명 이상 사망 시 본사 과징금 30억 이상
이번 대책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법인 본사 단위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그동안은 사고가 난 사업장 단위로 제재가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같은 법인 소속 사업장에서 연간 사망자가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해당 법인 본사 전체가 과징금 대상이 된다.
과징금 산정 기준은 영업이익의 5% 이내로 책정된다. 여기에 더해, 영업이익 규모가 작더라도 하한액을 30억 원으로 설정해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최소 30억 원 이상을 반드시 부담하도록 했다. 즉, 영업이익의 5%가 20억 원밖에 되지 않더라도, 사망자가 3명 이상이면 30억 원이 부과된다.
징수된 과징금은 일반 세입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예방보상보험기금'에 편입돼 다시 산재 예방을 위한 재정으로 활용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출액 기준으로 정한다면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범위가 될 수 있어 영업이익 기준을 적용했다"며 "하한액 30억 원은 코레일·한전 같은 공공기관까지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과징금 기준과 부과 방식은 법 개정 사항으로,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통해 구체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 건설업 제재 강화…"적정 공사기간 확보는 오래된 요구"
산재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가 건설업에서 발생하는 현실도 이번 대책에 적극 반영됐다. 무엇보다 건설사에 대한 제재 수위가 대폭 강화된다.
먼저, 건설사 영업정지 요건이 기존에는 '동시에 2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로 한정돼 있었지만, 앞으로는 '연간 다수 사망사고'로 확대된다. 즉, 한 번의 사고가 아니더라도 1년 동안 사망자가 누적되면 영업정지 대상이 된다.
또한 공공입찰 참가 제한 기준도 강화된다. 지금까지는 동시 2명 이상 사망 시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연간 3명 이상 사망으로 바뀌며, 제한 기간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된다. 이에 따라 산재가 반복되는 건설사는 공공공사 참여 자체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제재를 반복적으로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더 강력한 조치가 뒤따른다. 최근 3년간 두 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설사가 다시 사망사고를 내면, 해당 업체에 대해 등록말소 요청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사실상 건설업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는 수준의 제재다.
또 발주자는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야 하며, 민간공사도 설계 단계에서 공기(工期) 산정 기준을 포함해야 한다. 폭염 등 기상재해는 공사기간 연장 사유에 포함된다.
김 장관은 "적정 공기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진전된 계획이라고 생각한다"며 "국토부와 당정 협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 피해 우려에 "안전이 곧 브랜드"
건설사 제재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김 장관은 단호했다.
"충분히 고민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안전이 브랜드가 되는 세상이다. 소비자들도 안전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그 자체의 브랜드가 되는 세상이 됐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작업중지권이 발동되고 공기(공사기간)는 더 늘어나겠지만, 결코 이러한 예방 조치가 분양가나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영세사업장·취약노동자 지원에 2조 723억 원 투입
정부는 제재 강화와 함께 산재 예방을 위한 지원책도 대폭 확대한다. 내년도 예산에는 총 2조 723억 원이 배정돼 소규모 사업장과 취약노동자 지원에 집중 투입된다.
우선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추락·끼임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설비와 장비 지원에 433억 원을 투입한다. 또 최신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안전장비 보급 예산도 370억 원으로 늘려, 현장 안전관리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소규모 산업단지에는 공동안전관리자 제도를 도입하고, 자부담률을 낮춰 영세업체들이 안전관리자를 선임할 수 있도록 부담을 줄여준다. 아울러 요양기간이 90일을 초과하는 중상해재해가 발생한 8000여 개 사업장에는 선제적 컨설팅을 실시하고, 위험요인 개선을 위한 재정지원과도 연계한다.
취약노동자 대책도 포함됐다. 외국인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은 3년간 고용이 제한되며, 반대로 장기근속 외국인은 '안전리더'로 지정해 동료 근로자들에게 안전교육과 노하우를 전수하도록 한다.
최근 사고가 늘고 있는 배달노동자의 경우 유상운송보험 가입과 안전교육 이수가 의무화된다. 또한 전체 산재 사망자의 40%를 차지하는 60세 이상 고령노동자를 위해서는 난간 설치, LED 조명 확보, 안내 문구 확대 등 작업환경 개선 사업이 추진된다. 정부는 2026년까지 이를 위해 30억 원 규모의 예산을 별도로 지원하기로 했다.
◆ 지방자치단체 근로감독권 신설, 61만 개소 점검
2028년까지 중앙·지방·민간이 합동으로 61만 개 사업장 점검에 나선다. 지방자치단체에도 근로감독권이 신설돼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을 직접 감독한다.
산업안전감독관은 3000명 증원되며, 임용 직후부터 도제식 훈련과 현장 중심 교육을 강화한다. 민간재해예방기관도 평가체계를 고도화해 부실기관은 퇴출시키고 역량 있는 기관은 육성한다.
◆ 노동자 권리 강화…"장관에게도 작업중지권"
노동자의 작업중지권도 실질화된다. 지금까지는 법에 명시돼 있어도 실제 행사 시 손해배상 소송 등 불이익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김 장관은 "급박한 위험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됐을 때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더 나아가 저에게,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도 작업중지권을 부여해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원·하청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공동 안전규범을 마련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한다.
지원과 제재 병행…노사정이 함께 대책 만든다
기업 부담 논란에 대해 김 장관은 "규제가 강화되고 제재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노사정 대표자 회의를 제안한 것"이라며 "지원과 제재가 병행된다. 지원을 강화하면서도 반복되는 사고에는 제재가 수반된다"고 말했다.
법 개정 시점과 지속성
대책의 상당수는 법 개정이 전제된다. 김 장관은 "이번 정기국회 때 신속하게 처리할 법안들을 당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며 "법 통과 시기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종합대책이 빠르게 안착될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정하겠다"고 말했다.
또 "일회성 처방으로 끝나지 않도록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모니터링하고 정책을 개발하겠다"며 산재예방 5개년 계획도 예고했다.
정부는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통해 △법인 본사 과징금 제도(3명 이상 사망 시 최소 30억) △건설업 영업정지 요건 강화 △적정 공사비·공기 확보 △노동자 작업중지권 실질화 △영세사업장·외국인·특고·고령 근로자 맞춤 지원 △자치단체 근로감독권 신설 등을 내놨다.
김영훈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은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라며 "안전이 곧 브랜드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노사정이 함께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을 벗겨내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