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남동5·18기념성당에서 '대한민국의 올바른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다. 2024.12.12./자료사진=뉴시스
광주 동구 남동5·18기념성당에서 '대한민국의 올바른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다. 2024.12.12./자료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내란 수괴 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심판 선고가 장기 지연되는 가운데, 천주교 사제·수도자 3,283명이 공동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헌법재판소에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했다. 사제들은 선언문에서 "억장이 무너지고 천불이 난다"며,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명령에 즉각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전국 15개 교구 소속 사제·수도자들이 동참했으며, 교구장 6명도 이름을 올렸다. 특히 시국선언은 사순절 제4주일인 3월 30일에 맞춰 발표되어 그 상징성을 더했다. 이는 앞서 지난 21일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나다"라는 메시지 이후  또다시 교회 차원의 정치적 메시지로 주목된다.

유흥식  추기경은 영상 담화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지연과 관련, 헌법재판소에 “정의의 판결을 신속히 내려달라"고 호소한바 있다. 그는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며 "지체 없이 되어야 할 일이 빠르게 되도록 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사회 지도층의 양심 회복도 함께 촉구했다.

"헌법재판소가 방화범처럼 행동하고 있다"

사제단 선언문은 "울창했던 숲과 집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것처럼, 정의와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며, 현재의 국정 상황을 "사법 쿠데타"로 규정했다. 사제들은 특히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 대상자의 "헌법 수호 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파면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 "죄를 지었으나 죄인으로 볼 수 없다니, 말이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헌법재판소가 초래한 이중적 태도”로 인해 “군을 동원한 쿠데타를 넘어 사법 쿠데타로 번졌다"며, 현재의 사법 판단 구조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선언문은 재판관 8인을 향해 "이처럼 명백한 위헌·위법을 단죄하지 못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냐"고 질타하며, 성경 구절을 인용해 "예는 예, 아니요는 아니요라고 말하라"며 책임 있는 판단을 요구했다.

◆"국민은 깨어 있다…헌재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

시국선언은 헌법재판소를 향해 "헌재의 주인은 국민"이라며 "국민은 법의 일점일획조차 무겁게 여기는데, 법을 다루는 자들이 오히려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나 다름없으며, 지금은 사자들이 미래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선언문 말미에서 사제들은 "민주 농사는 올해도 풍요로울 것"이라며 “불의의 문을 부수고 거짓의 빗장을 깨뜨리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히며 선언을 마쳤다.

/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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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만에 20만 명 동참…온라인 시민서명 운동 확산

한편 이날 시국선언 발표와 동시에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 촉구 시민서명 운동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선언 발표 10시간 만에 20만 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으며, 시민사회는 1일 자정까지 100만 명 서명을 목표로 헌법재판소에 직접 제출할 계획이다. 72시간 100만 온라인 긴급 탄원 캠페인

헌재의 판단을 둘러싼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종교계마저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대한 분수령을 맞게 됐다. 교계 한 관계자는 "이번 선언은 신앙의 이름으로 정의를 외친 예언자적 외침"이라며, "헌재의 움직임에 따라 향후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이 크게 요동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12일 오후 제주 천주교 제주교구 중앙성당에서 '윤석열 탄핵과 대한민국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다. 2024.12.12./자료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12일 오후 제주 천주교 제주교구 중앙성당에서 '윤석열 탄핵과 대한민국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다. 2024.12.12./자료사진=뉴시스

<다음은 천주교 사제·수도자 시국선언문 전문>

"헌법재판소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1. 어두울 때마다 빛이 되어 주시는 분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치유와 회복이 절실한 모든 분에게, 특히 산불로 쓰라린 아픔을 겪고 계신 많은 분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있기를 빕니다. 불안과 불면의 혹한을 견디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기다렸던 봄에 이런 재앙을 당하고 보니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2. 울창했던 숲과 집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 것처럼 일제와 싸우고 독재에 맞서 쟁취했던 도의와 가치들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작년 그날 마음에서 지운 윤석열 씨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대통령의 수족들이 우리 역사에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3. 먼저 공직의 타락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는 “국회가 선출한 3인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것은 헌법상의 의무 위반”이라는 헌재의 결정을 듣고도 애써 공석을 채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헌재의 결정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내려진 법적 판단이니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며 국민을 훈계합니다. 총리의 이중적 처신은 헌법재판소가 초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피소추인이 헌법수호와 법령을 성실히 준수해야 할 의무(헌법 제66조, 제111조. 국가공무원법 제56조)를 위반했다”고 말한 뒤, 그렇다고 “파면할 만한 잘못”, 곧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직무에 복귀시켰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지만 죄인으로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서울중앙지법이 내란수괴를 풀어주고, 검찰총장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맞장구치는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생겨났겠습니까? 대한민국을 통째로 태우려던 불길은 군을 동원한 쿠데타를 넘어 사법 쿠데타로 번졌으며 걷잡을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4. 그 다음은 헌법재판소의 교만입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천불이 납니다. 신속하고 단호한 심판을 기다렸던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입니다. 사회적 불안과 혼란이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화재를 진압해야할 소방관이 도리어 방화에 가담하는 꼴입니다.

여덟 명 재판관에게 묻겠습니다. 군경을 동원해서 국회와 선관위를 봉쇄 장악하고 정치인과 법관들을 체포하려 했던 위헌·위법행위를 단죄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도 부인하고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자의 헌법 수호 의지를 가늠하는 것이, 그를 어떻게 해야 국익에 부합하는지 식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가타부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재판관들에게 성경의 단순한 원칙을 전합니다.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한참 늦었으나 이제라도 당장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십시오. 헌법재판소의 주인인 국민의 명령입니다.  

  5. 주권자인 국민은 법의 일점일획조차 무겁고 무섭게 여기는데 법을 관장하고 법리를 해석하는 기술 관료들이 마치 법의 지배자인 듯 짓뭉개고 있습니다. 서부지법에 난입했던 폭도들 이상으로 법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아무도 “이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4)고 자부할 수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어도 대부분 잠들지 못하는 날, 듣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 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1베드 5,8-9) 정의 없는 국가란 ‘강도떼’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만도 못한 ‘사자들’이 우리 미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6. 머리 위에 포탄이 떨어졌고, 땅이 꺼졌고, 새싹이 움트던 나무들은 시커멓게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 멀지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많은 분들이 밤낮 낮은 데서 궂은일 도맡아 주고 계시므로 올해 민주 농사는 원만하고 풍요로울 것입니다. 화마도 태울 수 없고, 내란 세력도 빼앗을 수 없는 귀한 마음으로 약한 존재들을 보살핍시다. 미력한 사제, 수도자들이지만 저희도 불의의 문을 부수고 거짓의 빗장을 깨뜨리는 일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2025.3.30.

아름다운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사순절 제4주일에

천주교 사제, 수도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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