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남기창 책임에디터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은 추위를 잊은 채 모여든 수만 명의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4일 저녁부터 시작된 이들의 집회는 내란 수괴 윤석열 파면과 체포를 촉구하며 이어졌다. 광화문에서 시작된 열기는 한남동으로 옮겨져 새벽까지도 뜨겁게 이어졌다.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시위를 넘어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연대하며 터져 나온 시민들의 외침이었다.

◆광화문에서 한남동까지, 민주주의를 향한 행진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집회는 곧바로 명동과 한남동으로 이어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 즉각 체포", "내란수괴 구속"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 방향으로 행진했다.
집회 참가자가 몰리면서 한 때 지하철 한강진역은 무정차로 통과됐지만 행진은 전날부터 이어진 민주노총의 철야 농성을 지지하며 추운 겨울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연대의 결의를 다졌다. 도보로 진행된 행진은 마침내 순천향병원 앞 길을 지나 한남동 집회장에 도착했다.
앞서 집회를 진행 중이던 시민들은 환호와 함께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이들을 맞았다. 집회 참가 인원이 늘어나면서 한남대교 북단부터 한남대로 일대는 전 차선이 통제돼 본격적인 1박2일 간의 집회에 열기를 더했다.
한 시민은 "추위와 눈이 무섭지 않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참가자들은 길게 늘어선 대열 속에서 손을 잡거나 서로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며 연대를 나눴다.

◆추위와 맞선 시민들, "눈보다 우리의 의지가 더 강하다"
한남대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강한 눈발 속에서도 은박 돗자리와 방수 담요로 몸을 감싸며 자리를 지켰다. 난방버스와 간이 천막도 곳곳에 설치됐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은 여전히 매섭게 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결의는 날씨보다 더 단단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온 한 참가자는 "유튜브로 생중계된 집회를 보면서 이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묻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추위보다 더 큰 고통이 국민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성동구에서 왔다는 40대 한 시민은 "그렇게 당당했던 윤석열은 비겁하게 경호처 뒤에 숨었다"면서 비루하고 찌질하다고 분개했다. 또 "공수처가 체포할 의지가 안 보인다"면서 "그동안 무능하기만 했던 공수처가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며 공수처를 질타하기도 했다.
현장 곳곳에서는 시민들이 따뜻한 음료와 간식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시민들은 핫팩을 건네며 "같이 버티자"고 힘을 모았다. "눈보다 우리의 의지가 더 강하다"는 외침은 도로를 가득 메우며 참가자들을 북돋웠다.
자원봉사자들은 거리의 휴지를 줍고 핫팩을 나눠주고 곳곳엔 따뜻한 차와 컵라면, 김밥과 간식거리 등을 제공하는 행렬은 질서정연했다. 연대의힘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밤 10시, 집회는 잠시 묵념의 시간으로 전환됐다. 이는 최근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로 희생된 179명의 사망자를 추모하기 위함이었다. 참가자들은 응원봉을 끄고 고개를 숙이며 묵념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한 참가자는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함이다. 더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실패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체포하겠다" 시민들의 분노
집회 참가자들은 윤석열의 체포와 탄핵이 계속 지연되는 상황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한 시민은 "대통령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고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참을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주민 김모씨(36)는 "대통령이 법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며, "수사당국이 윤석열을 체포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날 오후 한남동 주변에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도 열렸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윤석열을 지키자",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탄핵 찬성 집회와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근처에서 대치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몇몇 시민들은 통행 안내를 맡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탄핵 찬성 집회는 아래쪽 육교로, 반대 집회는 이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외치며 질서를 유지하려 애썼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 덕분에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현장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싸움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싸움"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의 투쟁이 단순히 윤석열의 탄핵과 체포를 넘어서, 국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임을 강조했다. 한 시민은 "대한민국은 지금 시민혁명 중이다. 우리가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참가자는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정치와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며,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철야 농성은 새벽까지도 이어졌다. 간간히 단체로 일어나 국민체조(탄핵체조)로 몸을 풀고 음악에 맞춰 율동으로 졸음을 이겨냈다. 각자 사는 모습과 신분은 달라도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공감을 이어갔다.
추운 겨울날, 시민들은 도로 위에서 밤을 지새우며 "우리가 이긴다"는 구호를 외쳤다. 몇몇 시민은 밤하늘을 가득 메운 눈발을 바라보며 "이 눈이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회는 단순한 시위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새롭게 깨어나는 순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그 목소리는 추운 겨울밤을 뜨겁게 달구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고 있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윤석열의 내란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냈던 시민연대는 남태령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상경 투쟁에 이어 "우리가 이긴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킨다" 는 외침으로 눈 내리는 한남동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