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4일 국회에서 열린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에 윤석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불참을 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친한동훈계 여당 인사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예산안 시정연설은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대통령이 예산의 편성 기조와 주요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연설이다.
예산안 시정연설은 국민들에게 예산이 어떤 방향으로 쓰일 것인지, 주요 정책들이 어떻게 재정적으로 뒷받침될 것인지를 명확히 알려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역할이지만 정부의 최고 책임자는 오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는 건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져 왔다.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 연설에 불참하는 것은 11년 만으로 처음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국회 개원식에도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에서 처음으로 불참을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 실종 사태",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 없다" 등 날선 비판을 날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을 저버린 것"이라며 "국정을 이렇게 운영하겠다는 것을 입법 기관이자 예산 심사 권한을 가진 국회에 보고하고 협조를 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여 지적했다. 이어 "삼권분립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데 이 책임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화 이후 노골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며 "한마디로 오만, 불통, 무책임만 있는 불통령"이라고 강력히 질타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포기했다"며 "국정도 총리에게 대신 시킬 작정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대통령은 포기해도 우리는 의석에서 국회에 국정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개원식도 오기 싫고 시정연설도 하기 싫다니 대통령 자리가 장난이냐"고 따져 물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헌법기관 간 상호 존중의 정신과 관행을 무시하는 국민 무시 행태"라며 "국회에 와 반대당을 마주할 배짱도 없으면서 '국민들이 던지는 돌 맞고 가겠다'는 말은 도대체 어디에 대고 하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회를 상대로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직무수행조차 못 한다면,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어리석은 마음으로 국회와 맞서보겠다는 치기 어린 행동은 그만두고 어서 빨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앞서 국회 개원식에도 오지 않았다"며 "국민의 대표자를 만날 용기조차 없는 쫄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당 내에선 한동훈과 더불어 친한계로 불리는 인사도 나서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전날인 3일 복수의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시정연설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께 송구하다. 대통령께서는 오늘 시정연설에 나왔어야 했다. 최근 각종 논란이 불편하고 혹여 본회의장 내 야당의 조롱이나 야유가 걱정되더라도 새해 나라 살림 계획을 밝히는 시정연설에 당당히 참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 의원은 "국회는 민의의 전당, 국민의 전당이다. 지난 국회 개원식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를 패싱하는 이 모습이 대다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냉철하게 판단했어야만 한다"며 "거듭, 가면 안 되는 길만 골라 선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무 판단과 그를 설득하지 못하는 무력한 당의 모습이 오늘도 국민과 당원들 속을 날카롭게 긁어낸다"고 지적했다.
여당에서는 윤 대통령의 참석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야당의 장외투쟁 상황 등을 고려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우원식 국회 의장도 윤석열 대통령의 불참에 유감을 표했다.
우 의장은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에 앞서 "시정연설은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예산 편성 기조와 주요 정책 방향을 국민께 직접 보고하고 국회의 협조를 구하는 국정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께서 직접 시정연설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국회에 대한 존중"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우 의장은 "의료대란, 세수 펑크, 남북대결과 북·러 군사밀착 등 국민의 고통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총체적 국정 난맥의 심화라고밖에 할 수 없는 비상한 상황을 국민께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원식 의장은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으며, 대통령은 국민께 보고할 책무가 있다"고 시정연설 거부가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라고 지적했다. 우 의장은 더불어 "국회의 수장으로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이전에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한 점을 언급하며 "민주화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국회를 경원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덧붙여 "국회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국민이 위임한 국정운영의 책임을 할 수 없는 현실을 무겁게 직시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