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윤병훈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 하늘에서 느닷없이 죽음이 내려오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의 사람은 올바른 삶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그저 생존할 뿐입니다. 지옥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곳, 아침에 저녁을 보장할 수 없는, 삶이 살고 있지 않는 전쟁터, 가자와 베이루트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두 집단 사이의 긴장이 장기간 고조되면서 그 공포를 견디지 못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해서 시작된 전쟁이 1년을 넘겼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민간인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의 도시들을 파괴하여 폐허로 만들고, 주민의 삶의 터전을 초토화하는‘멸절’ 전쟁을 공언하고, 실행했습니다.
현재까지 팔레스타인 주민만 4만5천여 명이 사망했고 230만여 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과 가자지구 보건부 등에 따르면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3만4344명 가운데 1만1355명은 어린이입니다. 이토록 많은 어린이가 죽임을 당한 전쟁이 과거에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한번 시작된 전쟁은 들불처럼 주위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의 헤즈볼라 근거지에 대대적인 공습을 개시한 지난달 23일 이후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는 10월 5일 기준 2036명에 이르며 부상자도 9535명으로 1만 명에 육박합니다. 23일 하루에만 어린이 50명과 여성 94명을 포함 최소 558명이 숨졌습니다. 8일에는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주거용 건물을 미사일 공격해 여성 포함 민간인 7명이 숨졌습니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국민의 마음속에 적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는 방법으로 얻는 정치적 이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확전이라는 도박을 선택함으로써 전 세계를 재앙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그에게 절대적인 가치는 적을 상정한 가치입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대면서 이스라엘 국민과 세계를 대재앙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통제를 벗어난 폭력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묵시론(黙示論)적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 문제의 히틀러식 해결이 결코 독일만의 악몽이 아닌, 온 세계인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듯이, 이스라엘의 자기보존의 폭력이 또 하나의 지옥도가 되어 전 세계의 평화까지 무너뜨리는 미래의 역사가 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국민이 정의롭지 못한 한 명의 지도자, 네타냐후를 권좌에서 끌어내려도 평화가 도래할 것 같지 않습니다. 폭주하는 이스라엘의 뒤에는 미국(의 일방주의)이 있습니다. 싫으나 좋으나 국제정세를 지배하는 것은 미국입니다. 이스라엘군은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정보와 전투기, 미사일 등 최신 무기로 그들의 적을 압도합니다. 아랍권 어느 국가도 이것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인들이 자전거와 소총, 죽창만으로 최신 무기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미군을 패퇴시킨 것은 옛일일 뿐, 오늘날에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의 배후에 미국이 있는 한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퍼붓는 강력한 미국제 포탄과 미사일은 노인도, 청년도, 여자도, 아이도 피해 가지 않습니다. 참극을 당한 자의 가족과 그 공동체는 가해자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구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자에 대한 약자의 복수심은 원한(怨恨)이 됩니다. 강자의 폭력은 약자의 복수심이라는 칼날을 예리하게 만드는 마도석(磨刀石)입니다. 복수의 길이 막힌 약자의 원한이 언젠가는 성난 목소리가 되어 그 출생지에 울려 퍼지고 참극은 되풀이되고, 폭력의 기원은 알 수 없게 됩니다.
전대미문의 대참사 9·11은 이처럼 누적되어온 복수와 원한이 역류가 되어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 되돌아온 것입니다. 9·11에 이어서 일어난 일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각각 11만 명과 8만여 명의 민간인의 이유 없는 죽음입니다.
복수는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처럼 끝없이 반복됩니다. 우리의 미래가 불타고 있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합니다.
파국을 향해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같이 모두가 집단적으로 미쳤거나 무슨 병에 걸려서 충돌을 일으키고, 전쟁에 돌입한 것은 아닙니다. 극단을 향해 치닫는 민족주의와 이념, 종교 갈등이 집단자살과도 같은 국가 폭력을 불러오고, 당사국 국민들이 공포심, 편견과 혐오를 숨긴 채 갸륵한 애국심으로 기꺼이 악한 사람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애국심은 악당으로 변한 자들의 은신처입니다. 평소에는 모두 착한 사람이던 그들에게 전쟁은 애국자의 진정한 의무가 됩니다. 공습과 포격으로 불타는 도시를 먼발치에서 불꽃놀이를 즐기듯 감상하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불꽃 너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전쟁은 분명히 범상치 않습니다. 확전을 택한 이스라엘발 전쟁의 불티가 어디까지 튈지 가늠조차 되지 않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2년이 지났지만 멈출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쟁과 격동의 시기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특히 지금의 이 세계가 치르는 전쟁이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방식으로 급속하게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직접 이 참혹한 전쟁의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참상의 진정한 실체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잔학행위가 행해지는 아득한 땅에서의 매일의 공포가 우리에게는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 뒤에 전쟁의 두려움을 숨겨둡니다. 고통에 찬 비명 소리에 귀를 막고 암묵과 외면으로 현실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지구촌 도처가 전쟁터가 되면 더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외면한다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양극단으로 갈라 놓고 그 사이에서 고조되는 갈등이 전쟁으로 되풀이 되는 재앙을 막으려면,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결과들이 초래됐는가에 관하여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