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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공감 왕자 동현이와 발랄 공주 혜승이의 엄마입니다."

임신화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 이사장은 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두 아이는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대한민국에서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살아가려면 감내해야 할 일이 많다. 

임신화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이사장. 그는 "부모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과 내 아이의 좋은 점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명함에 아이들의 이름과 장점을 기재했다"고 말했다. 

그는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까지 10번 넘게 퇴짜를 맞았다. 병원, 미용실에 가면 한 번은 받아주지만 돌아설 때 다음부터는 오지 말란 말을 듣기 일쑤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이 대중교통 이용이다. 아이가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면 '왜 저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가'라는 무언의 눈총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도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협동조합의 이해'란 강의를 들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협동조합이야말로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생겼다.

딸아이가 다니던 꿈고래어린이집 옆에 사무실을 얻었다. 인테리어 공사 두 달간 어린이집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합 설명회를 열었다. 꿈고래어린이집은 경기도 화성시에서 가장 많은 장애 아이들(12명)이 다니는 민간 장애통합어린이집으로 비장애 아동들과 장애 아동들이 함께 어울려 지낸다.

 

성인기 준비가 절실해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2015년 20명에서 출발했다. 조합원들은 대부분 (비)장애 학부모와 치료사들로 지금은 190명으로 늘었다. 치료센터도 화성에 이어 동탄과 수원 등 총 3곳에서 운영 중이다. 그는 왜 협동조합에 마음이 끌렸던 걸까.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화성,동탄,수원 3곳에 치료센터를 운영중이다. '치료를 놀이처럼 재미있게 즐기자'라는 염원을 담아 조합의 이름에 놀이터를 넣었다.

 

" 발달장애 아이들이 당면한 큰 문제는 성인기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이 때문에 자살도 한다는 기사도 많이 봤고요. 선생님들을 만나 보면 일찍 치료를 시작해 기능이 조금 향상되더라도 애들이 성인기가 되면 갈 데가 없어 집에만 있다보니 퇴행을 거듭해 너무 가슴아프다고 했어요. 전 아이들을 위해 쓰는 시간과 돈, 노력들이 다시 우리 아이들의 성인기를 위해 선순환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어요. 부모들이 뜻을 모으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임 이사장은 애들이 두 돌이 지나면서부터 치료비만 한 아이에 매월 150만 원을 썼다. 두 아이 합치면 300만 원이지만 그 액수는 평균 치료비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치료는 대체로 초등학교때 까지만 한다. 중학생이 되면 뇌기능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어 사회성 교육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아이들 대부분 직업을 갖기 어려워 성인이 되면 집안에 들어앉는다. 

그는 발달장애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이 지불하는 막대한 치료비와 노력들이 헛되지 않도록 협동조합 틀안에서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직업교육과 사회성 교육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 안에서 직업 연계나 지역 돌봄으로 성인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임 이사장이 해결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과제는 치료사들의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치료사분들의 이직률이 꽤 높습니다.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경력에 따라 치료비를 5대5에서 7대4까지 센터와 나눕니다. 하지만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운영하면 수업료를 합리적으로 선생님한테 드릴 수 있고 정규직 근무가 가능해져 함께 성장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치료수업을 맡은 선생님들 가운데 약 절반 가량이 조합원이다. 임 이사장은 " 조합 가입을 의무화하면 좋은 선생님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가입 문제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들이 원하는 교육 최대 반영

 

발달장애인 관련 협동조합은 많지만 부모들이 치료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이 처음이다. 부모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치료 수업은 뭐가 다를까.

 

"치료 자체는 다른 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수업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야외 수업을 많이 하는 데 다른 센터에서는 시설을 벗어났을 때 사고에 대한 책임 때문에 시도를 잘 못하지만 저희는 부모들이 요구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허락하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7세 아동을 위한 퍼포먼스 미술 수업 현장.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의 치료 수업은 야외 수업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수업료는 일반 센터(5만~6만 원)보다 저렴한 3만 6000원이다. 40분 치료에 10분 상담이다. 하지만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교육비를 반이나 그 이하로 받는다. 부모들이 장애가 있는 자녀들을 위해선 통 크게 지갑을 열지만 비 장애 자녀들의 교육비에는 큰 부담을 갖는게 현실이다. 

임 이사장은 협동조합의 활동 중에 특히 부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달에 한 번 부모 교육을 실시하고 이때는 조합원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한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불안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바로 초등학교 입학입니다. 애가 한글도 못깨우치고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기도 해요. 그래서 만 7세를 대상으로 사설 치료센터에선 취학 준비반들을 많이 운영하는데 우리들은 부모들을 모시고 특수학교, 특수학급, 대안학교를 탐방하거나 특수교육 선생님을 모셔와 부모 교육을 합니다. 그때는 자녀 연령이나 조합원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개방하고 오신 김에 조합 설명도 드립니다."

 

방학 때면 공동육아를 진행한다. 부모들 집에서 돌아가면서 하기도 하고 집을 개방하기 힘든 부모들에겐 센터를 열어준다. 엄마들이 돌아가며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조합에서 전문가 선생님을 초빙해 공동육아를 지원하기도 한다.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방학 때면 공동육아를 진행하는데 올해로 3년째이다.

"아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발달장애아동을 돌봐주는 건 아주 힘들어요. 애도 역시 불안해하고요. 쭉 커가는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공동육아를 하는 이유도 내 아이만이 아니라 남의 아이도 알아가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그래야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와줄 수 있으니까요."

 

사회적경제 단체들과 협업으로 서로 도움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다른 사회적 경제조직들과 협업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생태관광협동조합이랑은 여행을 갈 때 늘 함께 하고, 자전거문화사회적협동조합과는 자전거 수업을 함께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분들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저희가 도움을 드리기도 하죠. 함께일하는 사회적협동조합과는 아이들과 함께 텃밭도 가꾸었습니다."

 

직업 체험의 일환으로 자전거문화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진행한 자전거 미케닉 수업 현장.

이렇게 업무 협약을 맺은 사회적 경제조직들은 30곳이 넘는다. 최근에는 조력자 양성과정을 개설했다. 발달장애인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실제 조합에 있는 성인기에 접어드는 발달장애인 5가족을 대상으로 월 2회 자조모임을 갖도록 할 계획이다.

 

자주 마주칠 수록 가까워진다

 

그는 장애인 인식개선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고치려 든다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많이 노출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주변에서 발달장애인을 많이 보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마주쳤을 때 훨씬 당황스러워합니다. 물론 노출을 하다 보면 상처를 많이 받아요. 그런 상처를 나누고 서로 보듬고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조합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4월2일은 세계자폐인의 날이다.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2019년 화성의 한 메가박스 영화관을 대관해 자폐인들이 좋아하는 색이자 희망을 뜻하는 파란색 옷 또는 소품을 지닌채 기념 촬영을 했다.

그는 "특수학교를 짓기 위해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슬픈 현실도 외면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건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이 더 많이 생겨서 어릴 때 부터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게 한다면 굳이 인식개선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이 조금만 더 발달장애인들에게 개방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요즘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선 정말 저렴한 비용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비장애인들과 섞여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데 왜 장애인들은 꼭 장애인복지관에만 다녀야 하는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

 

이제 6년차에 접어든 임 이사장이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내 아이의 장애를 부끄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라고 말했다. 

"처음엔 저 역시 내 아이 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고 장애가 수용이 안됐어요. 전 부모 상담을 할 때 고쳐서 낫게 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우리는 장애라는 말을 쓴다고 이야기합니다. 치료에 한계가 있다는 거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열에 네 분 정도는 가입을 안합니다. 전 엄마가 행복해져야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출산 후 경력 단절로 10년을 집에서 보냈다. 조합을 만들면서 다시 사회로 나왔지만 욕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두 아이나 장애가 있는데 왜 일을 하느냐, 애나 잘 키우라' 라는 비난이었다. 지금은 반대로 '이사장님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이랑은 뭘 하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하겠다는 진성 조합원들도 15명이 생겼다. 그는 아직까지 조합으로부터 월급을 받아간 적이 없다.

 

"무보수로 일하지만 받은 게 결코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조합 덕분에 강의도 다니고 다른 기회들이 제게 많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차기 이사장님들에겐 급여를 지급하는 구조로 바꾸려고 합니다."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발달장애인 관련 창업을 모색하고 있는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합원들이 사회적 가치보다는 소비자 협동조합의 개념으로 단지 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조합에 가입하거나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 떠나겠다는 조합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장애가 수용이 안된 상태에서 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자고 말하기 어려워요. 기다려 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 그는 발달장애인 관련 사회적경제 조직끼리 연합회를 만들어 한목소리를 내고 정책도 제안할 계획이다. 

"어쨌든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들보다 하루만 더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은 그것이 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보다 많은 아이들이 직업을 갖게 되고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은 국가와 지역 사회가 촘촘하게 돌봄망을 구축한다면 부모들도 자신의 꿈을 꺾지 않고 편안하게 눈감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의 소박한 꿈은 훌쩍 어디론가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다.

사진제공=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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