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사회문제들을 남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도전은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혁신가들이다. 아름다운가게, (사)아쇼카 코리아, 카카오는 전폭적이지만 매우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사회혁신가들을 발굴하고 경제적 지원과 연대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있다. 사회혁신가들이 바꾸는 세상을 함께 따라가봤다.

계급장 떼고 붙어 보기로 했다. 전업화가 이소연 씨는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그는 장애인 화가라고 특별한 대우를 받을 생각이 없다. 냉엄한 비장애인 예술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할 뿐이다.

이소연 작가의 그림으로 만든 텀블러. 북서울시립미술관 아트샵에 입점했다.
이소연 작가의 그림으로 만든 텀블러. 북서울시립미술관 아트샵에 입점했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초대 개인전에서 그림 25점이 완판되는 기염을 토했다. 몇 해 전 서울시립미술관에 참여한 전시회에서는 작은 변화도 있었다. 장애인 작가가 전시를 할 때면 늘 붙어 다니던 발달장애인이란 꼬리표가 그의 이름에서 사라졌다. 오롯이 작가 이소연이란 이름으로 소개됐다.

사회적기업 (주)스페셜아트에는 이 작가와 같은 중증 발달장애인 18명이 소속돼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민정 스페셜아트 대표는 “소속 작가들은 장애인 작가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똑같은 예술인들"이라면서 “뛰어난 색감, 독특한 형태감 같은 몇 개의 키워드로 장애인 문화예술을 뭉뚱그려 표현하는걸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소속작가들의 작품 앞에 선 김민정 아트스페셜 대표. 작업실은 동작구 양녕로 271에 위치해있다. /사진= 백선기에디터
소속작가들의 작품 앞에 선 김민정 아트스페셜 대표. 작업실은 동작구 양녕로 271에 위치해있다. /사진= 백선기에디터

“그냥 작가로 불러주면 좋겠어요. 장애인이란 꼬리표 없이. 장애가 특별함을 상징하는 걸까요? 분명 한계와 제약은 있겠죠. 하지만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에 기대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우리 회사의 미션입니다.”

스페셜아트는 17일부터 30일까지 유나이티드갤러리에서 울림(예술로 울림을 준다/어울림) 전시를 진행중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류전으로 올해로 7번째다.

“예술인 등록 제도에 따르면 시각예술 분야에서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개인전이든 그룹전이든 반드시 전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장애인 작가들만의 전시회는 한계가 있어요. 관람객들 대다수가 장애인 가족들이거나 복지관 선생님들이다 보니 확장성이나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비장애 예술인들이 합류해야 다양한 관객들을 새로 만날 수 있고 상호 교류를 통해 시야를 넒히는 기회의 장이 열립니다.”

2021 울림 전시회는 오는 30일까지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열린다. 올해로 7번째다.
2021 울림 전시회는 오는 30일까지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열린다. 올해로 7번째다.

 

홧김에 시작한 일.. 이렇게 힘들 줄이야

김민정 스페셜아트 대표는 미술치료사이다. 미술치료를 천직으로 삼아온 그가 험난한 창업의 길로 들어선 이유는 뭘까.

“홧김에 저질렀어요. (웃음) 장애인복지관에서 미술치료를 하다 보니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이 눈에 들어와 재능 육성반을 만들었죠. 성과도 좋았어요. 그런데 우리 반에서는 우등생인 아이들이 바리스타나 제빵제과 같은 직업재활 교육반에 가면 열등생으로 전락하는 거예요.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너무 싫었어요.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예술 활동이 생업이 될 수 있도록 작업실을 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일이 이렇게 커졌네요.”

전시회를 앞두고 한창 마무리 작업에 몰두한 김지호 작가. 그는 색을 켜켜히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구성과 마띠에르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전시회를 앞두고 한창 마무리 작업에 몰두한 김지호 작가. 그는 색을 켜켜히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구성과 마띠에르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막연한 생각과 바람이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었던 건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알게된 소셜벤처경연 대회 소식이었다. 김 대표는 2014년 전국 대회에까지 올랐으나 최종 결선에선 아쉽게 탈락했다. 이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편입돼 사업모델을 단단히 키워갔다.

“저는 비영리 쪽에서만 일해왔기 때문에 돈을 소문내면서 멋들어지게 쓰는 법은 잘 알아요. 그런데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제겐 너무 힘든 일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하루하루가 매우 버겁습니다.”

 

소속 작가 전원 취업

스페셜아트의 수익모델은 크게 3가지다. 교육사업과 장애예술인 고용연계사업 그리고 작가들의 작품을 굿즈로 만들어 판매하거나 전시를 기획하는 에이전시 사업이다.

“복지관 수업을 통해 재능 있는 친구들을 발굴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작업실에서 일대일 멘토링을 진행합니다. 원석을 갈고닦아 작가라는 반열에 오르게 하려면 최소 3년은 집중 관리를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불안증세도 완화되고 루틴한 삶이 가능해졌어요. 부모님이나 아이 모두 좋아하고요. 그런데 자꾸 중간에 그만두는 거예요. 알고 보니 생업 문제 때문에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다, 제과제빵 교육을 받는다는 이슈가 생기는 겁니다. 부모님들 입장에선 내 아이가 생존하기 위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거죠. 열심히 키웠는데 그렇게 자꾸 빠져나가다보니 너무 속상했어요. 결국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반복되리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김 대표가 구상한 해결책은 장애인 고용연계사업이다. 장애인 고용을 원하는 기업들을 물색해 해당 기업이 고용은 직접 하되 스페셜아트가 이들을 위탁관리하는 형태다.

2019년부터 신한은행 자회사인 신한서브에서 10명을 고용한데 이어 마리아병원과 특허 법인회사등 3곳에서 총 14명이 고용됐다. 구청에서 진행하는 공공 일자리까지 더하면 작가 18명 모두 현재 취업이 된 상태다.

이들은 하루 3시간씩 주 5일 15시간을 스페셜아트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우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활비를 번다. 김대표는 “스페셜아트도 올해 11월 처음으로 장애 예술인을 직접 고용했다”라고 덧붙였다.

스페셜아트 소속 작가들의 그림으로 완성된 그림책. 스페셜아트는 전시회를 통한 작가들의 작품판매 이외에도 굿즈를 기획해 판매한다. 
스페셜아트 소속 작가들의 그림으로 완성된 그림책. 스페셜아트는 전시회를 통한 작가들의 작품판매 이외에도 굿즈를 기획해 판매한다. 

“장애인 고용연계사업 모델을 만들 때 비장애인 고용과 동일한 선상에서 진행했습니다. 표준근로계약서대로 최저시급을 보장하고 4대보험과 휴가를 보장받습니다. 직원 의무교육도 받아요. 명절 때면 선물세트를 손에 들고 집에 갑니다. 부모님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이 보통의 사회인으로 성장한다는 생각에 뿌듯해하셔요. 그게 뭐 대수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중증 장애인들은 최저시급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을 많이 합니다. 회사 입장에선 업무적인 부분에서 충분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데 신경 써줘야 할 일들이 많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 달 동안 일해도 10여만 원을 받는 경우도 있어요.”

 

NFT로 해외시장 공략.. 유럽에서 인기

스페셜아트는 전시회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팔거나 굿즈를 기획, 판매해 수익금을 나눈다. 올해에는 애니메이션 효과를 추가한 작품을 NFT(대체불가토큰)로 출시해 해외시장을 공략했다.

트라이엄프엑스와 협업해 만들고 있는 김재원 작가의 NFT
트라이엄프엑스와 협업해 만들고 있는 김재원 작가의 NFT

“NFT의 장점은 원화를 보존할 수 있고 콘텐츠로 제2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NFT로 100개 가까운 콘텐츠를 팔았습니다. 전시를 해도 그림 판매가 쉽지 않고 대중의 취향이 비슷해 팔리는 작가의 작품만 계속 팔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NFT로 판매했더니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어요. 해외로의 확장성이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김민정 스페셜아트 대표는 지난달 사회혁신기업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아름다운가게의 뷰티풀펠로우 11기에 선발됐다.

“중증 장애인들과 하루 8시간을 보내는 건 결코 쉽지만은 않아요. 때론 다툼으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하고 갑자기 몸이 아파 구급차가 온 적도 있어요. 별별 사연이 많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됐던 폭력적인 행동이나 불안감들이 엄청 줄어드는 걸 보게 됩니다. 말수가 많아지고 의사 표현 능력도 향상됩니다.”

 

장애인 예술가 쿼터제가 필요해

김 대표는 “장애인 예술가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반해 이들이 미술시장에서 비장애 예술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적다”면서 “공공예술 지원 분야에서 장애인 쿼터제를 도입하자”라고 제안했다.

“ 전시를 하고 싶어도 정규 예술 교육을 받지 못한 작가들은 커리어가 없어 서류심사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요. 미술관이나 아트페어 등 공공의 영역에서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많은데 몇%라도 장애인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제도적으로 마련해 주었으면 합니다.”

울림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스페셜아트 작가들. 김 대표는 "말이 어눌했던 작가들도 자신들의 작품 앞에 서면 당당하게 설명을 잘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울림전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스페셜아트 작가들. 김 대표는 "말이 어눌했던 작가들도 자신들의 작품 앞에 서면 당당하게 설명을 잘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에서 경험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달장애인들은 특수학교를 다니고 시설에서 주로 활동하다 보니 경험치가 매우 낮아요. 뉴스에서는 종종 이들이 굉장히 위험하거나 폭력적인 것처럼 다뤄지곤 하는데 극단적 행동이 발달장애인을 대변하는 키워드로 인식돼선 안됩니다. 이들이 불안해하거나 힘들어할 때 조금만 기다려주고 버텨주고 긴장감을 낮추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너무 지식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작가들에게 팬을 만들어주려고 해요. 지금 힘들어하는 그 아이가 내 아이 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의 아이 일수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달리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 연대의 힘이 우리를 보다 나은 세상을 이끌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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