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이수진 에디터
2025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가 먼저 목소리를 냈다. 돌봄, 성평등, 기후위기, 장애인 권리, 민주주의 등 한국 사회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정책 제안이 500여 건. 디지털 공론장 '빠띠'에 모인 이 제안들은 '시민정책DB'로 정리됐고, 이를 토대로 시민의 요구와 후보 공약 간의 간극을 시각화한 의제 지도가 그려졌다.
500개의 제안, 시민이 만든 의제 지도
제안마다 하나의 점으로 표현된 첫 번째 차트는 의미적으로 유사한 제안끼리 가까이 위치하도록 구성됐다. 위치 자체는 방향성 없이 자유롭게 배치됐지만, 비슷한 내용이 묶이도록 한 구조다. 각 점은 제안 하나를 의미하며, 그룹별로 색을 달리했고 자주 등장한 키워드 세 개가 대표로 표시됐다.
제안이 모인 덩어리는 일곱 개의 큰 의제 흐름으로 나뉘며, '성평등/성폭력/성소수자', '기후/농업/식량', '장애인/특수교육/발달장애인권리보장', '민주주의/시민주권/표현의 자유', '노동/불평등/양극화', '주거/주거안정/공공임대주택', '평화/한반도 평화/한국전쟁 종식' 등이 도드라졌다.
점 하나를 클릭하면 같은 제안서에 속한 다른 제안들이 함께 강조돼 나타난다. 이를 통해 하나의 시민단체가 어떤 의제에 걸쳐 정책 제안을 했는지 그 분포까지 확인할 수 있다.

후보 공약은 어떤 위치에 놓였나
두 번째 차트에서는 시민 제안 위에 네 명의 주요 대선 후보 10대 공약이 겹쳐졌다. 공약 본문을 문장 단위로 쪼개 시민 의제와의 유사도를 분석한 뒤, 의미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해당 공약 점들을 배치했다. 색상은 후보별로 구분돼 이재명(파랑), 김문수(빨강), 이준석(주황), 권영국(노랑) 순으로 나타났다.
공약이 집중된 영역은 색상으로 강조돼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성평등/성소수자' 영역에선 권영국 후보의 공약이, '민주주의/표현의 자유' 영역에선 이재명과 김문수 후보의 공약이 밀집돼 있다. 반면, 이준석 후보의 공약은 의제 지형 하단, 다른 공약들과 떨어진 군집을 형성했는데 이는 탈규제나 리쇼어링 같은 산업 중심 키워드가 다수 포함된 결과다.
차트에서 특정 공약이 어떤 의제와 가까이 위치한다는 것은 해당 의제와 관련된 단어들이 공약 본문에 포함됐다는 뜻이지만, 이것이 곧 내용이나 방향의 일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 번째 차트는 의제 지형을 단순화한 버전이다. 의제 그룹별로 육각형을 배치해, 그 위치에 시민 제안이 얼마나 몰려 있는지를 크기로 표현했다. 이 차트는 다음 차트의 배경 지도로 기능한다.
네 번째 차트에서는 여기에 다시 후보별 공약 분포를 육각형으로 겹쳐 보여준다. 회색 육각형은 시민정책DB 내 제안 분포를, 색깔 육각형은 후보별 공약 분포를 나타낸다. 크기가 클수록 해당 영역에 관련된 문장이 많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시민 제안과 가장 겹치는 분포를 보인 것은 이재명과 권영국 후보였다. 이들의 공약 문장은 시민 제안이 집중된 주요 의제들 위에 일정 부분 겹쳐 배치됐다. 반면 김문수, 이준석 후보의 공약은 시민 제안이 거의 없는 영역에 주로 분포하며, 제안과 공약 간 언어적 접점이 적은 모습을 보였다.

이이번 시각화는 단순한 공약 비교표가 아니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던지는 공약을 받아들기만 하던 시민들이, 이번에는 먼저 제안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정치가 어떤 언어로 응답하고 있는지를 눈에 보이게 겹쳐본 실험이다.
빠띠 권오현 대표는 "간편하게 전체적인 패턴을 살펴볼 수 있는 도구가 시민사회 의제 활동을 이해하고 가시화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 시민정책DB를 발전시켜 시민들의 이야기를 빠띠에 담아내려고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의제 지형 시각화를 본 시민은 "우리는 항상 선거 때마다 공약을 받아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던져본 입장이 되었다. 정치가 시민사회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는 정치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계기이다. 빠띠 시민정책DB는 이 상상력을 시민이 꺼냈을 때, 정치가 어떻게 응답하는지 되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