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월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유리창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파손되어 있다. /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월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유리창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파손되어 있다. / 사진=뉴시스

이로운넷 = 이수진 에디터

한국 영화계와 시민단체들이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 씨의 기소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법원에 무죄 선고를 촉구하는 공식 탄원서를 제출했다. 

영화인 2781명과 51개 단체, 시민 1만1831명 등 총 1만 4천여 명이 무죄 탄원서에 서명했으며 이들은 "예술가의 행위는 증언이지 범죄가 아니다"라며 "정 감독에게 씌워진 혐의는 표현의 자유와 기록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탄원서에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 '화차'의 변영주 감독,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 등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 인물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여성영화인모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지역영화네트워크,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51개 단체도 동참했다. 특히 9개 단체는 탄원 운동을 주도하며 시민 참여를 조직했고, 그 결과 약 2832건의 유효 연서명을 재판부에 공식 제출했다.

영화인들은 "이번 사건이 창작자의 기록 의지를 위축시키는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탄원서에 따르면 정윤석 감독은 지난 1월 19일,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라는 전례 없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극우단체의 소란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진입했다. 검찰은 정 감독이 폭도들과 동조했다며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영화계는 이번 기소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정 감독은 그날 폭도를 찍은 자이지, 폭도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탄원서의 핵심 메시지다. 

영화인들은 "이번 사건은 단순한 불법 침입이 아니라 기록의 윤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논픽션 다이어리', 'Jam Docu 강정',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진리에게' 등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집단적 망각을 기록해온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장면들을 담담히 포착하며, '재난 이후를 응시하는 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사건 당일에도 그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현실화되는 순간을 예술가의 윤리와 책무감에 따라 기록하고자 현장에 있었고, JTBC 취재진과 함께 영상 촬영을 수행했다. 

JTBC는 해당 영상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지만, 정 감독은 기소됐다. 영화계는 이러한 이중 기준에 "무엇이 언론이고,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 감독은 불법 계엄 시도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붕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었으며, 이미 국회 및 언론사 관계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관련 영상 자료를 촬영하고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도 작업의도는 분명히 소명됐다는 것이 영화계의 주장이다. "현장의 폭력을 기록하는 일은 폭력에 가담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폭력을 멈추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저항"이라는 감독의 발언은 이번 탄원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영화인들은 이번 기소가 예술 창작자들에게 "침묵과 자기검열의 공포"를 다시금 안겨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블랙리스트 사태를 직접 겪은 이들은 "창작의 의도가 법적 판단의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때, 예술은 사회적 기능을 잃는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재판부에 "이번 판결이 예술의 자유와 공공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며 "예술이 본래의 사회적 기능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어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을 남기기 위한 예술가의 행위가 범죄로 취급되지 않도록, 정윤석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해주시기 바란다"고 간곡히 요청했다. 

아울러, 부산국제영화제도 별도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정 감독의 주요 작품을 공식 초청해온 영화제는 "그는 결코 반헌법적 폭력사태를 유발한 극우세력의 일원이 될 수 없다"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온 예술가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영화인 탄원서' 원문이다.

"정윤석 감독의 무죄를 요구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우리 영화인 일동은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에게 씌워진 특수건조물침입 혐의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이 사건이 단순한 불법 침입이 아닌 기록의 윤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중대한 사안임을 말씀드리고자 이 탄원서를 작성합니다.

2025년 1월 19일, 정윤석 감독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카메라를 들고 진입했습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법원을 ‘난입’한 폭도들과 동조한 행위라 단정하고 기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정윤석 감독은 그날 폭도를 찍은 자이지, 폭도가 아닙니다.

정윤석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집단적 망각을 성찰해온 예술가입니다. <논픽션 다이어리>에서는 지존파 사건과 국가 형벌 체계를 조명하며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았고, 옴니버스 영화 <Jam Docu 강정>에 참여하여 생태계와 공동체의 붕괴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용산,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가장 고통스럽고 잊혀지기 쉬운 사회적 순간들을 담담히 기록해온 ‘재난 이후’를 응시하는 작가입니다.

사건 당일 역시, 정윤석 감독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현실이 되는 순간을 현장에서 기록해야 한다는 윤리적 의지와 예술가로서의 책무감에 근거하여 카메라를 들고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당시 JTBC 취재진과 함께 폭력적 상황에 침묵하지 않고 현장을 취재했으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한 영상 기록을 수행 중이었습니다. JTBC 취재진은 해당 영상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반면 정윤석 감독은 기소되었습니다. 이 간극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술가의 렌즈는 가해가 아닌 증언의 도구입니다. 당시 정윤석 감독은 불법 계엄 시도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붕괴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이미 국회 및 언론사 관계자들과 협력하여 영상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수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작업의도는 명확히 소명된 바 있습니다. 정 감독은 “현장의 폭력을 기록하는 일은 폭력에 가담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폭력을 멈추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저항”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번 기소가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예술가를 범죄자로 낙인 찍는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과거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었던 우리 영화인들은 창작의 의도가 법적 판단의 고려 대상에서 배제될 때, 얼마나 많은 예술가가 침묵과 자기검열 속으로 내몰리는지를 직접 목격해왔습니다. 아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예술가를 처벌한다면, 앞으로 누가 재난의 자리로, 사회적 기록의 가치를 지닌 현장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사건이 단순히 한 영화감독의 기소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예술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며,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시험입니다. 이번 판결이 예술의 자유와 공공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재판장님의 깊은 통찰로, 창작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걷히고, 예술이 본래의 사회적 기능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윤석 감독은 카메라를 든 예술가로서, 이 사회의 어둠과 마주하는 방식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가 처음으로 사회적 충돌의 한복판에 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을 뿐입니다.

재판장님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을 남기기 위한 예술가의 행위가 범죄로 취급되지 않도록, 정윤석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요청드립니다.

2025년 4월 15일

영화인 일동

부산국제영화제 탄원서 / 자료=한국독립영화협회
부산국제영화제 탄원서 / 자료=한국독립영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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