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탄핵 심판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 뒤 정치인 체포 같은 건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지시를 했니 마니 하는 건 "마치 호수 위에 떠있는 달 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좀 많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등 실제 군을 동원해 정국을 장악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민주당은 "내란 사태, 즉 친위쿠데타 사건을 희화화하려는 것 같다"며 "정신 차리기를 바란다"고 일갈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에서 선관위에 군을 투입하라는 지시를 본인이 직접 내렸다고 인정했다.
윤석열은 "선관위에 (군대를) 좀 보내라고 한 건 제가 김용현 장관에게 얘기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윤석열 변론의 핵심은 △계엄령 관련 지시 △정치인 체포 지시 여부 △선거관리위원회 방문 지시 등이었다.
윤석열은 이날 직접 변론에 나서 선거관리위원회 방문 지시와 관련해 "군이 선관위를 방문한 것은 전산 시스템 확인을 위한 것이지, 선거 개입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있을 때부터 선거 사건, 선거 소송에 대해 쭉 보고받아보면 투표함을 개함했을 때 여러 가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부정선거라는 말은 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이게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여전히 부정선거 음모론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보였다.
계엄 선포 당시 국무위원들에게 이를 '경고성 계엄'으로 인식하도록 설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에 있을 때부터 선거 사건, 선거 소송에 대해 쭉 보고받아보면 투표함을 개함했을 때 여러 가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부정선거라는 말은 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이게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전했다.

이날 비상계엄 당시 주요 인사 체포 명단 등을 폭로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도 헌재에 나타나 증언했다.
그는 국회에서 한 진술과 일치하게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당일 직접 전화해서 "이번 기회에 싹 잡아들이라"라고 말했고, 여인형 당시 국군방첩사령관을 통해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 체포 명단을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싹 다 잡아들여"라는 지시를 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만일 계엄 상황에 대해 국정원에다가 뭘 지시하거나 부탁할 일이 있으면 국정원장에게 직접 하지, 차장들에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발언 기회를 얻자 "이번 사건을 보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했니, 지시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빠진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자기 기억에 따라 얘기하는 것을 대통령으로서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상식에 근거해 본다면 이 사안의 실체가 어떤 건지 잘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 민주당 "내란 사태 희화화…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이러한 윤석열의 변론을 들은 더불어민주당은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는 주장을 반복한 데 대해 "한여름 밤의 꿈 정도로 만들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분명한 건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파괴하고 군정에 의한 영구 집권을 획책했다"며 "그 과정에서 국민 인권은 파괴되었을 것이고, 나라 경제는 폭망했을 것이고, 군인들이 통치하는 후진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건희·윤석열 부부는 영구 집권하며 영화를 누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은 권력을 누리겠지만 5000만 우리 국민들은 참혹한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려고 했다"며 "그런데 이게 장난입니까. 실실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사안이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권한을 어떻게 행사했든 그것이 이 나라 민주공화정을 완전히 파괴하고 군정으로 되돌아갈 합리적 이유가 되느냐"며 "단 한 발의 총성이라도 들렸더라면, 단 한 번의 주먹질이라도 시작됐더라면 완벽한 암흑사회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라 심각한 일이 있었고 지금도 그 심각한 일은 계속 (진행) 중"이라며 "대체 뭐 때문에 정치를 하느냐. 온 국민이 고통에 절망하고 나라의 미래가 완전히 사라져서 세상에 암흑이 돼도 당신들만 권력을 유지하면 되느냐"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피고인, 관련자들이 내란 사태, 즉 친위쿠데타 사건을 희화화하려는 것 같다. 정신 차리기를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호수 위 달 그림자' 발언에 대해 "이런 걸 두고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표현한다"며 "비상계엄 당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국민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한다면 천벌을 받아 마땅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 최고위원은 "문득 윤석열이 계엄 당시 유혈사태나 인명사고가 있었냐고 반문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 참혹한 상황까지 시나리오에 써놨는데 무위에 그쳤기 때문에 없던 일로 간주하기로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국회 기물이 무참히 깨지고 국회의원들이 담장을 넘다 부상을 입고 국민들이 국가적 폭력 앞에 서 있었던 일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윤석열 본인이 지시한 것이 없다는 인식이 엿보이는데 지시한 게 왜 없냐"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것 자체가 국민을 향한 오만한 지시였다. 달 그림자를 운운한 대목은 정말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고 질타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구치소에서 윤 대통령을 알현하고, 헌법재판소의 공정성을 공격하는 등 내란 수괴를 대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힘과 극우 세력이 한결같이 헌정파괴세력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탄핵심판을 흔들려는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황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감옥에서도 국민의힘에 지령을 내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본인을 지키려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계엄으로 민주당 행태를 알리길 잘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계엄령을 통해 국민을 세뇌하려는 시도"라며 "이는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불폭(붕괴)시키려는 선동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황 대변인은 지난 1월 19일 법원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언급하며, "이는 재차 내란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극우 사이비 세력이 점점 더 심화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며 "나경원 전 의원 역시 내란을 동조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란특검이 구성되기 전까지 내란 범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특히 김성훈 대통령 경호차장이 계엄령 선포 전 노상원 당시 국방부 차관에게 비화폰 지급을 지시하고, 관련 자료 삭제를 요구한 점에 대해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계엄 관련 주요 역할을 한 만큼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이 계엄령 선포와 선관위 개입 의혹에 대해 "실제로 벌어진 일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정황과 증언들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됐고 군이 실제로 선관위를 방문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도, 이를 단순한 '경고성 조치'나 '전산 시스템 확인'으로 축소하려는 태도는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비상계엄 당시 정치인 체포 계획에 대한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이를 '호수 위의 달 그림자를 쫓는 것'에 빗대며 무의미한 논란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국가 비상사태에서 군의 움직임은 단순한 명령과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 권력 행사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윤석열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내란 및 선거 개입 의혹을 부인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핵심 증인들의 증언과 당시 계엄령 실행 계획이 밝혀지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이 얼마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의 해명과 각종 증언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이번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탄핵심판이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국가 권력의 남용과 민주주의 수호를 가르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최종 결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