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즉각 구속! 촛불문화제'에서 펄럭이는 '응원봉 연대' 깃발 2024.12.07/사진=독자 제공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즉각 구속! 촛불문화제'에서 펄럭이는 '응원봉 연대' 깃발 2024.12.07/사진=독자 제공

이로운넷 = 조은결 기자

"맘 편히 공연 보러 가고 싶어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즉각 구속! 촛불문화제' 20대  참가자 A씨는 밴드 아이돌 데이식스의 공식 응원 도구인 '마데워치'를 들고 "윤석열 탄핵, 국민의힘 해체"를 외치며 <본지>에 이같이 말했다.

A씨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 배우 등의 '응원봉'을 들고 나타난 20대 참가자들의 눈에 띄는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들은 자신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H.O.T 열혈 팬으로 등장했던 '성시원'에서 '응답하라 1988'에서 민주화 운동권 학생으로 나온 '성보라'로 변화된 것이라고 장난스레 말한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신이 사랑하는 가수를 응원하던 열정과 집요함이 이제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목소리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관심을 넘어 새로운 세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 참여와 연대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물결에 집회도 'MZ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민중가요나 투쟁가가 아닌 '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 '삐딱하게(GD)', '파이팅 해야지(세븐틴-부석순)' 등의 K-POP이 흘러나왔고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하듯 다양한 응원봉과 촛불들이 빛을 일렁이며 노래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수많은 외신들도 "집회가 아닌 마치 댄스 파티 같았다"라고 보도하며 대한민국의 현 시국을 집중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토요일 국회 앞 시위가 최대 규모를 예고한 가운데,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시작됐다"고 언급했고,  프랑스 통신사인 AFP통신은 "탄핵 표결을 앞두고 시위대 중 많은 이들이 정성 들인 의상을 입고 직접 만든 깃발을 들거나, 집회의 필수요소(fixture)가 된 K팝을 틀었다"고 보도했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즉각 구속! 촛불문화제'에서가수 10CM의 응원 도구를 들고 집회에 나선 20대 참가자 B씨 2024.12.07/사진=독자 제공

가수 10CM의 응원 도구를 들고 집회에 나선 20대 참가자 B씨는 <본지>에 "나와 같이 응원봉을 든 여성들을 보며 안심하고 집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며 "사실 집회는 처음이라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 즐겁고 이 수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추위에서 버티게 해줬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현장에선 같은 가수의 응원봉을 발견하면 초면이더라도 부리나케 달려가 인사를 나누며 핫팩을 주고 나는 등의 모습도 번번이 포착됐다.

이번 집회를 통해 중장년층과 MZ세대가 대통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팬 문화가 널리 확산되자 다음 날인 8일 집회에선 '응원봉 교육' 시간을 가지는 등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변화된 집회 문화를 적극 수용했다. 4050 커뮤니티에선 "딸한테 응원봉 빌렸다", "늦은 밤까지 응원봉을 들고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한심해 하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응원봉 어디서 살 수 있냐"라는 글들이 쇄도하는 중이다. '탄핵집회 플레이리스트'라며 집회서 흘러나왔던 K-POP 리스트를 서로서로 공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중장년층이 "우리 세대가 광장에서 물러날 때가 됐나"라고 생각이 든다고 하자 MZ세대들이 "어른들을 믿고 가는 거다", "당신들이 걸었던 길을 보고 배운 거다"라고 응답하며 세대 간의 연대와 존중을 표현했다.

집회 주최 측인 시민단체 촛불행동은 "어른신들은 케이팝을 틀으라고 하고, 2030분들은 민중가요를 틀어달라고 한다"며 두 세대가 서로를 배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사회학 전문가들은 이번 집회를 두고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과 새로운 세대의 주체적 역할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과거와 달리 극단적 방식이 아닌 평화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 2030 여성들, 최전선에 서다

7일 '대통령(윤석열) 탄핵 소추안'표결 및 '김건희특검법' 재표결 이후 국회 4문을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 2024.12.07/사진=조은결 기자

이번 집회에선 특히나 2030 여성들의 행보가 눈에 띄었다. 갖가지 응원봉을 들고 나온 것도 이들이었고, 집회가 끝나고 난 뒤 국회 출입문을 지키며 방범을 서던 것도 이들이었다.

<본지>가 지난 7일 정문(1~2문)을 제외한 3문부터 7문까지 쭉 둘러본 결과, 소속을 밝히지 않고 참가자들을 밀치며 나가려는 상황이 오면 현장에 있던 남성이 큰 목소리를 내 저지하거나, 구호가 작아지면 한 중년 남성이 꽹가리를 치며 사기를 복돋게 하는 등 남성들의 참여도 많았지만, 작은 출입문 앞까지도 보초를 서며 지키고 있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응원봉을 손에 쥔 2030 여성들이었다.

국회 4문 앞을 지키던 아이돌 세븐틴의 공식 응원봉 '캐럿봉'을 손에 쥔 C씨는 "후회하지 않고 싶었다. 늦은 밤 김건희 특검법이 부결되고, 탄핵소추안 투표불성립을 확인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며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집에 가기 보다 다시 국회로 향해 끝까지 탄핵하겠다는 국민의 뜻과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본지>에 밝혔다.

C씨는 이날 "이 밤에 국회 7개 문에 많은 분들이 지키고 있다. 특히 여성분들이 정말 다양한 불빛을 들고 계신다. 신체적으로 대비되는 경찰들 앞에 여성들이 서 대항하는 모습을 보고 기특하다고 느꼈다"고 전하며 다시 국회 문 앞을 지켰다.

7일 '대통령(윤석열) 탄핵 소추안'표결 및 '김건희특검법' 재표결 이후 국회 문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한 여성이 핫팩과 초콜릿 박스를 두고 갔다. 20204.12.07/사진=조은결 기자

한 여성은 핫팩 한 박스와 초콜릿 한 박스를 내려놓고 마음껏 가져가라고 한 뒤 다른 문으로 떠났다.  젠더 갈라치기와 여성가족부 폐지 등 성평등에 역행하는 공약으로 당선된 대통령과 여당의 나라에서 오히려 여성들이 앞장서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날 밤, 여성들이 손에 든 응원봉의 불빛은 단순한 응원의 상징이 아니라 불의에 맞선 저항과 연대의 불씨처럼 보였다. 사회적 약자로서 숱한 차별과 혐오를 견뎌야 했던 이들이 이제는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 서 있는다.

7일 '대통령(윤석열) 탄핵 소추안'표결 및 '김건희특검법' 재표결 이후 국회 4문을 지키고 서 있던 C씨의 응원봉 '캐럿봉' 2024.12.07/사진=조은결 기자

이번 집회는 응원봉과 K-POP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10·20·30세대, 그리고 오랜 시간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온 중장년층이 함께 어우러지며 더 큰 화력이 붙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들이 전면에서 집회를 이끌며 보여준 단결력은 '2030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통념을 뒤집었고 집회 참여의 장벽을 낮춰 더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의 불빛과 목소리는 단순한 일회성 저항을 넘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로 계속해서 번져 나갈 것이다. 광장의 촛불은 거센 바람에 더 커지는 횃불이 돼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지난 7일 오후 4시 30분 기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경찰 추산으로는 10만 명이 집결했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즉각 구속! 촛불문화제' 중 한 참가자의 피켓 2024.12.07/사진=조은결 기자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탄핵! 즉각 구속! 촛불문화제' 중 한 참가자의 피켓 2024.12.07/사진=조은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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